이순신 장군이 서 있는 고샅, 바로 그 옆을 법정이 걷는다

입력 2022.07.06. 19:04 이석희 기자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해남 우수영,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강강술래

[마을에서 인간과 삶을 읽다] 해남 우수영, 끝나지 않는 이야기?

◆장군은 싸움보다 유비에 방점을 둔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우수영을 찾아간다. 울돌목을 찾고, 심지어 팽목항, 남도석성을 찾곤 할 때도 우수영을 그냥 지나쳤다.

우수영은 숨어 있다. 과거엔 적의 눈에 띄지 않게 숨었고, 지금은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숨죽이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으로 마을로 들어선다. 여느 시골과 달리 오가는 이가 많다. 우수영에서 제주도 가는 여객선을 타러 온 이들이다.

옛날 우수영

지금도 우수영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예전 '전라우수영지(1787)'에는 영내의 민호는 620호, 수군 병력은 1천85명이 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선두리에 들어서니 바닷물이 막 들어온다. 이순신 장군이 거기 골목마다 서 있다. 장군이 여태껏 우수영 고샅을 떠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준비는 지난하지만, 전투는 번개처럼 짧다. 소인은 싸움만 중시하지만, 장군은 유비(有備)에 더 큰 방점을 둔다. 이런 천혜의 해군기지를 두고 어디를 가겠는가. 그런데 장군 옆에 한 스님이 홀로 걷고 있다. 스님 법정이다.

망해루 밑 우수영 북문터

◆무엇보다 백성을 긍휼히 여긴 사람

우수영 고샅마다 장군의 그림과 말씀이 가득하다. 말은 곧 정신이다. 그분을 장군이라는 단어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리나 천문을 활용한 지략가이자 싸움에 능한 것은 분명하지만, 열패감에 쌓인 부하들에게 전투 의욕을 심어 준 탁월한 심리전문가였고, 그 마음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한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이었다. 자식을 사랑한 아버지이자 노모에게 흰머리를 가릴 정도로 극진한 효자였으며 무엇보다 가난한 백성을 긍휼히 여긴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지만 많은 사람을 합쳐도 그 한 사람을 이겨낼 수 없는 사람. 난중일기는 그렇게 말해준다. 준비하고 노력한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다고. 그런 그가 왜 이곳 우수영에 배수진을 쳤을까.

법정스님 도서관

◆두려움 앞선 병사들 향한 혼신의 외침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편입하라는 선조의 유서를 받고 장군이 즉시 올린 상소문은 그중 하나다. '신에게는 아직 전선 열두 척이 남아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이것으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오히려 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이충무공전서 권9, 이분찬 행록 중)

법정스님 생가터와 무소유 의자

기적적으로 회생한 장군은 9월14일, 적군 함대 200여척 중 55척이 어란포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15일에는 저녁 밀물 때, 진영을 전라우수영으로 옮긴다.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었다. 그날 밤 두려워하는 병사들에게 혼을 담아 외친다.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一夫當逕 足懼千夫)

선두리 벽화

비장한 각오로 그때 불태워버린 집들이 바로 이곳 우수영이다. 그리고 다음 날 16일 오전 울돌목에서 이순신 장군은 330척의 적선으로 가득 찬 명량의 좁은 물길을 단 13척의 배로 배수진을 치고 막아선다.


◆조선총독부에 옮겨 몰래 버린 비석

우수영 관광지

우수영은 그런 곳이다. 병사들의 유일한 퇴로인 우수영을 차단하는 것만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이다. 우수영은 땅끝이었다. 그러니 왜놈들이 제일 먼저 지우고 싶은 곳이 우수영이었고 명량대첩비를 조선총독부까지 옮겼다가 몰래 버린 것처럼 우수영 지우기가 첫 번째 일이었다. 호남 사람들이 대동단결하여 왜적들을 물리쳤으니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중심 우수영은 그들에게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런데 몰지각한 군부독재 또한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우수영을 지키지 못했다.

우수영초등학교 52회 졸업생 김주영씨는 어렸을 적 마을 어르신이 "학교 짓고 도로 내면서 집집이 돌들을 공출했는데 그 많은 돌을 어디서 가져왔겠느냐?"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면서 거기다 우수영에서 진도 방향 둑을 쌓을 때도 마찬가지였단다. 우수영의 성루와 성벽은 그렇게 무너졌고 또 그렇게 지워졌다.

그런데도 우수영 사람들은 하나같이 울돌목 전투에 참여한 양 그날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모두 400여 년 전 일이라고 하는데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오늘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걷는데, '방죽샘'이 앞을 막아선다. 모든 흔적은 지울 수 있었지만 샘만은 어쩔 수 없었기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다.

우수영 벽화?

김주영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판옥선 한 척을 움직이려면 수군 150여명이 있어야 하고, 12척이었으니 수군이 최소 1천500여명은 있어야 한다. 우수영은 물이 귀한 곳이다. 그 병사들은 아마 '방죽샘'에서 가까운 우수영초등학교에서 진을 쳤을 것이고 이 물을 먹었을 것이다. 비록 식사야 배불리 하진 못했어도 '방죽샘'은 전투 전야 병사들에게 물이나마 풍성히 내주었을 것이란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섰지만, 우수영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궁핍한 영혼 맑고 향기롭게 한 고행

우수영 성터 발굴 현장

방죽샘 옆, 우수영에는 법정 스님 생가가 있다. 책이 귀했던 8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는 단연 법정이었다. 스님 책이 나오는 대로 구해 읽었다. 운 좋게도 고3 담임이셨던 서울대 출신 박승규 국어 선생님은 고교 동창이자 절친이었던 스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선생님은 법정 대신에 자주 재철이라고 불렀다. 본인은 속세에서 최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세속을 떠난 법정은 이미 문학적으로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만큼 법정의 유명세는 대단했다. 만화가를 꿈꾸던 내가 지금 수필을 쓰고 있는 것은 순전 법정 스님 덕분이다.

장군이 밀물처럼 살았다면 그분은 썰물처럼 살았다. 우수영을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며 영혼과 정신의 충만을 위해 자기와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다. 그분이 태어난 선두마을, 바다에서 뛰던 숭어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마당으로 툭툭 떨어질 곳에 스님의 생가가 있다.

우수영 오른쪽 멀리 진도대교

눈앞 바다가 지겨웠을까. 스님은 주로 산을 찾아 자주 숨곤 했다. 겉은 스님이었지만, 내면은 온통 수필가이자 명상가였으며 철학가였다. 우수영 파도를 닮아서인지, 한쪽은 산속을 딛고 있으면서 또 한쪽 발은 속세를 기웃거렸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궁핍한 영혼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해 고행을 자처한 고독한 인간이었다.

요정을 운영해 큰돈을 번 백석 시인의 첫사랑 자야가 마지막 믿은 사람이 법정이었다. 그는 1996년에는 자야의 뜻에 따라 서울 도심의 대원각을 시주받아 이듬해 길상사로 고치고 회주로 있었다. 이순신이 적과 목숨을 건 싸움에 임했다면 법정은 자신과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었다.

충무사와 명량대첩지

◆일부는 신화 속에 갇혀 그 때를 살고 있다

누군 끝내려고 하고, 또 누구에겐 끝낼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곳이 우수영이다. 우수영에는 자신의 책을 더는 찍지 말라는 법정의 생가가 있고, 끝까지 싸운 이순신 장군의 전진기지가 있다. 무엇보다 장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신화 속에 갇혀, 그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수영 사람들은 그렇게 뜨겁게 자신의 삶을 살면서도 또 치열하게 나라를 사랑하며 사는 이들이다.

제주도를 가기 위해서는 우수영에 들러 여객선을 타면 된다. 우수영과 진도를 잇는 케이블카도 있고, 우수영 성곽을 복원하고 있다. 우수영에는 아직도 곳곳에 옛날식 다방이 남아서 구수한 뱃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도 강강술래 같은 노랫가락도 들린다. 우수영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박용수 시민전문기자 toamm@hanmail.net

박용수는 화순 운주사가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수필 쓰기만 고집해 왔다. ‘아버지의 배코’로 등단하여, 광주문학상, 화순문학상, 광주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광주동신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 꿈꾸는 와불, 사팔뜨기의 사랑, 나를 사랑할 시간이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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