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농촌 인력 태부족, 이제는 필수 노동력
코로나로 일손 구하기 어렵고 인건비도 상승
노동 착취 사회적 문제까지 불거져 더 심각
대책 절실한데 정부와 지자체는 무대책
#사례1
전남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모(49)씨는 지난 12일에서야 과일에 종이봉투를 씌우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매년 일을 도와주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해는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지인을 통해 겨우 구할 수 있었지만 평소보다 3배 가까이 오른 인건비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지난 봄 꽃 수정을 할 때는 인력을 구하지도 못해 가족들과 지인들을 총동원했다. 가까스로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수정시기가 늦어진데다 꼼꼼한 작업도 못한 것 같아 벌써부터 가을 수확이 걱정이다.
김씨는 "과수원 일에는 수정·수확시기 등 많은 일손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일년 농사에 타격이 크다"며 "최근 농촌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보니 인건비가 치솟아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사례2
캄보디아 국적의 A(29)씨는 전남의 한 농장에서 최근 2년여간 일을 했다. A씨는 당초 200만원 가량의 월급, 7시간의 노동시간으로 계약했으나 하루에도 네다섯 시간의 '잔업'을 당연한 듯 해야 했다고 말했다. 추가 근무수당은 물론 휴가조차 보장받지 못했고, 저녁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좁은 숙소에서 다른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잠을 청했다. 기숙사비와 전기요금은 농장주에게 따로 지출해야 했다.
A씨는 "손목 등의 건강 이상을 호소했지만 사장님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가면 월급이 깎였다"며 "월급조차도 제때 주지 않았기에 농장을 나온 지금도 몇달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로 농촌에 켜진 빨간불
코로나19는 전남 농가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국경 봉쇄 등 방역 조치로 국가 간의 교류가 끊기면서 필수인력이 된 외국인 노동자의 입국도 멈췄기 때문이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의 국내 출입국자 수는 예년의 16.8% 수준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8만7천149명의 외국인이 출·입국했으나 2020년에는 1만4천704명만이 국경을 오갔다.
전남의 외국인 근로자 인력수급도 어려워졌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허가제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하반기 1만964명에 달했던 전남 외국인 근로자 수는 2020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9천676명, 8천805명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 1월에는 이보다 더 낮은 8천58명으로 지난 201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젊은층 고갈 상태'인 농촌 현실을 볼 때 사실상 외국인 노동자도 꼭 필요한 '젊은 피'가 됐다. 하지만 인력 수급 자체가 안되는데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농가에는 되레 부담이 돼버렸다.
코로나로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단 한건도 없는 상황이다보니 취업기간이 만료된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가 계절근로자로 전환하는 등 올해 전남 10개 시·군에 343명을 배치할 계획이었지만 입국 자체가 여의치 않으면서 실제 배치된 인원은 14명에 불과했다. 올해 상반기도 계획은 131명이었지만 현실은 13명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남 농가들은 인건비 감당을 못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담양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57)씨는 "평소처럼 밭일을 끝내려면 인건비만 수백만원이 필요한 상황이다"며 "그나마도 쓸 수 있는 외국인 노동인력 자체가 줄어든 만큼 훨씬 긴 시간을 들여 수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인력 살펴야'···전남도 관리 나섰지만
이제는 필수인력이 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책들을 하나둘 마련하고 있지만, 문제는 농민들에게 충분한 홍보가 되지 않은데다 전담인력마저 없다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남의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4.4%에 달했다. 전남 인구 20명 중 1명은 외국인 노동자인 꼴이다.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불법체류자들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두배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는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주거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개·보수를 거친 빈집을 외국인 노동자 고용농가에 제공하고 2023년까지 100억원(국비 70억원 포함)을 들여 이주노동자가 거주할 수 있는 숙소 5곳을 건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을 전담할 인력은 없다. 광주 등 대부분의 자치단체에 의료분야 등 외국인 근로자를 지원하는 인력이 갖춰져 있는 것과 달리 전남에는 전담이 배치되지 않은 상태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업무는 각 부서에서 맡아서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또 지원사업 자체가 농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귀농인 김모씨는 "도청에서 이것저것 신청받으면 뭐하나. 대부분은 지원 정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지조차 깜깜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사각지대···인권착취 여전
외국인 노동자가 '고급인력'으로 불릴만큼 귀한 존재가 됐지만 여전히 최소한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도 여전히 많기만 하다.
지난 9일 찾은 광산구 송정동 캄보디아 공동체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전화가 계속됐다. 봉급을 받지 못한 이들부터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연이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12년 전부터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박미향씨는 "광주·전남 이주노동자들 중 대부분은 계약서 상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신체 곳곳에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병원조차 쉽게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네트워크가 177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 이하의 근무시간을 보장받는 외국인 노동자가 19.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46.4%의 답변자는 하루에 9~10시간을 근무하고 있었고, 11~12시간을 근무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22%로 뒤를 이었다. 13시간 이상을 근무한다는 이들도 11.9%나 차지했다.
외국인노동자의 38.1%는 부당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한 경우 외에도 '업무시간이 아닐 때에도 외출을 못하게 한다'거나 '집안일 등 계약 업무 외의 일을 시킨다'는 부당대우 사례도 나타났다.
윤영대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위원장은 "외국인들은 점점 늘어가는데도 정부에서 근로실태가 잘 조사되지 않는 등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농업기관, 시민기관, 정부들이 함께 협업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외국인문제를 담당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전남농촌 2021 리포트ㅣ인터뷰] "외국인 노동자 문제, 애초 제도부터가 구멍"
윤영대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위원장
농어민, 이주노동자, 정부 협업 필요
'브로커' 주도하는 수급 체계 바꿔야
제도 마련 선행돼야 농촌문제 해결
"애초에 관련 제도에 구멍이 많습니다. 외국인 인력배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의료보험은 어떻게 가입시킬지, 거주는 어디서 시키고 임금은 어떻게 줄 지에 대한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야합니다."
윤영대 광주전남이주노동자네트워크 위원장은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은 지난 3월 있었던 비닐하우스 화재 사건을 언급하며 서두를 열었다. 당시 북구 용두동에서는 한 농원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해 하우스에 거주하던 16명의 외국인들이 대피한 바 있다.
그는 "네트워크 측 실태조사 결과 40%의 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 준하는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더라"며 "정부에서는 '농업인이 숙소를 개선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자비로 거주시설을 만들어주려는 농업인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거주시설 뿐 아니라 폭력, 착취, 임금, 휴식 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윤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은 의료보험은 어떻게 가입해야하는지, 폭력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심지어 본인의 시급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농업인들도 '업무 외 일은 시키면 안된다'는 등의 교육을 받지 못해 노동착취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관리·회계 등을 전담할 수 있는 단체나 법인, 제도 등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인들은 매년 이주노동자를 충분히 구하지 못해 인력수급 문제에 시달린다. 면 단위로 이주노동자를 관리할 수 있는 단체가 생긴다면 단체차원에서 인력이 얼마나 필요할지 파악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며 "이 단체에는 정부 뿐 아니라 농어민회, 이주노동자 단체, 각 분야 전문가 등도 포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지금은 인력알선을 해 주는 '브로커'가 시스템이 돼 버린 상황이다. 개인 사업자가 불법체류자들을 통해 노동력을 수급하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주노동자의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빈집리모델링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 윤 위원장은 "무료로 주거시설을 공급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최소한 주거비를 받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청결하고 안전한 시설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위원장은 "결과적으로 현재 부족한 제도들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제도마련이 촘촘하게 이뤄져야 이주노동자의 인권뿐 아니라 농촌의 인력수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재차 강조했다.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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