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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내가 바라본 이낙연은

입력 2021.03.09. 09:01 수정 2021.03.09. 09:30
고시 대신 언론계 투신 운명적 계기
"김대중 총재 만나 큰 정치인 성장"
어려운 가정형편 공부 잘하는 수재
매사가 엄정해 섭섭할 때도 있었다
지조·신념으로 끝까지 민주당 지켜
경험·지혜·결단력 지도자 자질 갖춰
허정 원장

나는 1964년부터 북성중·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낙연이와 동문수학하면서 인연을 맺어왔다. 낙연이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학교생활을 꿋꿋이 하고 공부를 아주 잘해서 담임 등 여러 선생님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또한 고등학교 때는 최우수 학생으로서 학내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신중하면서도 명석한 판단으로 해결을 주도해 나가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낙연이가 필력이 뛰어난 것은 고교시절 국어 과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실력 때문이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당시 낙연이의 국어시험 점수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법대에 입학한 낙연이는 이후 판·검사의 길을 가는 사법고시를 당연히 치를 줄 알았는데 사정상 군대 제대 후 언론계로 투신했다. 이것은 아마 '운명'이라 생각된다. 언론사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운명적으로 당시 '김대중 총재'를 만나 특별한 총애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언론계에 들어간 것이 '정치인 이낙연'을 만든 계기가 됐다.

낙연이는 김대중 총재의 간곡한 요청으로 정치에 입문해 항상 바른 길과 옳은 일이 무엇인가를,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국회 농림수산위원장 때 '의사의 날' 행사에 초청 받아 축사를 하는데 특유의 언변과 유머로 2천여 의사회원 가족들에게 "50년 동안 대머리로 변한 것 외에는 변함이 없는 친구다"고 당시 광주시의사회장인 나를 소개하면서 청중들 분위기를 한순간에 휘어잡았던 기억이 있다.

낙연이는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할 때는 우리 의료계가 문제를 청원할 때마다 의협의 이익보다 국민과 의료계 발전에 보탬이 되는가에 기준을 두는 등 매사가 엄정해 매우 섭섭할 때도 있었다.

전남도지사 취임 후 나에게 전남사회복지모금회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일한 경험이 있다. 그때 전남의 미래인 '해양 전남' 비전을 제시하며 농어촌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도민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등 지도자로서, 목민관으로서 활동과 따뜻한 심성에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국무총리 시절에도 조류독감 유행과 구제역 발생, 초유의 강원도 산불 발생 때에도 기민하게 초동 대처에 성공해 행정관리 능력을 발휘했고 조직 장악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역, 계층, 이념, 빈부 차이에 따라 국민들이 많이 분열된 현 시점에서 낙연이야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창했던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라고 확신한다. 낙연이가 국가의 대임을 맡아 앞으로 50년, 100년 대한민국 발전의 기둥을 세우는 일을 할 기회가 올 것으로 확신한다. 이삼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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