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발막마을"아이들 편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 하나 짓기 힘드네요"

입력 2020.07.28. 12:15 선정태 기자
모든 연령이 어울려 사는 영광군 발막마을
10여명의 아이들 놀 곳 없어
주민들 원하는 부지는 군청에서 '글세'
군청이 짓고자 하는 땅은 주민들이 난색
영광 발막마을 놀이터 후보지 중 도로와 인접한 부지. 마을 사람들은 빠르게 다니는 차들이 아이들에게 위협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 보이는 비닐하우스 주인은 땅을 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다니는 마을 아이들이 오후나 주말에 친구들 끼리 놀 공간이 없어 안타깝습니다."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 발막마을. 26가구 6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은 여느 시골마을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마을과 전혀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

4살 아이 등 10세 미만부터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이상까지 모든 연령층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영광 발막마을 놀이터 후보지 중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부지. 아이들이 편하게 놀 수 있을 것 같아 이 부지에 놀이터가 지어지길 원하지만, 영광군이 선호하지 않고 있다.

이런 보기 드문 연령 구성은 마을 청년들이 귀향하면서 가능해졌다. 고향을 떠나 서울 등 수도권에서 생활하던 마을 청년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하거나 취업하고 아이들을 낳으면서 마을이 활기를 띄었다.

20대 청년들 역시 타지로 떠나지 않고 영광읍이나 광주로 출퇴근하고 있다. 마을에서 진행된 '행복마을' 사업으로 한옥을 지은 것도 한 몫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30대 모두가 베트남에서 온 여성들로, 다문화가정이 많은 마을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와 울음 소리, 떠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 정감 넘치는 마을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놀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 하는 게 늘 안타깝다.

전북 공읍면과 맞닿아 있는 발막마을 아이들 일부는 가장 가까운 공읍면 등 인근 세 곳의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으로 흩어져 다니고 있다.

아이들은 평일 오후에는 좁은 마을 길에서 자전거나 퀵보드를 타며 시간을 보내다 주말에는 차로 20~30분 정도 걸리는 공터나 놀이터를 찾는게 일상이다.

주민 김모씨는 "좁은 마을 길에서 자전거를 타다 오가는 차와 마주치며 아슬아슬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주말에 멀리까지 나가는 불편도 컸다"며 "3~4년 전부터 마을에 놀이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물게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한 영광군은 지난 2018년 이 마을에 어린이 놀이터와 작은 도서관을 지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부지였다. 작은 농촌 마을에 넓은 유휴지가 있을리 만무하다. 마을 사람들은 주변 논이나 비닐하우스 부지 등 4곳의 후보지로 압축하고 매입하기에 나섰다.

이미 2018년 하천과 접한 마을 북쪽 논과 비닐하우스 7동이 들어선 마을 입구쪽이 최종 후보지로 선택됐지만 영광군과 마을 사람들과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3년째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곳은 하천과 접한 논 부지. 땅 주인이 판매하겠다는 의사도 밝힌데다 직사각형의 땅이라 적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을 입구 부지에 짓기를 원하는 영광군에서는 이 곳이 마뜩잖아 하는 상황이다. 마을입구 쪽은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오가는 사람들도 잠시 쉬어갈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지 한 가운데 있는 비닐하우스 주인이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해 매입에 난항을 겪는데다 도로 바로 옆이어서 아이들이 교통사고 발생 우려가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실제, 이 도로는 상당한 구간이 직선 거리여서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횡단하던 사람들이 큰 사고를 당한 구간이기도 했다.

주민 성모씨는 "친척집에 가면 주변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어 부러웠다"며 "사고 위험없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빨리 마련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마을 주민 30대 4명은 모두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들이다. 한국에 온지 10여 년이 됐지만 여전히 한국말이 서툰데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고향인 베트남어를 하지 못한다"며 "이주여성들의 여가활동과 아이들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칠 수 있는 공간으로 쓸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하루 빨리 지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민은 "연령 구성이 우리 마을처럼 고른 시골 마을은 전국에서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고, 외국에서 온 여성들이 마을에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선정태기자 wordflow@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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