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신년특집] 삶이 지칠 때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여라, 지리산이여!

입력 2020.12.30. 19:25 이석희 기자
[2021신년특집 권역별로 찾아간 지리산 100리 길]
지리산 노고단 일출

지리산을 그냥 갈 수는 없다. 짧은 바쇼 하이쿠 한 소절이라도 들고 가야지.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얼마나 울었기에 속이 텅 비어버렸을까? 여름을 그렇게 울던 매미는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준비물로 그 정도면 족하다. 겨울 산행은 비우러 가는 길이거니, 가다가 매미의 소식이나 얻어 듣는다면 거기에 더할 것은 없다.

걷기 전에 날아보자. 우리는 새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겨울하늘은 높고 춥고,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흐리다. 덩어리진 구름들이 세찬 바람결에 흩어지고 있다.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다니다가 문득 발아래 사람 사는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아! 거기에 거대한 소 한 마리가 주저앉아 낮잠을 자고 있는 것 아닌가! 표피는 잿빛초록이고, 머리는 해 뜨는 곳에, 꼬리는 해 지는 쪽에, 동서로 길게 누워있다. 육신은 사방팔방 비탈을 이루며 겹겹의 주름 폭을 이루고 있다. 등뼈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며 길고 좁은 길이 나 있다. 지리산! 그 등뼈의 능선길이 우리가 지칠 때 찾아가 끝없이 걸었던 종주 100리 길이다. 소의 육신, 산과 골과 곡을 감싸 안은 저 너른 품이 800리에 이르는 둘레길이다. 우리의 비행이 사실은 위성의 눈으로 보았던 것의 데자뷔인 셈이지만 그 덕분에, 영겁의 세월을 누워 있는 산의 속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리산 노고단 일출

지리산은 남쪽을 '겉 지리', 북쪽을 '속 지리'라고 부른다. 양지바른 겉 지리에 절이 많고, 해가 짧은 속 지리엔 당(巫堂)이 많았다고 한다. 겉 지리는 '대중살이'의 맛이 있고, 속 지리는 '독살이'의 멋이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쪽은 큰 절이 많고, 북쪽은 암자 토굴이 산재한다. 지리산은 크게 4개의 본사 권역으로 나뉜다. 북서쪽이 전북 남원으로 백장암 실상사가 있는 금산사 권역이다. 북동쪽은 경남 산청 함양으로 벽송사 대원사가 말사인 해인사 권역이다. 남동은 경남 하동 칠불사가 있는 쌍계사 권역이고, 남서쪽이 전남 구례 천은사 연곡사를 거느린 화엄사 권역이다.

크게 그은 지리산의 두 길. 높게 직선으로 가는 길과 낮게 곡선으로 도는 길. 전자는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종주길이다. 전에는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화대종주'가 불문율이었다. 요새는 차가 닿는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27km) 절반을 잘라먹고 다닌다. 그리고 산자락을 둥그렇게 도는 둘레길. 지리산 산역(山域)은 서울시의 2/3에 달한다. 이 길은 3개 도, 5개 시군에 16개 읍면, 90여개 마을을 시계처럼 도는 것이다. 전체가 295km, 통상 800리로 본다. 길을 남북으로 펴면 지리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거리다. 한 구간을 대략 10~20km 씩 나눠 전체가 20개 구간이다. 하루에 한 구간을 조금 더 가고, 중간에 하루 이틀 쉬면 보름쯤 걸린다. 지리산의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그런 길들이 하나로 연결된 우리나라 대표적 순례길이다. 2007년 사단법인 '숲길'이 창립되면서 길을 내기 시작하여 6년만인 2012년 동그라미가 완성되었다. 그 시작이 실상사 권역이다.

실상사의 아침

[실상사 권역]

민중의 가슴에 담은 성불의 꿈

실상사 권역은 둘레길 ①구간 주천-운봉(14.7㎞), ②구간 운봉-인월(9.9㎞), ③구간 인월-금계(20.5㎞)을 포함한다. 지리산 서북능선을 조망하며 걷는 길이다. ②구간에 황산대첩비, 국악의 성지, 송흥록 생가 등 둘러보면 좋을 곳들이 많다. ③구간 중간쯤에 백장암, 더 가면 금대암이 있다. 넓게 펼쳐진 다랑논과 산촌 마을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진다. 둘레 길은 정보가 풍부하니 줄일 것은 줄이고, 무늬만 밟는다. 해찰하듯 샛길로 빠져 산으로 차오르는 것이 제 맛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는 도의선사다. 간화선의 선종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에서 말없이 꽃을 들어 보였을 때 오직 한 사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 지었다는 염화시중의 미소. 불교사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이심전심(以心轉心)'이다. 선종의 기원은 거기서 찾는다. 선종은 달마로, 여섯 조사로 내려온다. 784년 당에 유학 갔던 신라의 두 승려가 법을 받아 귀국한다. 도의선사는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열었고, 또 한 사람 홍척대사는 지리산에 실상사를 창건했다. 통일신라 후기 '왕즉불(王卽佛)'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고 노비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민즉불(民卽佛)'의 혁명적 깃발을 펄럭이며 이 땅에 구산선문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실상사 앞마당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옛 석탑과 석등, 극락전 옆 수철화상(홍척의 제자)의 탑과 탑비, 국보인 백장암의 삼층석탑 등 당시의 유적이 산재한 것, 백성들이 다니기 좋은 평지에 위치하며 절 앞에 논밭이 펼쳐진 것들이 다 부처를 민중의 높이로 끌어내린 그런데서 연유한다.

실상사는 7암자 순례 길의 시작이다. 윤달 삼사(三寺) 순례만 해도 무병장수에 극락왕생이라는데, 하루 7암자는 그만 못할 까닭이 없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 지리산 북부 삼정능선을 오르는 약 16㎞의 숲길이다.

이른 아침부터 빠듯하게 걸어야 다 돌 수 있다. 약수암은 실상사 산내암자로 비로소 산사에 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불교박물관장을 지낸 흥선스님이 혼자 산다. 워낙 까칠한 분이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야 물이라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 삼불사는 단아한 암자다. 근처에 '견성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다. '까마귀도 경(經)을 외며 난다'는 구전이 내려오는 곳이다. 500m 쯤 오르면 초록색 지붕의 문수암이 나온다. 풍광이 북으로 탁 트여 있다. 토굴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맛이 제대로 난다. 돌층계를 오르면 천인굴이 나오고 바위에 흐르는 물소리가 동굴을 울린다. 곧 얼어 봄까지 고드름이 달려 있을 것이다. 문수암에서 상무주암을 거쳐 영원사로 가는 길이 이 코스의 백미다. 길은 약간 가파르지만 아늑하다. 길목마다 말라죽은 고사목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 바위를 덮은 검푸른 이끼들, 고사리나 부처손 같은 양치식물들이 어떤 시원(始原)의 느낌을 준다. 상무주암(1,162m)은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주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800년 전 보조 지눌이 깨달음을 얻은 뒤 보림(保任)하면서 돈오점수와 정혜결사의 기초를 닦은 곳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因地而倒者 因地而起)' 정혜결사문의 첫 문장이 여기서 쓰여졌다. 현기스님이 30년 넘게 독살이 하고 있다. 그 긴 세월을 어찌 홀로 사셨느냐고 물었더니 "한 사나흘 지난 것 같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영원사. 수많은 고승들이 머물다 간 천년가람이다. 절에 내려오는 '조실안록'에는 부용 영관, 청허 휴정, 사명 유정, 청매 인오 등 조사 109명의 법호와 행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산기슭을 건너 서산대사의 제자 청매스님이 창건한 도솔암이 있다. 7암자 길은 거기서 끝난다. 많이들 도솔암에서 실상사로 내려가기도 한다.

대원사

[대원사 권역]

아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무념무상

남원에서 함양으로 간다. 둘레길 ④구간 금계-동강. 벽송사를 경유하면 12.7㎞다. ⑤구간 동강-수철(12.1㎞).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 현대사 좌우투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⑥구간 수철-성심원(12㎞). 대원사 동쪽, 산청읍을 휘도는 경호강을 따라 걷는 순한 길이다. ⑦구간 성심원-어천운리(13.4㎞). 먼 길은 가기만 해서는 갈 수 없다. 가다가 멈춰야 끝까지 갈 수 있다. '숲길을 걷다가 다람쥐가 풀숲에 도토리 감추는 모습을 지켜볼 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 햇빛 눈부신 한낮,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볼 틈도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인생인가?'라고 했던 영국시인 헨리 데이비스. 그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이곳 단속사지(斷俗寺址)에서 멈춘다.

사지에는 두 개의 삼층석탑이 서 있다. 경주 감은사지와 꼭 닮은 꼴이다. 사지는 절의 무덤이다. 스님과 절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은허맥수(殷墟麥穗)라 하더니 찬란했던 옛 영화는 어디로 가고 빈 터만 남았을까? 겨울바람 부는 사지에 앉아 하염없이 석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무상(無常)이며 무념(無念)이라는 말들이 아는 사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⑧구간 운리-덕산(13.9㎞). 남명 조식이 머물렀던 산천재, 그곳에서 바라보는 덕천강과 천왕봉의 모습이 일품이다. ⑨구간 덕산-위태(9.7㎞), 여기까지가 산청, 대원사 권역이다.

지리산의 동쪽 끝 대원사는 비구니 도량이다. 절이 깨끗하고 단정하다 싶으면 대개 비구니 스님이 산다. 신라의 고찰이다. 지리산 절들은 여순항쟁 때 국군에 의해 많이 불탔다. 대원사도 사지였던 것을 1955년 '지리산 호랑이'라 불렸던 당대의 여걸 법일스님이 들어오면서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일구었다. 양산 석남사, 예산 견성암과 더불어 대표적 비구니 도량으로 꼽힌다. 높이 7m의 화강암으로 진신사리가 봉안된 다층석탑이 보물이다. 대원사 보다 더 유명한 것이 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이다. 귀한 고산식물들, 너럭바위와 기암괴석들, 그리고 천왕봉에 오르는 길목에 거연정, 군장정 등의 누정이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다.

쌍계사 

[쌍계사 권역]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

지리산 남쪽 양지바른 겉 지리로 넘어왔다. 지리산은 북으로 흐르는 물이 낙동강이 되고 남으로 흐르는 물이 섬진강이 된다. 여기서부터 섬진강 수계 하동이다. ⑩구간 위태-하동호(11.5㎞). 지리산 자락의 큰 댐인 하동호가 있는 곳이다. ⑪구간 하동호-삼화실(9.4㎞). ⑫구간 삼화실-대축(16.7㎞). 오른쪽으로 지리산 형제봉 능선, 왼쪽으로 멀리 광양의 백운산 능선, 그 사이로 강이 흐른다. 강으로 뻗은 산자락에는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마을이 있다. 갓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은 갓논이 비탈을 이루고 있는 풍경들, 추수 무렵의 가을빛이 가히 으뜸이다. ⑬구간 대축-원추분(8.5㎞). '토지'에 나오는 악양의 평사리 들판이 있는 곳이다. ⑭구간 원추분-가탄(11.4㎞). 가탄마을 앞에 흐르는 샛강이 화개천이다. 좌로 가면 화개장터이고 우로 가면 쌍계사다. 봄이면 10리, 벚꽃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

쌍계사는 조계종 제13본사로 신라의 고색창연한 대가람이다. 진감국사 대공탑비가 국보이고 대웅전 등 9점의 보물이 있다.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것을 우리나라 녹차의 시원으로 본다.(삼국사기) 경내에 차시배지 기념비가 있다. 남종선의 전법도량이고 차의 발상지이며 해동범패의 연원으로 보아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이 길에 들어섰으면 내친 김에 아자방으로 유명한 칠불사에도 들를 일이다. '버금 아(亞)'자 모양의 이 선원은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이나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갈 때마다 구들만 들여다보고 있던 주지 도응스님, 최근에 천년을 내려오는 구들의 비밀을 파헤쳤다고 하니 그 방에 한번 앉아보고 싶다. 또 한 곳, 서산대사 출가 암자가 있다. 화개 의신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30여분 오르면 원통암이 나온다. 칠불사 선원장 진현스님이 혼자 산다. 여름 겨울 안거는 칠불사에서 정좌하고, 해제되는 봄 가을에 암자로 돌아오니 때를 살펴 가야한다. 선승 특유의 웃음이 맑은 스님이다. 방대한 불경을 뒤져 조선시대 '제월당 대사집'에서 '의숭인장로낙발우원통암(依崇印長老落髮于圓通庵)', 한 문장을 찾아냄으로써 이곳이 서산대사의 출가지임을 고증했다. 하동군수가 산에 찻길을 내어준다는 것을 암자는 걸어 다녀야한다고 거절한 노장님이다. 좋은 차가 있으니 꼭 들러 한 잔 마시고 가기를 권한다.

구충암

[화엄사 권역]

이념투쟁 속에서 살아남은 각황전

경남 지나 전남, 하동 지나 구례다. ⑮구간 가탄-송정(10.6㎞), 섬진강과 나란한 길, 피아골 연곡사를 지난다. 구간 송정-오미(10.4㎞). 오미마을은 남한의 3대 길지로 꼽히는 운조루로 유명하다. 그곳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 있다. '누구든 쌀독을 열 수 있다'는 뜻이다. 흉년에 이 독을 열어 가난을 구제했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구간 오미-방광-난동(18.9㎞). 여기가 두 갈래 겹 길이다. 구간 방광-산동(13㎞). 어느덧 지리산의 서쪽 끝 천은사까지 왔다. 마지막 한 구간 남았다. 구간 산동-주천(15.9㎞). 노고단을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봄날, 현천마을에서 계척마을까지 산수유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할머니 산수유나무'와 정겨운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밤재로 이어진다.

화엄사는 지리산 산세에 걸맞은 당당한 대가람이다. 백제 성왕 22년(544) 인도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를 직선으로 지나 공간이 확 넓어지는 구조다. 거기서 비로소 만나게 되는 각황전. 경복궁의 근정전 다음이고, 불전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장육전 자리에 숙종 28년(1702년) 새로 지었으니 300년이 넘었다. 각황전이 좌우 이념투쟁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소실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았을까를 생각해보면 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그와 짝을 이루는 석등 역시 크기와 맵시 면에서 우리나라 으뜸인 국보다. 네 마리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효대의 사사자삼층석탑, 봄날 각황전 옆에서 마당으로 내려다보이는 진분홍의 매화 한그루, 지장암 경내의 늙은 올벚나무도 화엄사의 빛나는 유산이다.

화엄사 뒤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구층암이 있다. 늙은 모과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작은 집. 덕제스님이 살고 있다. 큰 절과 암자 주변에는 약 2만5천평 정도의 야생 차밭이 있다. 이 드넓은 차밭의 총 관리인이자, 차 생산자가 덕제스님이다. 차는 1년에 100g들이 1천500봉지 정도가 나온다. 절반 이상을 화엄사에서 가져간다. 나머지는 나눠 마시고, 돈이 필요해서 팔기도 한다. 식구가 스님하고 중학생 둘, 고등학생 하나, 공양주 노보살 그렇게 다섯이다. 인연이 닿은 아이들을 아주 어려서부터 키워 학교 보내주고 같이 사는, 스님이 아빠다. 화엄사에 머물면 며칠이고 찾아가 차담을 나누어도 마다하지 않을, 차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다.

"인생은 다리이거니, 지나는 가되 그 위에 집짓지는 말라"

지리산 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찻길로 가는 절과 산길로 가는 절. 후자는 걸어가야 한다. 30여분 걸으면 되는 암자도 있고, 노고단 밑의 우번대나 반야봉 아래 묘향대처럼 몇 시간 걸어야 닿는 토굴도 있다. 그런 곳에는 가난한 스님들이 산다. 가난하다기 보다는 무욕(無慾)의 삶이라 해야 더 맞을 것이다. 찻길이 끊긴 깊은 산중에서 외로움과 가난을 벗하며, 삶 자체가 수행인 저 스님들 덕분에 우리 불교가 지탱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괜히 찾아가 홀로 맑혀놓은 우물을 흐려 놓지나 않을지 저어되지만, 아무리 도를 닦아도 사람은 그리운 법.

"마당에서 포행을 하고 있는데 저 밑에서 누가 찾아오잖아요? 수행하는 곳이니 되돌아가시라고 해요. 그래서 그냥 가잖아요? 그러면 수좌들이 혼자 속으로 뭐라 하는지 아세요?"

"아! 번뇌여! 그러십니까?"

"가란다고 진짜 가냐? 차나 한잔 마시고 가지. 그러지요 하하"

전에 문수골 관음암에서 독살이 하는 진명스님이 들려준 얘기다. 큰 절에 가거든 마음을 내어 암자 토굴에도 들러볼 일이다. 빈손으로 가지 말고, 그런 곳은 장보기가 어려우니 떡이나 마른 소채류, 찬거리, 국거리, 달달한 과자 같은 것을 조금 들고 가면, 스님 입이 벌어지면서 좋아한다. 불전에 시주도 조금 놓고. 그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 몫의 적선(積善)인 것이다.

먼 길, 거대한 초록 소의 둘레를 우리는 한 바퀴 돌았다. 끝에 도착하니 끝은 다시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 한 바퀴를 돌고, 또 한 바퀴를 돌고, 윤회(輪廻)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매미는 지난 여름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어디로 떠났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7년을 기다려 여름 한 철의 짧은 생을 마치고 떠났다는 것, 떠난 자리가 텅 비어 있더라는 것, 내년 여름에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 우리가 아는 것은 그뿐이다.

'인생은 다리이니, 지나는 가되 그 위에 집짓지는 말라'는 말, 약수암 흥선스님이 어느 랍비의 잠언이라면서 들려준 말이다. 산다는 것은 다리 위를 걷는 것이로구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리 밑은 매미의 허물처럼 텅 비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저무는 겨울 산길을 걷는다. 한 모퉁이를 돌았을 때 저 아랫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면,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싶다. 글=이광이·사진=하지권

자료 제공=한국불교문화사업단 계간지 '템플스테이'


이광이는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불광에 '절집 방랑기'와 '지리산 암자'를 연재했다.

하지권은

불교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불교 전문 사진작가이다. 월간 '불광'에서 사진을 전담했으며 현재는 계간 '템플스테이' 사진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성이 뛰어나고 특히 불교의 선 사진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 이건어때요??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
메타버스
"메타버스 온라인 전시 콘테스트에 도전하세요"
전남문화재단은 오는 8월 8일까지 도내 예술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전시 콘테스트를 개최, 우수한 전시를 선정해 실제 전시를 개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이번 콘테스트는 지난해 12월 문화재단이 구축한 3D 디지털 트윈 방식의 '남도 메타버스 미술관'을 보다 많은 예술인이 관심을 갖고 자기 홍보를 위한 포트폴리오로 활용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기획됐다.콘테스트 참가 자격은 도내 문화예술단체이거나 전남에 거주 중인 예술인, 3인 이상의 예술인 그룹이며 참여를 원하는 예술인은 '남도 메타버스 미술관'에 회원 가입해 온라인 전시관을 임대받아 미술작품을 업로드하면 된다.심사기준은 관객평가 70%·전문가 평가 30%로, 가장 배점이 높은 관객평가는 온라인 전시 조회 수와 방명록 횟수로 집계된다.때문에 온라인 전시를 주변에 널리 홍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온라인 전시관을 구성한 예술인을 선정해 온라인 전시가 실제 전시로 개최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자세한 내용은 남도사이버갤러리와 전남문화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선출 전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온라인 전시 콘테스트는 메타버스 가상 온라인 전시 프로그램을 보다 많은 작가가 활용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사업이다"며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도내 미술작가들이 시공간 제약이 없이 자신의 작품을 아카이빙하고 홍보해 작가로서 인지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노잼도시
전국 SNS기자단, '꿀잼광주' 알리기 위해 뭉쳤다
전국의 20여 명이 '꿀잼광주'의 구석구석을 알리기 위해 뭉쳤다.광주시는 대전, 부산, 울산, 충남, 충북, 경남, 제주도 등 타시·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SNS기자단을 초청해 '지금은 꿀잼광주에 광며드는 중!'이라는 주제로 '2022 전국 SNS기자단 초청 광주 팸투어'를 지난 20일부터 21일까지 양일간 실시했다고 밝혔다.이번 팸투어는 제29회 광주세계김치축제, 서창들녘, 에너지파크, 전일빌딩245, 양림동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 여행자의 ZIP 등 가을정취와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관광지 중심으로 진행했다.특히, 제29회 광주세계김치축제 개막식에 참여해 강기정 광주시장과 홍보대사 배우 김수미와 깜짝 만남 시간을 갖고 생생한 축제 현장 분위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실시간 공유해 축제를 전국적으로 홍보했다.또, 1박2일간 광주상생카드룰 사용하며 로컬상품과 먹거리를 구매하는 등 지역 소상공인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20여 명의 전국 기자단이 1박2일간 광주 곳곳의 매력을 취재한 콘텐츠는 본인이 소속된 시·도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국에 확산될 예정이다.투어에 참여한 부산 외국인 SNS기자단 싱정웨이(邢正威·중국) 씨는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 방문한 광주의 맛과 멋뿐만 아니라 정이 스며들어 광며들고 간다"고 말했다.이영동 광주시 대변인은 "이번 팸투어를 통해 각 시·도 매체에 생생한 광주시 현장 콘텐츠가 전파돼 '꿀잼광주'의 매력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시·도 간 콘텐츠 교류 등을 통해 각 지자체만의 고유한 매력을 알릴 수 있도록 소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밀했다. 박석호기자 haitai2000@mdilbo.com
지방소멸
[카드뉴스] 동명동 핫플레이스, 보해소주 팝업스토어
광주에 젊은 활기가 가득한 곳 일명 '광주의 동리단길' 동명동에서 보해양조가 보해소주 스몰 액션 스토어(팝업스토어)를 지난달 12일에 시작했다. 스몰 액션 스토어는 MZ세대와 친환경·자연환경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겨냥한 힙한 팝업스토어다. 팝업스토어는 바다를 보호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기획된 것으로 보해소주 스몰 액션(SMALL ACTION) 캠페인의 첫걸음이다. 보해소주 스몰 액션 캠페인은 스몰 액션 캠페인이라는 이름과 같이 '작은 실천으로 환경을 지키자'는 취지로 플로깅 활동을 진행한다. 플로깅(plogging)이란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말한다. 스몰 액션 캠페인은 보해가 가지고 있는 '바다의 보물'이라는 뜻을 담은 사명처럼, 쓰레기를 줍고 줄이는 작은 행동이 모여 보물 같은 바다를 소중히 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캠페인을 준비했다.보해양조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2030세대가 가득하고 광주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동명동을 선택했다. 플로깅 활동을 참여하게 되면 생분해성 수지 위생장갑, 비닐봉지, 대나무 집게로 구성된 친환경 플로깅 체험 키트를 받아 동명동 일대에서 플로깅할 수 있다. 이후 가져온 쓰레기 분류를 마치면 소금 아이스크림으로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SNS 업로드와 설문 참여 시 보해소주 굿즈를 추가로 증정한다. 참가자들은 플로깅에 동참하면서 육지의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결국 소중한 바다를 지키는 첫걸음이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만들었다.수거된 쓰레기는 작가들과 협업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해 팝업스토어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방문객들은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쓰레기에서 보물로(From Trash To Treasure)' 거듭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보해소주 스몰 액션 스토어'는 7월 12일까지 총 두 달간 운영되며 휴무일 없이 오후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방문 가능하다. 방문객들을 위해 플로깅 체험 외에도 친환경 에코백, 양말, 보해소주가 더해진 프리미엄 플로깅 키트 등 다양한 굿즈 판매도 함께 진행된다.보해소주에서 해양보호 캠페인으로 이어진 나비효과보해소주는 기존 소주와 다르게 소금을 넣었다는 가장 큰 차별점이 있다. 보해소주는 세계 3대 소금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핑크소금, 안데스산맥 호수 소금, 신안 토판염을 사용하여 소주 특유의 쓴맛과 강한 알콜향을 잡는 솔트레시피를 통해 기존 소주의 '과당'으로 맛과 향을 가리는 제조방식을 깬것이다. 2021년 출시 후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보해소주'가 역대 신제품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이며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보해양조는 보해소주에 사용되는 소금이 결국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건강한 바다 환경을 만들기 위한 해양 환경 보호 캠페인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보해양조는 어떤 기업인가?보해양조는 목포에 본사를 둔 광주전남 대표 주류전문 기업이다. 보해소주 말고도 잎새주, 복받은 부라더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보해소주 팝업스토어 어디서 할까?보해양조와 아우르(OWLR)가 콜라보한 보해소주 스몰 액션 팝업스토어는 광주 동명동 아우르 팝업존(별채)에서 진행 중이다. 아우르는 지난달 오픈한 ㈜광지주의 첫 브랜드다. 전남 특산물을 활용한 다이닝 바, 그로서리 마켓 등 전남 로컬푸드를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해양 환경 보호를 위한 보해양조 행보지난달 12일 문을 연 광주 동명동 팝업스토어를 통해 그 시작을 알렸으며, 이어서 25일 목포 보해소주 플로깅 센터 & 스몰 액션 스토어를 오픈했다. '보해소주 플로깅 센터'는 목포 여객터미널과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보해는 여객터미널 이용객들이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플로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플로깅 센터를 열게 됐다. 섬에 들어가는 관광객들도 플로깅 키트를 받아 관광을 하며 플로깅에도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참가자들 중 플로깅하고 있는 사진에 해시태그 'pickup_bohae'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플로깅과 관련된 굿즈를 제공한다. 플로깅 센터와 스몰 액션 스토어는 올해 12월 31일까지 운영되며 휴무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방문 가능하다.문예송기자 rr3363@md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