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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사이드 칼럼-김요수의 '꾸브랑 나브랑' 훈수 그리고 제3자의 눈

입력 2017.08.22. 00:00

소뿔이 꼬부라들고, 염소 뿔도 물러 빠진다는 무더위가 지났다. 우리말에서 더위는 '먹다'와 '든다'로 나타낸다. 더위는 먹는 일처럼 온몸으로 느끼고, 온 삶에 스며들기 때문인가 보다. 더위가 지나치면 '무더위'나 '한더위'라고 한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왔으니 시골에서는 참깨 베어 깨 대를 'ㅅ'으로 세워 말리고, 빨간 고추를 따 말리는 일을 하겠다. 거둬들인 곡식 오래 간수하려면 잘 말려야 한다. 아직 해는 짱짱해서 벼 익기에 좋다.

이때쯤 농사꾼들은 당산나무 응달에 바둑판이나 장기판을 깐다. 곡식을 골고루 잘 말리려면 때맞춰 한 번씩 뒤집어 줘야하고,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로부터 곡식을 지키려는 일이다. 더위를 재촉하던 매미소리가 짜증에서 노래로 바뀐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가장 신나는 일은 '훈수(訓手)'다. 두는 사람은 내 것에만 빠져들지만 보는 사람은 전체를 보니 훤하다. 두는 사람은 이기고 지는 일에 자존심을 걸지만 보는 사람은 누가 이겨도 되니 편하다. 훈수 두는 사람은 게염(욕심) 부리지 않아도 되니 '다음(미래)'이 잘 보인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도시에도 이런 훈수들 있다. 업무 마친 직장인들 삼삼오오 선술집에 모인다. 선술집은 옛날에 선 채로 간단하게 마시는 술집이다. 요즘 선술집을 대신에 맥줏집 있다. 모여서 신세를 탓하기도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들어주던 동료들 물론 간섭을 한다. 이래라, 저래라, 그게 훈수다. 훈수만 잘 들어도 틀림없이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데 또 다른 자존심이 훈수를 듣지 않게 만든다.

맥줏집에서는 사회의 이슈나 정치(선거) 포인트도 짚는다. 주로 언론에 나온 말만 떠든다. 훈수의 묘미는 남의 말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꺼내는 일이다. 자기주장이 없으면 훈수가 아니다. 언론에서 떠든 일을 되풀이하는 일은 그냥 앵무새일 뿐이다. 나도 들은 말, 쟤도 아는 이야기를 재탕 삼탕 하는 건 의미 없다. 세상을 끌어가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펼치는 사람이다.

훈수, 한발 떨어져서 보는 일이다. 특정한 누구의 일이 아니라 객관의 눈으로 살핀다. 이른바 제3자의 눈, 옳음과 그름이 더 잘 보인다. 우리의 삶도 간혹 한 걸음 떨어져 나와 살펴봐야 한다. 자주 떨어져 나와 살피면 더 좋다.

'한 발자국'이라고 쓰는 사람 많은데 잘못 쓰는 말이다. 발자국은 발로 밟은 자리인 '자국(흔적)'을 말한다. 발자국은 모양이니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발자욱'이란 말은 없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면서 '한 발자국 앞으로!'라고 써 놨다. 여기서는 발자국이 아니라 '한 걸음'이나 '한 발짝'이라 써야 맞다.

내 삶에서 떨어져 나와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내 삶에도 훈수를 하란 뜻이다.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남의 삶에 훈수를 잘하면 '도사'라 불리고, 내 삶에 훈수를 잘하면 '존경' 받는다. 훈수를 어설프게 하면? 실랑이 벌어진다. 서로 옥신각신하게 만들어 어지럽히고 심지어 난장판 만든다.

영화 '택시운전사', 제3자의 눈으로 5·18을 봤다. 외국 기자의 눈으로, 서울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잇속이 없으니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했다. 믿음이 훨씬 크다. 당한 사람이 감정에 치우칠 지도 모르는 일을 제3자는 이치에 맞게 본다. 저지른 사람이 제 잇속에 따라 움직일 때 제3자는 상식과 원칙의 눈으로 본다.

하지만 훈수 함부로 하지 마시라. 잘못 훈수했다간 뺨 맞고, 훈수하다 '것도 모른다'고 무시 당하면 쪽팔리니까. '쪽'은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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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산업진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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