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 일이다.
2010년, 시민단체 광주여성센터 동아리 '틈'이 일을 냈다. 영화전공자 하나 없는 이들이 영화를 만들더니 영화제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광주여성영화제'.
이들은 두 해 전부터 영상공부를 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비전공자들이었지만 작품은 예사롭지 않았고 TV에 방영되더니 크고 작은 무대에서 수상 기록도 세웠다.
자신들의 작품을 감상해보는 무대를 꿈꿨다. 상영회라도 해보자, 내친김에 다른 지역 작품들도 함께 보면 어떨까.'타 지역에는 여성영화제도 있는데 그럼 우리도 광주여성영화제를 해보자'.
그랬다. 축제는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뜨겁게 시작됐다. 누군가는 시큰둥해 했고 관심있는 당사자들 외는 별반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광주여성영화제'는 지역 영상문화의 핵심축이 되고 있다.
영화제와 함께 성장한 이들이 지난 2018년 한국영화사에 전설을 하나 더했다.
헐리우드 등 첨단 영화산업현장에서 공부한 영화인들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전공은 커녕 동네를 별반 벗어나 본적도 없는 광주 영화인들이 대한민국 최고 영화제에서 작품성으로 당당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경호·허지은 감독이 '신기록'으로 청룡영화제서 당당히 단편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렇다. 전공자도 없는, 다른말로 전공을 뛰어넘는, 학제간 융합과 혼성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물이다. 특히 광주를 무대로 촬영했고 감독 등 전 스탭이 광주 토박이들이라는 점에서 문화 광주의 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광주영화산업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여, 지금 광주 독립영화 제작여건은 좀 나아졌는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가.
지난 15일 끝난 11회 여성영화제를 이끈 광주 영화인들의 '부러움'은 아프고 부끄럽다.
이번 영화제 개막작 최진영 감독의 '태어나길 잘했어'가 지역 영화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전주를 무대로, 전주 영화인들이 만든, '장편' 영화라는 점에서다.
11년째 영화제가 진행되고 수많은 역량있는 영화인들이 포진해 있지만 광주 현실은 제대로 된 장편 하나 만들기 어렵다.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기자간담회서까지 소회를 털어놨다고 한다. 영화인들은 "능력있고 좋은 감독과 스탭들이 많지만 장편을 만들 기회도 없고 단편도 최근에 와서 조금 숨통이 틔인 실정"이라며 "전반적으로 영상제작 등 영화관련 문화가 열악하다"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멀리 갈것도 없다. 이웃 전주시는 영상위원회를 중심으로'기생충'을 비롯한 영화상영 유치 등 영상산업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다. 다른 한편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도 활발해 장편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의 무대가 열려있다. 광주는?
광주시는 지난해 5·18 40주년만에 처음으로 5·18 브랜드 영화제작 지원에 나섰고 독립영화지원도 다짐했다. 허나 이는 순전히 이용섭 시장의 의지와 관심사라는 점에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는 관심사가 중장기전략으로, 장기비전으로 만들어져 영상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져야한다는 비판이다.
'광주는 환경은 어렵지만 그토록 훌륭한 영화인들이, 작품이 나왔다'라며 '전설'을 소비나 하고 있을 것인가, 내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은 분명하고 이제 과정으로 보여줘야할 일이다.
문화체육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 · [칼럼] 선택의 시간, 노새와 버새
- · [공연 리뷰] 일본인의 양심으로 전한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
- · [공연리뷰]안정성은 곧 예술적 풍부함으로
- · [공연 리뷰] 아직 오지 않은 소녀의 광복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