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정책위원회'가 만신창이의 광주 건축 환경에 숨결을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아파트 공화국, 건설공화국. 불과 몇 년 사이 광주가 듣고 있는 오명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도시에서 도시 재개발은 아파트 건설의 다른 표현이 됐다. 문화예술도시, 예향에서 벌어지는 현재적 상황이다. 수 십 년 삶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맥락도 없는 아파트가 하늘로 치솟는다. 차벽을 치듯 도심에 들어선 성냥곽 아파트들은 흡사 점령군 모양새다.
심지어 이 아파트들은 시민들의 공유재산인 조망권을 비싼값에 팔아먹고 있다. 강탈에 다름아니다. 봉이 김선달 저리가라 할 지경이다. 인근 지역은 물론이고 광주시민들에게 어떠한 응당의 지불(공공성 확보)도 없다.
민선 7기 들어 도시 전 분야에 '광주다움', 정체성 찾기를 선언했지만 도시는 괴물 아파트에 점령당한 상태다. 7기에도 문제적 고층에 허가를 내주며 광주다움은커녕 공공성 확보도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건설공화국'이라는 치욕스런 별칭을 벗지 못하는 이유다.
더욱이 이들이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다른 행태를 보인다는 사실에 이르면 치욕은 극에 달한다. 비싼 설계비를 들여 공공성을 갖추면서 광주서는 무지막지한 성냥곽 행렬이다. 이같은 행태는 대기업, 지역 건설업체가 다르지 않다. '광주가 건설업체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약해서, 광주가 그리 만만한가. 준비 안된 행정도 그렇고, 덥석덥석 사들인 시민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도 없다.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할 시 건축심의위원회는 위원 절반 이상이 건축 업계 등 이해관계인들로 구성돼 형식적 공정성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근본 없는 고층 아파트들이 이 위원회를 간단히 넘어섰다는 점에서 이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다행인 점은 광주시가 지난해 총괄건축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건축의 공공성 확보에 나섰다는 점이다.
이후 총괄건축가를 중심으로 공공건축 설계공모 공정성 담보, 전국 최초 공공건축물 건립 가이드라인 북 발간 등 다양한 제도를 정비하고 나섰다. 이들 일련의 제도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정책을 의결할 수 있는 건축정책위원회를 최근 출범시켰다.
핵심은 지금부터다. 시가 이 위원회를 얼마나 실효적으로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다. 도시가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느냐,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가느냐가 위원회 활성화 여부에 따라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기본법에 근거한 이 법정위원회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우선, '정책'을 다루는 유일한 위원회다. 도시정책, 도시계획 등 도시 전반의 정책에 대한 제안과 심의 의결이 가능하다. 그동안 시 내부에서 실국별로 우후죽순으로 진행했던 건축설계와 발주 등을 준비단계부터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무분별하고 맥락없는 건축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건축물을 위한 공공의 역할과 의무를 제도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민간건축물이나 조망권 등 시민 공공재로서의 도시건축 문화를 제도와 정책으로 뒷받침할 수도 있다.
민선 7기가 표방한 광주다움의 실행 의지는 이 위원회 활성화 여부로 반증되는 것이다. 도시를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제반 환경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도쿄의 변방도시에서 세계 최고의 창의도시, 관광도시로 거듭난 일본 요코하마 사례가 결코 먼 이야기만은 아닐 수 도 있는 것이다. 건설공화국으로 남느냐, 광주만의 독자적 색깔을 구축해가느냐는 이제 온전히 위원회의 활성화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 부국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 일상 속 휴식 가능한 건축적 산책 공간 최근 광주광역시건축사회 회원 20여명은 대구 군위에 자리한 사유원 답사를 다녀왔다. 광주광역시 건축사회(회장 정인채) 회원 20여명이 함께 최근 사유원 답사에 다녀왔다.사유원은 대구 군위군에 위치한 곳이다. 광주에서 차로 3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 할 수 있는 장소였다. 꽤 먼 거리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무색하게 회원들과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심리적 거리는 1시간정도 되는 듯 했다.사유원은 대구의 향토기업 태창철강의 유재성 회장이 모과나무를 수집해 키우던 정원을 '사유를 위한 수목원'으로 조성하고자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고 준비해, 2021년 9월 정식으로 개관했다.우리는 코르텐강판소재의 정문 '치허문'을 지나, 안내소에 도착했다. 생수 한 병과 답사지의 지도가 담긴 간단한 책자를 들고 '사유원'을 두발로 사유할 준비를 했다. 근래에 계속 된 비도 잠시 쉬는 답사 날, 봄의 기운을 담고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을 설레이게 했다.사유원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계단으로 시작한다. 걷는 내내 소나무향과 흙 밟는 소리, 회원들이 가볍게 나누는 잔잔한 대화소리가 함께 했다. 간간히 답사임을 망각하고 '좋은 산책'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걷다 보면 첫 번째 목적지인 '소요헌'이 눈에 들어온다. 소요헌은 '자유롭게 거니는 집' 이라는 주제로 설계 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작품이다. 자연과 건축이라는 극명한 차이를 조화롭게 엮어 낸 건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된 소요헌은 인공조명 없이 자연채광만으로 공간의 깊이와 빛의 질감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우직한 철문이 나타난다.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전면이 유리로 된 창과 건축 모형, 쉴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곳은 건축가의 방(요요빈빈) 이라고 한다. 알바로 시자가 디자인한 가구와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알바로 시자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것'들에 영감을 얻고 발길을 옮겨, 사유원의 시작 이라고 할 수 있는 모과나무 정원 '풍설기천년'으로 향했다. 유재성 회장은 우연히 일본으로 밀반출될 예정이었던 모과나무 네 그루를 알게 되었고, 이 공간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 모과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 된 귀한 나무들이었는데, 일본 분재로 모과나무가 인기가 많아 일제 강점기시절 부터 우리나라의 모과나무가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이를 알고 유재성 회장은 모과나무들을 사 모으기 시작하였고, 무려 108그루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유원의 시작이다.300년 된 모과나무지만 아직도 연분홍색의 단정한 꽃이 피고, 향기로운 모과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은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회원들과 얘기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사유원 정상에 도착한다. 저 멀리 대구 팔공산이 보이는 이곳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이 위치해 있다.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을 따라 가면 지하로 내려가 하늘만 보이는 건축물과 만난다. 정상에 올라 좋은 풍경을 보았으니, 이곳에서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명상하는 고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이곳에서 한참을 물과 빛이 만들어준 그림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허만수 건축사명정 옆으로는 최욱 건축가가 설계한 카페 '가가빈빈'이 자리한다. 사유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단층의 '가가빈빈'은 사유원을 한없이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든 곳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하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했다.광주에도 사유원처럼 건축적 산책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과 질투가 마음한 곳에 생겨난다. 물론 광주에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 거리, 광주공원, 양림동 등 역사성과 랜드마크적인 요소가 있는 좋은 건축물과 장소가 있다.광주천이나 영산강은 산책할 수 있는 보행자 동선과 자전거 도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활용해서 사유원처럼 숲을 거닐며 건축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이 강가를 거닐며 현대 건축을 만나는 경험 또한 광주시민에게 일상 속 휴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허만수 사계절프로젝트 건축사사무소 대표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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