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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세상' 꿈꾸던 노무현과 5·18

입력 2020.05.21. 18:25 수정 2020.05.21. 19:02
[노 대통령 서거 11주기]
인생 터닝포인트 된 '그날 광주 진실'
부산 민주화 이끌며 '행동하는 양심'
文 "5·18하면 노무현" 남다른 애정
1987년 9월 24일 대우조선 노사분규와 고 이석규 열사 장례식 방해 혐의로 구속 23일만에 출소한 노무현 변호사와 출소를 환영하는 국민운동부산본부 관계자들. '만세승리, 노무현 변호사 석방을 민족민주승리의 연장으로, 국민운동부산본부' 등이 적힌 플래카드 들고 관계자들이 환영하고 있다. 사진=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문재인 대통령이 '5·18하면 생각나는 사람'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80년 5월 이후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었고, 광주를 알게 될 수록 부채의식을 가지게 됐다. 이후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됐다"며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 부산가톨릭센터에서 5·18 진실을 알리는 광주비디오 관람회를 3~4일 정도 열기도 했다. 부산지역 6월항쟁의 큰 동력이 됐다.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확장한 그런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그를 기억했다.

노 대통령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대통령 5년 임기 내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하룻밤을 머물며 무등산에 오르기도 하는 등 광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오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노무현 대통령과 5·18의 인연을 되짚는다. 내용은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와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출간한 '문재인의 운명'에서 발췌했다.

1988년 11월 '단군이래 최대도둑 전두환 이순자 구속하자!!' 피켓을 부착한 차량적재함 위에 올라 5공청산 촉구 연설하는 노무현 의원.사진=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광주 진실, 민주화 원동력

노무현 대통령, 그러니까 당시 변호사였던 그는 80년대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광주의 오월 정신을 부산으로 전파했다.

부산 최대 조세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며 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만 해도 사회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는 81년 9월 집권 초기 통치기반 확보를 위해 전두환이 거짓으로 기획한 부산지역 최대 용공 조작사건인 '부림사건'을 변호하며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및 독재정권을 비호한 미국의 책임 문제를 제기할 목적으로 부산의 몇몇 대학생들이 문화원에 불을 질렀던 부산미(美)문화원방화사건의 변론까지 맡으며 노동·인권 전문변호사로의 길을 걸었다. 각종 시국사건과 노동사건의 변호를 맡는 것은 물론 실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재정적으로 돕는 등 행동하는 양심의 모습을 보여줬다.

1987년 7월 9일 부산역 광장에서 진행된 고 이한열 열사 추모제 및 직선제 댕취기념 부산시민대회에 참석하여 운집한 시민들 앞에서 노무현 변호사가 연설하고 있다.사진=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87년 5월에는 당시 동료였던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광주비디오' 관람회를 열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억하는 바로 그날이다.

그의 일련의 활동은 부산 지역 6월항쟁의 원동력이 됐고, 부산카톨릭센터는 서울 명동성당이 해왔던 항쟁의 구심 역할을 이어갔다.

2004 제 2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 무등일보 DB.

◆청문회 스타서 대통령으로

88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영입 제안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노무현 변호사는 '전두환 정권의 실세'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부산 동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해 가을 국회에서 열린 5공비리·광주특위 청문회에서 일약 스타가 됐다. "정당한 자위권 발동"이라고 주장하는 전두환을 향해, 또 여전히 그를 비호하는 세력을 향해 "전두환이 아직도 너희들 상전이야"며 고함을 지른 초선의원의 당돌함은 그간 울분의 세월을 보낸 광주에게 통쾌함을 안겨줬다.

하지만 현실 정치와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는 결국 정치를 떠났다. 다행히 1989년 야권통합 운동과 함께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온 그는 온갖 지역 분열주의와 특권, 반칙 등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다 2002년 광주와 전남지역민들이 보내준 압도적인 지지를 힘입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4 제 2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 사진=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노 대통령은 5·18을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진 평화적 정권교체 토대' '숭고한 희생' 등으로 평가하며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자율과 분권 지향'이라는 국민통합의 교두보로 정의했다. 대통령 임기 내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며 5·18을 국가 최고 수준 의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도 받았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 대통령의 화합과 상생의 시대는 아직 진행중이지만 물과 물이 만나면 바다를 이루는 법, 역사의 큰 줄기가 힘차게 흐르도록 오월 광주는 오늘도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김성희기자 pleasur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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