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다시 간 길 ⑭ 뱃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 꼴이 되어 있었다 먼저 초록색 빵떡모자가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이 천인봉의 어깨 위로 뻗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천인봉이 어찌 했는지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록색 빵떡모자가 으억, 비명을 내지르면서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배에 있던 다른 도둑들이 우 하니 그에게 몰려들었다. 고리짝을 챙긴 그들이 자기들의 배로 돌아갔다. 천인봉은 뱃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 꼴이 되어 엎드려 있었다. 누구도 그와 한편이 되어 도둑들에게 대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고 내가 변명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도 도둑들에게 대들지 못했다. 내심 도둑들에게 동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내 동무인 천인봉이 그꼴이 되는 판에 찍 소리도 못했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말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고리짝을 자기들의 배로 옮겨실은 도둑들은 두 배를 묶어 놓았던 밧줄을 풀고 닻을 올렸다. 그리고 안개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때야 보았더니, 그 배에는 외돛 말고도 양쪽의 뱃전에 여러 개의 노들이 걸려 있었다. 그 노들을 다 저어댄다면 굉장한 속도를 낼 것이었다. 나는 천인봉을 일으켜서 부축해다 앉아왔던 자리에 눕혔다. 코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왼쪽 눈두덩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괜찮겠소?” “걱정말라우요. 이깐 거넌 닐두 아니야요. 돌아댕기다 보멘 벨일 다 당하게 되우다…. 기런데 풍헌님언…?” 어느 아낙이 건네준 머릿수건으로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을 닦아낸 뒤에 내가 묻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는 곧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일어나 앉더니 차일 쪽을 돌아보면서 풍헌을 걱정하기까지 했다. 풍헌은 어느 도둑에게 야무지게 발길질이라도 당했기 때문인지, 단순히 목사에게 갖다 받칠 재물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인지 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앓고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는 참이었다. 벌써 두 종들은 풍헌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요 벵신덜! 둑으라우! 둑으라우! 강물에 빠져 뒈져삐레! 날래 강물에 빠져 뒈져삐레…!” 풍헌은 사정없이 종들에게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주먹질을 해대다 못해 빗물에 젖은 갓신을 벗어 철썩 철썩 후려쳐대기까지 하고 있었다. 종들은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짧은 비명조차 한 차례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풍헌을 말리러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천인봉이 일어서더니 절둑거리면서 차일 쪽으로 가고 있었다. “풍헌님, 고정하시라우요! 고만 고정하시라우요! 황우장사라두 기놈덜얼 못 당했을 것이야요…. 풍헌님, 고만 고정하시라요! 요놈덜두 하느라구 했십니다…. 고만….” 천인봉이 두 손을 붙들고서 풍헌을 말리고 있었다. 풍헌의 한 쪽 손에 들린 갓신이 바람타는 나뭇잎처럼 바르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님자레 지풀묵 장시 천가가 맞네?” “요. 풍헌님!” “기래, 기래! 내레 님재럴 번 보았디….” “요, 기렇수다레.” 천인봉은 슬그머니 종들을 밀어내고 풍헌 앞에 주저앉았다. 종들이 일어서더니 슬슬 풍헌의 눈치를 봐가며 이물 쪽으로 몸을 피했다. “기럼, 기럼! 사램언 님재 같아야디. 가이(개)두 은혜럴 아넌데, 사램이 님재 같아야디…. 더놈덜언 밥 두디 옷 두디 재워 두넌데두 가이만두 못한 놈덜이라느까니…. 쯧쯧쯧쯧…, 벵시덜!” 나는 거기서 그만 두 사람한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왜인지 두 사람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느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공덜언 뭬하고 있네? 날래 돛얼 올리라우!” 천인봉이 풍헌이라도 된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사공들을 다그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고서 나는 눈을 감고 뱃전에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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