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000년 마을이야기 광산구

장록나루 뽕뽕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3.09.12. 17:56 박지경 기자
[광주 1000년 마을 이야기 광산구]
⑨동곡~평동
<호가정과 영산강,서창·대촌 들녘> 광주송정역에서 나주 노안방향으로 8km쯤 가다가 '호가정'을 안내하는 도로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2 km쯤 들어가면 노평산 끝자락에 <호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구강(九江,영산강)이 흐르고 건너편으로는 서창과 대촌들녘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140여km에 이르는 '영산강자전거길'이 이 곳을 지나간다. 황금들판이 눈부신 가을의 문턱에서 자전거를 타고가 호가정을 둘러보고, 언덕아래 양켠에 서 있는 시비(詩碑)를 보면 '큰소리로 노래' 부르는 설강(雪江)선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림=김집중 작가

[광주 1000년 마을 이야기 광산구]⑨동곡~평동

'갈매기의 맹약은 해가 져도 식지 않아/ 돌을 깎아 흐르는 물가에 굽은 난간을 내었네/ 산은 형세를 따라 그림자 높거나 낮고/ 물고기 무리지어 노는 여울은 옅고도 깊네'

흐르는 물가 굽은 난간에 서서 산과 강을 바라보고 있다. 높고 낮은 산 그림자와 얕고 깊은 여울이 좋은 댓구를 이룬다. 높은 산은 그림자가 길고 낮은 봉은 그림자가 짧은 것이지만, 오래오래 거기 서 있으면 낮에는 산 그림자가 짧고, 저물녘에는 길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여름에는 산 그림자가 작고 겨울에는 산 그림자가 크다는 것을 안다. 여울은 바닥이 솟은 곳에서는 얕고, 바닥이 내려앉은 곳에서는 깊은 것이나 산 그림자가 짧게 드리울 때는 여울이 얕아 보이고, 산 그림자가 길게 드리울 때는 깊어 보이는 법. 그 산과 강을 나는 갈매기의 굳은 약속은 무엇일까? 낮이나 밤이나, 늘 거기 서 있는 나에게 끼룩끼룩하며 찾아와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 굽은 난간이 호가정(浩歌亭)이다. 북동에서 흘러드는 극락강과 북서에서 내려오는 황룡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이름을 바꾼 영산강, 천지가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는 듯 탁 트인 들판에 젖줄이 되어 흐르는 그 강, 호가정은 영산을 굽어보며 노평산 중턱에 서 있다. 앞 시는 조선 중기 문신 설강(雪江) 류사(柳泗, 1502~1571)가 만년에 이 정자를 지으면서 쓴 것이다. 1558년(명종13) 처음 세웠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와중에 소실돼 고종 때 재건했다. '호가(浩歌)'는 '큰 소리로 부르는 노래'이다. 소강절(邵康節)의 '호가지의(浩歌之意)'에서 따왔다. '몸은 천지의 뒤에 났지만 마음은 천지에 앞서 있으니/ 이 천하의 모든 일을 스스로 모르는 것이 없으리라/ 천지가 나로부터 왔으니 그 밖의 것은 말해 무엇하리' 소강절은 문집 '자여음(自餘吟)'을 남긴 송대의 은둔 철학자다.

그는 산언덕에 오두막을 짓고 해질녘에 술 세 동이를 마신 뒤에 시를 짓고 큰 소리로 노래했다 한다. '천지가 나로부터 왔다'는 저 일성은 얼마나 깊고 호방한가! 설강은 소강절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27세 문과에 급제해 출세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삼사를 거쳐 전라도사 종성부사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16세기가 학문으로는 성리학의 유토피아를 꽃피웠지만 갑자, 기묘, 을사의 3대 사화가 일어난,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그는 그 진흙탕 속에서 살다가 벼슬을 버리고 귀향해 정자를 짓고 유유자적했다. 뒤에 조정에서 도승지와 영해도호부사의 직책을 맡겼으나 칭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호가정 마루에서의 조망

호가정은 정면 측면이 각 3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재건하면서 원래 있던 거실을 없애고 전부 우물마루로 고쳤다. 현판은 설강이 직접 썼고, 기정진의 중건기와 이안눌, 김성원의 편액이 걸려 있다. 설강은 퇴계와 같은 해에 태어나 서로 교유가 깊었으며 71년을 살고 또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나, 둘은 묘하게도 생몰연대가 같다.

담양 식영정, 완도 세연정, 곡성 함허정, 나주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 부춘정, 화순 물염정과 더불어 호남 8대 정자 중 하나로 꼽힌다. 환벽당 주인 김성원의 장인이자 정철의 스승인 설강은 후학을 기르고 문신들과 교유하다가 생을 마쳤다. '설강유고집'과 '위친필봉제축유서'를 남겼다.

'시원한 돌베개에 솔 그늘 더욱 짙고/ 바람은 난간을 돌아 들 빛이 뚜렷하네/ 차가운 강물 위의 밝은 달빛아래/ 눈을 실은 작은 배가 한가로이 돌아온다/ 아래는 구강이요 위로는 하늘인데/ 늙은이 할 일 없어 세속에 내맡겼네/ 바빴던 지난 일 생각해 무엇하리/ 늦 사귄 물새가 한가로이 졸고 있네' 시문이 뛰어났던 설강, 호가정 앞 그의 시비에 이 시의 한 대목이 새겨져 있다.

설강(雪江)선생 시비(詩碑)

광산 동곡은 본래 광주군 지역으로 동각(東角)면과 마곡(馬谷)면이 있었는데 1914년 둘이 합쳐지면서 '동곡(東谷)'이 됐다. 나주 노안과 붙은 광산의 남쪽 끝이다.

비옥한 평야지대여서 예로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곡식 외에 원예작물로 애호박과 돌미나리가 유명하다. '동곡 태극애호박'은 유해물질을 차단한 봉지 속에 키우는데 크기가 균일하고 조직이 단단하다. 다른 애호박보다 당도가 높고 비린 맛이 없어서 그냥도 먹기도 한다. 된장찌개나 호박전을 부치면 일품이다. 농산물 전시회에서 큰 상을 휩쓸어 전국적으로 인기 높다. '동곡 돌미나리'는 청정지역에서 친환경 재배해 향이 강하고 속이 꽉 차 미식가들이 좋아한다. 돌미나리는 지하수로 씻어 출하하는데 체내 독소를 없애고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뛰어난 덕분에 타지역보다 더 좋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또 하나 동곡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꽃게장 백반'이다. 1952년 이곳 면소재지 중앙식당 등 두 곳에서 농번기 점심시간에 팔기 시작한 것이 원조다. 간장꽃게와 양념꽃게를 전통방식으로 담아 내놓는데 돼지볶음 홍어찜 죽순무침 굴 젓갈 등 푸짐한 찬을 곁들여 식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이 꽃게장 거리 일대가 동곡에서 제일 큰 침산(砧山)마을이다. '방치매'와 '방치매배' 두 마을이 합쳐진 이 마을은 모양이 방아 같다 해 '다듬잇돌 침(砧)'자를 썼다.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의 격전지였다. 1894년 10월 손화중이 이끄는 농민군과 민종렬이 이끄는 나주 수성군이 수차례 격돌해 결국 농민군이 절멸하는 비극의 현장이었다. 동학군은 나주를 거점으로 전열을 재정비하려 했지만 이 전투에서 지고,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패함으로써 혁명은 이듬해 1월 막을 내리게 된다.

복룡산 아래 너른 들판이 펼쳐진 곳이 평동이다. 들 사이로 평동천이 흘러 토질이 비옥한 곡창지대다. 긴 세월 쌀보리 농사를 지어왔다. 곳곳의 시설하우스에서 방울토마토, 가지, 수박 등 때보다 이른 원예작물을 출하한다. 토마토는 껍질이 얇고 당도가 높고, 여름 한 철 나오는 차돌복숭아도 단단하면서 달고 병해충에 강해 효자상품이다. 평동의 중심부에 일제강점기 주재소 보통학교 수리조합이 있던 옥동마을이 있다.

이곳은 '본래 백제의 복룡현(伏龍縣)인데, 신라 때 용산(龍山)으로 고쳐 무주의 영현(領縣)으로 삼았으며, 고려 때 옛 이름을 복구해 나주에 예속하였고, 본조에 와서도 그대로 하였다'는 기록(신증동국여지승람)이 남아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백제시대 옥(獄)이 있어 '옥밭거리'라고 불렸고, 고려 때 지은 사층석탑이 남아있어 '탑동마을'로도 불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동(玉洞)마을이 됐다. 평동 저수지 상류의 명화마을은 고려말 이충렬 공이 목화씨앗을 가지고 내려와 첫 재배를 하고, 방직법을 전수해 목화 주산지가 된 곳이다. 한여름에 눈이 내린 것처럼 목화꽃이 만발해 '명화(明花)'마을이라 했다. 뒤편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문화유산 '명화동장고분'이 있다.

장록동은 굽이 도는 황룡강변의 퇴적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초기 장록과 송촌 사이에 원(院)이 있었다. 원은 공무를 위해 지방에 파견한 관리나 상인을 위해 숙박과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여관으로 역(驛) 근처에 있다. 마을에 사장(射場)이 있어 활터로 알려졌고, 대보름에 당산제를 지내는 3백년 넘은 느티나무가 유명하다. 배로 장록-송정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거기에 목조다리가 생겼다가 60년대 뽕뽕다리가 되었다가 70년대 시멘트 다리가 되어 지금에 이른다.

황룡강이 호남대학 앞에서 두물머리 전까지 흐르는 너른 퇴적지대가 '장록습지'다. 2020년 도심습지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 보호습지로 지정된 '황룡강 장록습지'다. 서울 여의도 면적과 비슷한 2.7㎢다.

국립습지센터가 2018년 조사한 결과 생물종 829종이 서식하며, 멸종위기종 1급인 천연기념물 수달과 2급인 삵·새호리기·흰목물떼새 등이 발견됐다.

농촌지역이었던 평동에 161만평의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93년. 1차 2차에 걸쳐 20년 넘게 평동의 옥동(옥연 포함) 용동 송촌동 지죽동(영천 포함) 장록동 인근에 산단이 조성되면서 농업은 공업으로 바뀌고 이 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다.

이광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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