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 만드는 동기 되길"

입력 2024.03.13. 17:16 김혜진 기자
2010년부터 버려진 나무자투리
나뭇가지·바위 등으로 만들어
성당 폐성물함 속 십자고상 등
활용하거나 수리…총 350여점
해외 성지·성당·벼룩시장 등서
구매해 온 독특한 십자가들도
18일부터 27일까지 갤러리현
천주교광주대교구 갤러리현에서 십자가전 '기억하라, 가장 귀한 나무로다'를 여는 이상운씨

■천주교광주대교구서 십자가전 '기억하라, 가장 귀한 나무로다' 갖는 이상운씨

"타국에서 봉사를 펼치고 있는 가톨릭단체를 돕기 위한 자선 행사를 2010년부터 해오고 있는데 후원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나무 도마를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어요. 좋은 나무를 구해 도마를 만들고 보니 반듯한 나무 자투리들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것들을 가지고 십자가를 만들어보기 시작한 것이 이번 전시의 시작이에요."

오는 18일 천주교광주대교구에서 십자가전 '기억하라, 가장 귀한 나무로다'를 갖는 이상운 씨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같이 들려줬다.

이번 전시는 이 씨가 13년여간 버려진 나무와 십자가 등을 고쳐 새로운 십자가로 만들거나 해외 여행지에서 수집해 온 십자가 등 350여점 중 100여점의 십자가를 선보이는 자리다.

이상운씨는 지난 2010년부터 자선행사를 매년 개최하며 에콰도르의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 진료소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한희원미술관에서 열린 자선파티 '감사 음악회' 모습.

앞서 말했듯 그가 폐십자가나 버려진 나무, 돌 등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게 된 건 자선 행사 선물로부터 시작된다. '예술인인가?'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신장내과의사이다. 그런 그에게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익숙한' 일은 아니었을터다. '작품'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는 그이지만 그가 다시 소생시킨 십자가들을 보면 보통 솜씨는 아니다. 오랜 시간 미술품을 좋아해 사 모으고, 또 이를 필요한 이들에게 선물하거나 자선 행사 등을 통해 어려운 이들을 도와온 그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나온 감각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작품이라고 하기엔 어설픕니다. 십자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작가도 많은 걸요. 어딘가 깨지거나 고장나 쓸모를 잃은 것, 멀쩡한데도 어쩔 수 없이 버려진 것을 고쳐서 다른 모양을 만들고 또다른 뜻을 더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이상운씨가 처음으로 만든 십자가. 산길을 걷다 우연히 십자가 모양으로 겹쳐 있는 나뭇가지를 발견하고 가져와 만들었다. 상처 투성이인 나뭇가지가 예수의 오상 같아 '오상'이라 이름 붙였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십자가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떨어진 나뭇가지로 만든 것이다. 산길을 걷다 상처 많은 팽나무 가지가 우연히 십자가 모양으로 겹쳐져 떨어진 것을 보게 된 그가 이를 주워 와서 만든 '오상1'이 그것이다. 오상은 예수의 몸에 난 다섯개의 상처를 의미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가 깎고 붙여 만든 십자가에는 예수 고상(苦像)이 붙어있기도 하다. 예수 고상은 지역 내 여러 성당의 폐성물함과 쓰레기 처리장, 재활용 봉투 등에서 그가 수거한 것이다.

산과 계곡에서 가져온 돌과 나무에 수거된 십자가를 결합한 작품

"가톨릭에서는 세상을 떠난 신자가 지니고 있던 십자가 등을 다니던 성당으로 반납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모아진 십자가를 땅을 파서 묻거나 태우는 등으로 처리를 했는데 요즘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폐성물함이나 한구석에 쌓여 있죠. 십자가를 만들다보니 고상이 필요한데 이것을 어디서 구할까 하다 폐성물함이 생각났고 신자 연령대가 높은 구도심의 성당을 찾아갔어요. 10년 동안 모아져 쌓인 십자가들이 보이더라구요. 그동안 썩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한 십자가와 묵주를 모아 고상을 분리하고 깨끗히 씻어 가져갔어요. 이후로 몇몇 성당에 모아진 폐성물을 제게 주시길 부탁드려 폐십자가를 받을 수 있었죠."

'가장 귀한 못'

이 씨는 이렇게 모인 폐십자가 중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은 고상을 떼어내 새활용하고 그 중 상태가 좋은 것들은 조금의 수리를 거쳐 제 모습을 되찾게 했다. 십자가를 만지는 내내 그는 '십자가에 무례한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의 짐을 이고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그에게 깊은 평화의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완성 후의 기쁨은 말해 무엇할까.

이상운씨는 세계 여행지에서 수집한 십자가도 이번 전시에서 함께 선보인다. 각 나라마다 토속화된 십자가 모습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은 화려한 색상의 남미 십자가.

"전례 시기에 따른 복음, 성가 내용 등에서 주제를 정했어요. 기도 중에 그동안 이 십자고상과 함께 하신 분들을 상상하며 수리하거나 새롭게 십자고상을 만들었죠. 만드는 시간 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는 오랜 시간 고요함 속 완성한 십자가들과 함께 해외 여행 중 가톨릭 성지, 수도원, 성당, 갤러리, 골동품점, 벼룩시장 등에서 수집한 세계의 십자가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각지에서 토속화돼 각 나라의 특성을 반영하는 독특한 십자가들이다. 흔히 생각하는 나무 십자가를 벗어나 화려한 색으로 채색된 남미의 십자가, 까만 피부의 예수고상 등이 특별함을 더한다.

이렇게 모인 십자가들은 각각 6개 테마로 나뉘어 선보여진다.

'두려워 말라'

"고장나거나 유품이 된 십자고상과 묵주 등 성물의 소중함과 생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자리가 됐으면 해요.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신만의 십자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동기가 되길 바라는 동시에 본당은 적극적인 수거와 성물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전시는 18일부터 27일까지 천주교광주대교구 내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본관 지하 1층 갤러리 현에서. 전시에서 선보이는 십자가는 상설전시가 가능한 가톨릭 단체에 기증된다. 기증을 원하는 단체는 전시 기간 중 전시장으로 문의하면 된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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