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라떼의 연탄 이야기

@김만선 입력 2023.05.25. 14:41

시커먼 연탄의 원래 명칭을 아시는지? 연탄구멍의 개수에 따라 9공탄, 19공탄으로 불리기도 했고 구멍탄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1950년대 들어 처음 가정용 연료로 등장했는데 구들장을 덥히는 데는 그만이었지.

연탄의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계절은 역시 겨울. 곤한 잠을 자던 한밤중 새것으로 갈아줘야 하는 불편이 뒤따르기는 했어도 엄동설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연탄 덕분이었어. 안방 아랫목은 아버지 자리. 아랫목 장판은 연탄처럼 검게 그을리곤 했는데, 아버지가 집에 없어도 그곳은 우리 차지가 될 수 없었지. 아버지 퇴근을 기다리는 밥 한 그릇이 턱 허니 자리 잡고 있었거든. 형제들은 아랫목에서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곳을 차지하겠다며 열없이 '궁둥짝'으로 서로를 밀어내기 바빴어.

연탄은 음식 조리에도 더할 나위 없었지. 는개도 좋고 자드락비도 좋아. 비는 기름 냄새를 부르거든. 맛있는 냄새에 홀린 듯 정제(부엌)로 가면 엄마가 앉아서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어. 엄마는 뜨거운 연탄불 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는 선홍빛 김치를 버무린 반죽을 국자로 떠 넣었어. '치이~익' 소리와 함께 가장자리부터 노릇노릇하게 변해가던 모습이라니…. 더 말해서 뭣해. 제 몸을 다 태운 연탄의 끝은 또 어떻고. 눈길에 던져 발로 밟아 놓으면 미끄럼 방지에 그만이지.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연탄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어. 석유와 도시가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 거야. 연탄은 쪽방촌 주민과 비닐하우스, 음식점 등으로 밀려나고 말았지.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면서 점점 연탄 보기가 힘들다 싶더니 광주에서 유일하게 운영되던 연탄공장이 70여 년 만에 문을 닫는다고 해. 연탄을 찾는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폐업으로 이어지는 셈이지.

연탄을 좀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사람은 나뿐일까. 아랫목을 차지하던 아버지의 밥그릇도 그렇고 형제들끼리 아랫목을 차지하겠다며 엉덩이를 밀고, 투덕투덕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부침개를 먹던 흑백의 추억이 지금도 너무 선명해. 그런데 그거 알아?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언 몸을 감싸주고 덥혀주었던 것은 단순히 연탄이 제 몸을 태워 내뿜는 시뻘건 불꽃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김만선 경제에디터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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