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라면이 라면이 아니라면

@김만선 입력 2023.05.09. 16:58

라면이 최고의 음식인 때가 있었다. 젓가락으로 집었을 때 찰랑찰랑 찰진 탄성으로 튀어 오르는 면발부터 시작해 모락모락 하얀 김에서 묻어나는 스프향, 쫄깃쫄깃 혀끝을 휘감았다가 오지게 목구멍을 파고드는 식감은 그 무엇도 따라갈 수 없었다. 용돈이 생기면 미주알 빠져라 냉큼 가게부터 뛰어가 가장 먼저 손에 잡는 것이 라면이었다.

먹거리로 라면을 선호한 것은 대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삼겹살도 있고, 돈가스도 있었지만 언감생심,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라면은 면발과 함께 단짠의 마법이 담긴 국물을 끝까지 마셔주는 것이 예의. 거기에 마음 좋은 주인이 식은 밥 한 공기 보시해주면 그야말로 화룡점정, 유종의 미(味)가 된다.

라면은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준 먹거리 대명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1963년 삼양라면으로, 가격은 10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100원으로 가격이 오른 것은 1981년이다. 가격이 10원일 때나 100원일 때나 라면은 변함없이 서민들의 곁을 지켰다. 라면 시장은 성장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소비자 입맛에 맞춰 종류가 다양해지고 가격도 천차만별이 됐다.

반가운 소식은 우리의 라면이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견인차는 K-콘텐츠다. 영화 기생충에서 선보인 '짜파구리', 이정재가 '오징어게임'에서 생라면을 먹는 모습, BTS 멤버 뷔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서진이네'에서 라면을 맛본 장면 등이 세계인들의 미각을 자극했다고 한다.

하지만 라면은 더 이상 서민들의 대표식품이 아닌 듯하다.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오르면서 라면 값도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라면 구입을 꺼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집에서도 라면 보기가 힘들어졌다. "라면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게 아내의 이야기였다. 할인매장에서 라면 앞을 서성이길래 종류선택 때문인가 싶었더니 가격표에 집중했던 모양이었다. 결국 아내는 "라면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차라리 쌀값이 저렴하다"는 이야기도 뒤따랐다.

투덕투덕 내리는 비를 긋고 있자면 라면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런데 이제 라면이 라면이 아니라면 어떤 대체식에서 그 맛을 찾을 수 있을까. 아, 찰랑찰랑, 모락모락, 쫄깃쫄깃한 라면, 그리고 마법의 국물 세계여.

김만선 경제에디터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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