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멸치

@선정태 입력 2022.01.16. 18:27
선정태 취재3부 부장대우

멸치는 생선 대접을 제대로 못 받지만 사실 국민 생선이라는 별명을 얻은 명태보다 더 중요하고 익숙한 '찐' 국민 생선이다. 멸치는 크기가 작은 탓에 그 중요성은 잊혀진 채 생선 대접도 못 받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멸치도 생선이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멸치는 뼈째 먹는, 몇 안 되는 생선의 대표주자다. 칼슘을 비롯한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성장기 발육을 돕는다고 알려져 다양한 요리에 쓰이는데, 주로 볶음으로 쓰이고,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큰 멸치는 모든 국물 요리의 육수 재료로 쓰인다. 멸치로 만든 액젓 역시 모든 음식을 만드는데 빠져서는 안 되는 재료다. 경남 지역에서는 멸치 회무침이나 멸치 튀김, 멸치 쌈밥 등의 별미도 인기가 많다. 멸치가 요리 형태로든, 재료 형태로든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위치다 보니 멸치 어장을 둘러싸고 긴 법정 싸움도 있었다.

전남도와 여수시, 경남도와 남해군 사이의 바다를 둘러싼 싸움은 지난 2011년 경남 어선들이 '바다의 경계는 없다'며 전남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며 촉발됐다. 이 해상경계 다툼은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되며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경남도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며 갈등이 심화했다. 넓은 멸치 조업 해역을 가지고 있는 경남 어민들이 더 차지하겠다고 여수 어민들의 자리를 뺐겠다는 것이었다.

10년간 고통의 시간을 갖던 여수 시민과 어민들은 지난해 3월 '기존 경계를 유지한다'는 헌재의 결정이 나고서야 끝이 났다.

그렇게 1년여가 흐르고 임인년 초에 뜬금없이 대기업 총수와 대통령 후보가 '멸공 릴레이'라는 이름으로 여수 멸치를 SNS에 올려 여수 시민들이 다시 고통받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여순사건에 대해, 무엇보다 특별법이 통과돼 이제야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나 기대하는 시점에서 여수 멸치를 들어 올리며 이미 효과도 없는 색깔론을 들고나온 것이다.

여순 사건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정부 쪽 여러 사람이 여수와 순천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시신을 보고 하나 같이 '시신이 멸치처럼 널려있다'고 표현했다.

멸치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만, 올봄에도 여수 항구마다 만선으로 항구에 도착해 멸치 터는 노동요가 울려 퍼지길 기다려 본다.

선정태 취재3부 부장대우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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