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데이트폭력

@양기생 입력 2021.11.29. 18:09

학창시절 일이니 오래전 일이다. 복학생으로 취업 준비에 한창 바쁘던 어느 날 고교 동창생 4명이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같은 학교가 아니어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일행은 친구 집 전남대 후문 근처에서 보기로 했다. 자주 찾곤 식당으로 모임 장소를 정했다.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서 일행은 막걸리 한잔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나누며 주로 군대 생활 경험담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고 밤늦은 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았던 일행은 2차는 포기했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워지고 시내버스는 끊겼다. 택시비를 고민하던 일행은 친구 집에서 자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상가 지역을 벗어난 지점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친구 집 방향으로 가면서 들으니 점차 울음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대로변을 걷던 일행은 골목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못 본 체 지나쳤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남성이 여성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미터를 지난 뒤 모두가 멈췄다. 필자가 먼저 뒤돌아가서 여성을 도와주자고 했다. 다른 친구는 남녀 사이의 일인 것 같으니 그냥 가자고 했다. 잠깐 동안의 실랑이 끝에 발걸음을 돌렸다.

골목길에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여성은 답이 없었다. 4명의 숫자 위세에 눌렸는지 남성은 강하게 어필하지 못했다. 참견하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라고 말했다. 도와주겠다는 몇 번의 얘기에도 여성은 분위기만 살폈다.

어색한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여성은 일어서더니 남성 팔짱을 끼고 골목길로 유유히 사라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혹스러웠다. '그러니 처음부터 관여하지 말자고 했잖아' 친구들의 핀잔을 들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옛 애인을 스토킹하며 보복 살해한 김병찬의 얼굴이 공개됐다. 무고한 여성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해 충격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근 데이트폭력이 언론에 자주 거론되고 있다. 단어부터 문제다. 데이트폭력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남녀 간의 문제로 축소되어 폭력의 심각성이 간과될 수 있다. 폭력이나 살인사건으로 불러야 한다. 국민들의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이 아니라 폭력이다. 양기생 취재4부장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약수터 주요뉴스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