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슬로우로드

@이윤주 입력 2021.04.07. 17:50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다. 속도와 경쟁에 내몰린지 오래다. 거듭된 산업혁명으로 이제 인간은 기계와 생존경쟁을 벌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건설된 고속도로는 경쟁사회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 고속도로는 독일의 아우토반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1968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고속도로 개통을 시작으로 반세기가 넘는 지금까지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건설하고 있다.

철도도 마찬가지다.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 개통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철도역사에 고속철도가 들어선 것은 지난 2004년 4월 개통한 KTX(Korea Train Express)다.

서울~부산간 경부선과 서울~목포간 호남선이 각각 개통되며 기존 열차 보다 1시간30분 이상 단축됐고, 2010년 2단계 개통으로 또다시 운행시간이 줄어들며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들어왔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KTX의 등장은 농어촌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도시와 도시만을 연결하는 고속버스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돌던 완행버스는 하나둘 사라져갔고, 비둘기호 같은 완행열차가 오가던 간이역도 이제는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가 되어가고 있다.

이동수단이 사라지자 작게나마 형성됐던 상권도 붕괴되고, 인구도 줄며 농어촌에 사람의 온기가 차츰 사라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정보만이 인정받는 지금, 저 멀리 남녘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슬로우로드'(Slow Road)'다.

제주관광공사가 제주특별자치도 등과 함께 시범운영에 나선 느린 길 내비게이션 서비스다.

'내비게이션=빠른 길 안내'라는 고정 관념을 깬 역발상 프로젝트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 수요가 제주도로 몰리자 여행객 분산을 통해 안전한 여행을 돕고, 제주도의 다양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제주도내 7개 권역을 50개 경로로 연결하며 적게는 5곳, 많게는 11곳을 경유하도록 만든 우회길이다. 기존에 알려진 관광 명소 외에도 제주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들이 포함됐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지역경제 균형 발전까지도 기대해볼만하다.

오랫만에 마주하는 '느림의 미학'이 반갑다. 이윤주 지역사회부 부장대우 lyj200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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