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마리앙투아네트

@박지경 입력 2020.11.19. 18:45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공주 출신이다. 14세 때 프랑스 루이 14세와 정략결혼해서 베르사이유 궁전의 안주인이 됐다. 그녀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치스럽고 난잡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빵을 달라"며 시위에 나선 성난 시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나 과자를 먹으면 될 텐데"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프랑스혁명으로 1793년 10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부당하게 평가 받고 모함 속에 죽임을 당한 비운의 여인으로 동정 받기도 한다. 혁명의 희생양이자 불쏘시개였다는 주장이다.

우선 마리 앙투아네트는 평범한 18세기 유럽 왕실 소녀였으며 왕비가 된 이후에도 보통의 황실 여자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케이크나 과자' 발언도 그녀가 하지 않았다는 게 유력하다. 그녀는 프랑스 왕실에서 유일하게 소작인 밭으로 마차를 몰아 밭을 망치는 짓을 거부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도 잘 알았다고 한다.

그녀는 혁명의 기운이 싹 트는 시기에 외국 출신 왕비로 프랑스에 불행을 가져다 준다는 악의적 선전에 시달렸다. 나아가 혼외정사를 하는 음탕한 여자라는 소문까지 들었다. 한 백작부인 일당이 추기경과 보석상을 속이고 왕비를 사칭,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편취한 사건 때도 연루자들은 재판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정적으로 혁명 재판에서 그녀는 국고 탕진과 오스트리아 첩자 등 각종 죄목으로 추궁 받았으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입증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심약한 루이16세를 휘두르며 스파이 활동으로 프랑스를 배신했고, 추잡한 사생활에 심지어는 아들과 근친상간을 한 여자'라는 오명을 얻었으며 38세 생일을 약 2주 앞두고 처형됐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신발 한 짝이 최근 경매에서 4만3750유로(약 5천800만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2년 전에는 그녀의 진주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3천200만 달러(362억 5천6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비운의 왕비가 남긴 유물이 어떤 이들에게는 횡재를 가져다 준 모양이다. 하기야, 혁명의 와중에 얼마나 많은 비운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역사는 흐른다. 박지경기자 jkpark@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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