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불신

@도철 입력 2020.07.15. 18:25

20여년 전 쯤 이었을까? 시골집 형수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키우던 소에게 줄 풀을 잘게 썰다 힘에 부쳐 손이 기계에 들어가는 사고가 났고 읍내 의원에서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 희생해 온 당신의 아픔에 굵은 눈물이 쏟아졌지만 수습은 잘 됐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순간 전원을 차단해 손가락 두 개 정도만 잘렸고 그 중 하나는 접합 수술을 해 놓은 상태였다.

시골 병원의 수술이 왠지 불안해 광주의 큰 병원으로 가서 확인해 볼 요량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비상등을 켜고 급하게 나섰지만 퇴근 시간과 겹치면서 평소보다 세배나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자동차 비상등에 다른 운전자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고 심지어 비켜주기는커녕 앞 길에 끼어들며 "너만 바쁘냐" 하는 식의 운전자도 있었다. 몰랐지만 자동차 비상등은 운전자들에게 이미 불신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최근 한 택시기사가 암환자를 이송하던 민간 구급차를 막아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7일 기준으로 60만 명이 넘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구급차를 막아서는 바람에 구조가 지연됐고 결국 환자가 사망하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택시기사의 잘못된 행동은 당연히 법으로 판단되겠지만, 구급차에 대한 사회적 불신도 곱씹어 봐야 한다.언론 보도를 보면 응급환자 없는 구급차의 교통법규 위반 사례는 2013년 2천418건에서 2014년 3천153건으로 늘었고 2015년에도 3천397건으로 다시 늘어 3년 동안 9천 여건 발생했다.(2016년 경찰청 자료) 특히 사건 중에는 연예인 이동을 위해 구급차를 이용한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해마다 구급차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나 관리는 미흡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119처럼 위급한 응급환자 이송을 하는 만큼 민간 구급차에 대한 관리도 철저해야 하지만 민간으로 운영되다 보니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도 어렵다고 한다.

정부의 적극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괜찮겠지 하는 의식과 자기 편의만을 위해 무심코 행한 행동 때문에 불신이 쌓였고 결국 무고한 생명이 안타까운 피해를 입었다. 

도철 경제부 부장 douls18309@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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