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광장엔 울림이 있다

@김영태 입력 2020.05.24. 18:32

광장엔 울림이 있다. 정치가 국민들과의 공감 능력이 제로일 때,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할 때, 특히 무뢰의 권력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대의를 억압할 때 광장은 대중을 모이게 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잘못된 것을 향한 분노를 표하고, 이를 바로잡을 방안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거듭한다. 꼰대의 언어와 뒤틀린 생각으로 가득찬 기득권 정치를 규탄하고, 때론 반동의 권력에 맞서 구체적인 군집의 형식까지 논의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최인훈)는 오래전 '광장'이라는 제목의 시대 소설에서 광장이 갖는 기능의 속살을 설파했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이명준)을 통해 경직된 이념의 억압과 혼란한 정치상황에서 진정한 삶의 방향을 고민하게 하고 세계와 자아를 살펴볼 폭넓은 눈을 갖게 유도했다.

제국주의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사랑을 통한 인간 본성의 문제까지 접근해갔다. 특히 해방 조국의 감격에 이은 극한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이 유발한 6·25, 4·19혁명의 기쁨 등 금기시돼오던 소재를 작품에 담은 것을 넘어 혁명 정신의 발현과 민주주의, 근대성의 정착 등 시대를 향한 자각을 일깨웠다.

40년전인 80년 5월의 옛 전남도청 앞 광장도 그랬다. 광장에선 민주, 인권, 평화에 바탕한 '사람사는 대동세상'을 지켜내자는 결기가 모아졌으며 광장은 상생과 공존의 장(場)이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불의의 세력들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에 기겁, M-16 총구를 들이대 방아쇠를 당기고 UH-1H 헬기를 동원해 기총소사를 마다 하지 않았다. 쇠몽둥이를 휘둘러 두개골을 박살내고 시민들의 가슴을 총검으로 난자하는 등 시민의 군대이기를 포기한 반동의 그들이 무슨 짓인들 못했을까.

광장은 그렇게 집단 살육의 현장으로, 참혹하게 뒤엉킨 주검의 장소들이 되었지만 장엄하게 부활했다. 학살 이후 40년만인 지난 18일 광장은 제 모습을 찾았다. 해원(解寃)하지 못한 유가족의 회한에 대통령이 화답한 메시지는 그날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또렷한 울림으로 재생됐다. 하지만 광장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광장의 시민들을 참살하고, 광장의 논의를 바탕으로 피어나려던 자유와 평화와 인권을 짓밟았던 이들은 여전히 얼굴을 감추고 있다.

김영태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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