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노태우 아들에게 배워라

@류성훈 입력 2020.05.06. 18:24

나이가 들어 인생을 마감할 때가 되면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상식이 통하는, 법을 지키는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살아생전에 '오월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도, 용서나 사과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90세 가까운 고령에도 그 눈매에는 여전히 매서운 살기가 가득 찼다.

확인된 사망자만 165명에 이르고 당국이 인정한 행방불명자 76명, 행불자로 인정받지 못한 실종자가 무려 200명 이상에 달하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임에도 전두환의 40년 묵은 뻔뻔함과 오만함, 파렴치함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당당하게 만든 것인지, 이를 지켜본 국민은 물론 특히 피해자인 광주의 민심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거쳐 1980년 5·18 무력진압 이후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주역인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는 누가 뭐래도 절친한 사이였다. 24년 전 나란히 손을 잡고 법정에 섰던 두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한국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꼽힐 정도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막역지교라던 전두환과 노 전 대통령의 행보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을 주장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에 이어 4월 광주 법정에 선 전두환은 여전히 당당하다. 반성과 사과는 커녕 불성실한 재판 태도로 일관하며 진실을 철저히 함구한 채 두 차례나 되는 기회를 짓밟아버렸다.

반면 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은 장남을 통해 5·18에 대한 사죄의 뜻을 간접적으로 표했다. 그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는 지난해 두 차례 광주를 찾았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드린다"고 적었다. 뒤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오월어머니집을 찾아가 5·18 피해자에게 머리도 숙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서 여의치 않다"고 양해를 구했다.

전두환은 80년 봄, 광주에서 저지른 엄청난 만행의 진실을 이제는 말해야 한다.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 후손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데 대한 진정한 참회와 사죄를 역사와 국민 앞에 바쳐야 한다. 사과하고 용서를 빌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류성훈 사회부장 rsh@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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