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섬마을 이장이 썰어온
갯장어회 ‘생에 처음 맛본 맛’
술꾼·미식가들의 여름 보양식
가격은 횟집마다 제각각 달라도
빼어난 맛에는 별반 차이 없어
90년 여름 무렵으로 생각된다. 해남과 진도의 경계인 만호 바다에 위치한 상마도를 취재 가는 후배를 동행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상마도 이장 집으로 추측된다. 마을의 역사를 구술했던 노인장 한 분이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껍질과 창자를 제거한 갯장어회를 냉동실 칸에서 꺼내 썰기 시작했다. 갯장어회를 마늘, 깨, 참기름을 넣어 버무린 된장과 함께 깻잎에 얹어 먹자, 부드러운 살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처음 본 갯장어는 맛이 있었다. 그 당시에 갯장어는 일본으로 수출하던 때였으며 귀물장어로 대접받았던 시기였다.
30년 전에 맛보았던 갯장어는 지금은 남해안의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갯장어를 맛볼 수 있는 지역은 우리나라 남해안의 통영·고성·삼천포·여수·순천·광양·고흥·보성·장흥·강진·해남·목포 등 광범한 지역에 이른다. 이맘때 술꾼들이나 미식가들이 횟집에서 가장 많이 찾는 요리는 여름 보양식으로 알려진 갯장어회와 갯장어 샤부샤부, 갯장어 죽이다.
남해안의 웬만한 횟집에서는 갯장어 요리를 메뉴판에 등재하지 않으면 간첩으로 오인할 정도로, 취급하지 않는 횟집이 없다. 식당마다 주인장의 음식 솜씨에 따라 반찬 맛은 달라지지만, 갯장어 요리는 횟집마다 맛에 있어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갯장어 요리 가격은 횟집마다 차이가 있다.
남도에서는 하모를 갯장어, 참장어 바닷장어, 뱀장어로 혼용해 부른다. 갯장어는 일본어 이름 '하모(일본어:ハモ)'로 더 많이 알려졌다. 갯장어의 주둥이는 길고 입은 몹시 크며 앞쪽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다. 갯장어는 5월 봄부터 연안으로 이동해 모래나 갯벌에서 서식하며,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해안에서 여름에 가장 잘 잡히고 9월이 넘으면 어획하기가 어렵다.
갯장어의 제철은 7~8월이다. 이즈음 잡힌 갯장어가 맛이 최고다. 갯장어 맛이 최고일 때 남도 사람들은 '갯장어에 약이 찼다 '고 한다. 갯장어는 양식이 불가능하며 순수한 자연산이다. 수심 20~50m의 모래 바닥과 암초가 있는 곳에 살지만, 때로는 깊은 바다로 이동하기도 한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시작해 물고기나 조개류를 잡아먹는다.
500m 길이의 긴 줄에 5m 간격으로 낚싯바늘을 100개씩 단 '주낙'을 30줄 정도씩 얕은 바다에 던져 넣어 낚는 방식으로 어획하고, 갯장어는 야행성이라 주낙을 던져 넣은 뒤 하루나 이틀 정도가 지나 걷어 올려서 잡는다. 갯장어회 손질은 까다롭다. 갯장어의 머리를 도마에 고정 시킨 다음, 갯장어의 배를 칼로 가르고 창자를 제거한 뒤에, 껍질을 벗긴 다음, 살은 깨끗하게 민물로 세척한다. 세척한 갯장어 살을 10분 동안 얼음물에 담그면 살이 꼬들꼬들 해진다. 갯장어 살은 깨끗한 하얀 천에 싸서 물기를 제거하고, 잘게 회로 썬다.
썰어나오는 갯장어회 맛은 부드럽고 담백하다. 갯장어 회는 먹는 소스에 따라서 맛은 달라지게 된다. 초장 소스는 부드러운 갯장어 살의 담백한 맛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고, 참기름을 넣은 된장소스는 갯장어의 독특한 비릿함을 잡아주기도 한다. 깻잎이나 상추 잎에 갯장어 살을 올리고, 청양고추, 마늘, 된장소스를 얹은 갯장어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먹는 게 맛이 최고다.
갯장어 샤부샤부는 갯장어회를 손질할 때와 유사하다. 갯장어의 껍질을 그대로 놔두고 뼈를 제거하고, 껍질이 붙어 있는 살을 먹기 좋게 사각형으로 잘라서, 갯장어 뼈와 각종 약재를 넣고 끓인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다. 갯장어 샤부샤부는 살짝 데친 갯장어 살에 살짝 데친 부추를 얹어, 각종 양념을 넣어 만든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부추 향이 배어난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갯장어 맛을 즐길 수 있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서 칼집을 낸 갯장어 살을 데친 온도에 따라서 맛을 즐긴다. 갯장어 살을 뜨거운 육수에 투하하고 하나, 둘, 셋…다섯,…열 을 센 후에 젓가락으로 육수에서 꺼낸다. 데쳐진 갯장어 살은 마치 하얀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답다. 셋이나 다섯까지 세고 꺼낸 갯장어 살이 제일 맛이 있다. 열을 센 이후에 갯장어 살을 꺼내면 너무 살이 물러져서 갯장어 맛이 나지 않는다.
남은 육수는 물에 불린 찹쌀을 넣어 죽으로 끓여 나오면 고소한 맛이 난다. 지역에 따라서 떡국이나 라면 사리를 넣은 경우도 있다.
된장을 푼 육수에 갯장어 껍질과 머리, 뼈를 갖은 양념을 넣고 끓인 갯장어탕은 게미가 있다. 갯장어 뼈와 껍질, 머리를 고아 낸 갯장어즙은 건강즙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갯장어 살을 고추장에 버무린 갯장어 무침도 맛이 있다. 갯장어 창자는 젓갈로도 담그고, 매운탕에 넣고, 쓸개는 갯장어 마니아들이 쓸개주로도 즐긴다. 갯장어는 내장의 이물질만 빼고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해남에 가면 갯장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매운양푼이갈비 식당이 있다. 주인장은 김현숙씨다. 기자의 집사람 이름도 민현숙이다.
성은 다르지만 이름도 같고, 나의 고향도 동향이고, 음식도 맛깔스러워서 단골로 삼았다.
주인장은 가끔씩 귀한 안줏감을 준비해 가면, 입맛에 딱맞게 조리를 해주는 만능 요리사다. 맛깔스러운 반찬이 테이블에 차려지면 소주 한 병이 금방 비워진다. 매운양푼이갈비 주인장의 갯장어 요리는 오감을 만족시킨다. 1kg을 반반 나누어서 갯장어회와 갯장어 샤부샤부로 만족도를 높인다.
천기철기자tkt7777@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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