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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그림이 있는 남도의 다락집- 광주 서창나루

입력 2020.10.28. 15:38 수정 2020.10.29. 20:09
영산강 마지막 뱃사공, 박호련의 무주상보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불교 사상의 꼭대기에 있는 말이다. 보시는 베풂이고, 무주상이 어렵다. 무주상은 어떤 '상태에 머무르지 않음'이다. 베풀고 나서 베풂에서 머무르지 않는 것,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버리는 것. 선행의 망각이자 채권의 자기 소멸이다. 불교에서 꼽는 최상의 보살행이다.

추운 겨울, 헐벗은 문둥병자가 길가에서 떨고 있다. 일본의 백은(白隱)선사가 그 옆을 지나간다. 하도 불쌍하여 입고 있던 솜옷을 벗어 주었다. 병자는 고맙다는 말이 없다. "이 사람아, 남의 신세를 졌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무슨 경우인가?"하고 나무랐다. 병자 왈, "내가 솜옷을 입어주었으니, 당신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적반하장, 적선(積善)이 내 것이냐, 네 것이냐 하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선사, 큰 깨달음을 얻었다. 수양의 부족을 스스로 탓하면서 일어나 큰 절을 올린다. 병자는 문수보살의 화신이었다. 이 삽화는 무주상보시의 참뜻을 잘 보여준다. 선사의 선행은 보시이나 보시를 행했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주상보시'이다. 문수보살의 깨우침이 '무주상보시'이다. 주상과 무주상 사이에 들어 있는 것이 공(空), 무아(無我), 연기(緣起) 같은 말들이다. 불교의 온갖 어려운 말들은 대개 '무주상'으로 꿰어져 궁극에 이른다. 내가 남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이자를 쳐서 더 받는 것은 거래이고, 무상으로 베푸는 것이 보시(기부)이고, 베풀었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는 것이 무주상보시이다. '금강경'에 나오는 이 말은 '중용'의 첫머리에 쓰인 '희로애락 미발의 상태',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이 가난한 자'와 결국은 상통하는 말이다.

구례 토지면에 우리나라 3대 명당으로 꼽히는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조선 영조 때 무관 류이주가 세운 99칸 고택이다. 그 집의 뒤주와 굴뚝이 유명하다. 쌀뒤주는 사랑채와 안채 사이 헛간에 있다. 뒤주 뚜껑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아래에 손바닥만 한 구멍이 나 있다. 거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여 있다. '누구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나 열면 그 구멍에서 한 줌의 쌀이 나온다. 가난한 이웃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최소한의 곡식을 나누는 것이다. 굴뚝은 낮게 설치했다. 춘궁에 자기 집 밥 짓는 연기가 널리 퍼지지 않도록 굴뚝을 섬돌 밑으로 냈다. 이런 선행이 230여년 이어져 왔으니 그 나눔과 배려, 이타심이 작다고 할 수 없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하듯이 동학혁명과 빨치산 투쟁,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지나오면서도 사람은 상하지 않았고, 운조루는 불타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꽃피는 사월은 난만한 것이 눈으로 아름답고, 낙엽 지는 가을은 헛헛하여 가슴으로 아름답다. 봄에는 한 세상 궁하지 않게 넉넉하게 살았으면 싶다가, 시월에는 가던 길 멈춰 서서 돌아보고 더 깊어지고 싶다. 영산강이 흐르는 옛 서창나루, 억새가 장관이다. 저무는 들녘, 바람에 나부껴 한쪽으로 휘어지는 억새꽃들의 흰 물결은 히잡을 두르고 메카를 향해 떠나는 순례자들의 행렬 같다. 극락교 지나 서창 파출소 길 건너 모퉁이에 이르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작은 비석 두개가 서 있다. 여느 비석과 달리 비각도 없고 비석머리에 기와도 없다. 그저 한지에 서서 먼지를 둘러쓰고 있다. 머리는 반달 모양에 몸돌이 얇고 기단도 초라하다. 호사스럽지 않은 것이 가난한 면민들의 추렴으로 세운 것이라는 생각에 닿게 한다. 안내판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으련만, 비문의 음각이 마모되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글자를 알 수 있다. 비명은 '박호련시혜불망비(朴浩連施惠不忘碑)', 박호련이 베푼 은혜를 잊지 못해 세운 비석이다. 박호련은 누구인가?

그는 구한말 광주 서창면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빚만 남기고 떠났다.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어느 밤 솔거하여 몰래 고향을 떴다. 3년여 타관을 떠돌다 그는 지쳐 다시 돌아온다. 동네 채권자들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혜량을 얻어 서창나루에서 뱃사공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일제강점기라 영산강을 따라 멀리 삼학도 앞바다까지 수탈해 가는 물자와 인부들의 운송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수년 강을 오르내리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빚을 정리했고, 뒤에 정미소를 운영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 즈음인 1925년 큰 홍수가 났다. 그해 7월~9월까지 무려 네 차례나 태풍에 홍수가 몰아쳐 제방이 무너지고 강이 범람했다. 서울에서는 한강물이 광화문 앞에까지 들이쳤다. 전국적으로 사망자가 647명, 행방불명 2천여 명, 가옥의 유실과 침수가 3만여호에 달했고, 논밭은 거의가 물에 잠겼다. 피해액이 1억300만원으로 조선총독부 1년 예산의 58%에 달했다고 한다. 이 역대급 재난을 '을축년 대홍수'라고 부른다. 박호련은 구휼에 나섰다. 돈과 쌀과 집과 있는 재산을 풀어 헐벗고 굶주린 이재민들을 건져냈다. 면민 구호가 하루 이틀에 해결될 일이 아니고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래 물심으로 선행을 베풀었을지 짐작이 간다. 4년 뒤인 1929년에 또 한 번의 재난, 이번에는 극심한 한해(旱害)가 들었다. 목포와 남부지방에는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밭이 쩍쩍 갈라졌다. 그해 동아일보(6월22일)는 '측우소 설치 후 초유의 한발, 오늘 하지인데 비 올 가망 아득'이라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박호련은 다시 한 번 구휼에 나선다. 곡식과 재산을 풀어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살려냈다. 파출소 앞에 비석이 둘인 것은 그 때문이다. 비명은 같고 왼쪽 것에 '1925년 2월 서창면 공립(共立)', 오른쪽에 '1929년 11월 서창면 일동'이라고 새겨져 있다.

'아껴 먹고 아껴 써서(節食節用)

남은 것으로 가난 구제할 도리를 알았네(剩知救貧)

깊고 깊은 은혜는 바다와 같고(恩深防海)

높고 높은 덕은 산보다 높다네(德高於山)'

'남의 굶주림을 내 일로 여겨(飢思若己)

여기저기 베풀며 가난을 구제했네(傳施恤貧)

모든 사람들 입 모아 칭송하니(萬口咸誦)

남기신 덕이 날로 새로워라(遺德日新)'

전자가 홍수 때 새긴 것이고 후자가 한발에 새긴 것이다. 비문에 구체적 내용이 없어 아쉽기는 하나 '아껴 먹고 아껴 썼다'는 것과 '남의 굶주림을 내 일로 여겼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의 행적은 드문드문 잊혀 지면서 1백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다가 2018년 광주 서구문화원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내 그나마 알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발행된 '중외일보' 신문기사(1930년1월22일)는 '희세(稀世)의 자선가 박호련씨 기념비, 광주 서창면 12구민의 감사루(感謝淚)의 결정(結晶)으로'라는 제목의 사진과 글을 실었다. '1월19일 이회춘 서창면장의 주관으로 200여명의 서창면민들이 모여 그의 시혜불망비 행사'를 가졌다는 내용과 박씨의 어려웠던 옛 사연을 전하고 있다.

영산강의 마지막 뱃사공 박호련 선생(1892~1946), 서창나루에 흐르는 물결처럼 그가 남긴 여운이 길다. 사재의 얼마를 어떻게 베풀었는지 세세한 것은 알 수 없으되 그 단정한 비석의 문구 하나만으로도 그가 누구였는지 이제는 알듯하다. 운조루의 쌀이 명문가 대지주의 보시라면, 서창나루 뱃사공의 따뜻한 손길은 무주상보시에 더 가까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광이 시민전문기자·그림=김집중

글 : 이광이

언론계와 공직에서 일했다. 인(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애인(愛人)이라고 답한 논어 구절을 좋아한다. 사진 찍고, 글 쓰는 일이 주업이다. 탈모로 호가 반승(半僧)이다. 음악에 관한 동화책과 인문서 '스님과 철학자'를 썼다.




그림 : 김집중

호는 정암(正巖)이다. 광주광역시 정책기획관 등 공직에서 30여년 일했다. 지금은 고봉 기대승선생 숭덕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강의도 한다. 고교시절부터 한국화를 시작하여 끊임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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