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활동 중인 석연경 시인이 신작 시집 '푸른 벽을 세우다'(시와세계刊)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을 매개로 자신의 사유를 펼쳐낸 시편들을 담았다.
그는 히말라야의 설봉을 오르는 바람처럼 거침없고, 까마득한 공중에서 순식간에 지상으로 낙하하는 독수리처럼 망설임이 없다. 그의 상상력은 사람에서 사물로, 지상에서 하늘로, 식물에서 동물로, 홍진의 세상에서 화엄으로 막힘 없이 오가며 상상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그의 상상력 안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허공이 되고, 가장 단단한 것이 가장 부드러운 것을 품을 때, 경계들은 무너지고 범주들은 파편화된다.
그는 기호가 켜켜이 오래 묵은 의미의 먼지들을 떨어낼 때, 주체가 욕망의 액세서리를 하나씩 버릴 때, 멀리서 천천히 흰 소처럼 시를 써냈다.
그의 시가 가는 길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절벽처럼 다가온다. 저 높은 곳에서 저 낮은 곳으로, 혹은 그 반대로, 주체가 급강하와 급상승을 반복하는 길이 절벽이다. 절벽은 존재의 변이가 순식간에 일어나는 위태로운 공간이고, 절실한 변화의 장소이며, 단호한 결단과 절정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의 발굽에는 '절벽'이라는 징이 박혀 있어서, 그가 움직이는 길마다 '절정'의 파열음이 울려 퍼진다. 이 시집의 도입부부터 마지막까지 자주 반복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절벽'이다. 그러므로 절벽은 그의 인식과 사유와 정동(情動 affect)이 지나가는 통로이며, 그의 시들은 절벽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백석) 절정에서 흩어져 내리는 꽃이다.
"세상 절벽 품고 우는 애기 /우리 애기야 가지를 뻗어라 /울음은 윤슬로 글썽이고/ 누군가는 못 보는 청고래 떼가 온다/ 불러도 돌아올 수 없으면 /뭉쳐지지 않은 슬픔이면/ 절망을 가로질러/ 바다를 가로질러/ 세계를 가로질러 /묘비명을 읽은 하늘이 되거라 //고요한 비석 안에서 피가 흐르고/ 바다가 투명하게 일렁이며 바닥을 드러낸다 / 진실은 눈을 반짝이며 바다에 닿는다 /애도의 배가 바다의 갈라진 상처를 깁는다/ 푸른 벽이 일어난다/ 역사의 흉터에 푸른 날개 솟으니/ 울음 없는 바다 위에 /해후하여 비상하는 청청 눈부신 생"(시 '푸른 벽을 세우다'중 일부)
시인은 이렇듯 욕망으로 꽉 찬 죽음 같은 삶과 새로운 삶을 대비시켜 희망을 이야기한다.
석연경 시인은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연경인문문화예술연구소에서 시와 평론을 쓰고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시집으로 '독수리의 날들' '섬광, 쇄빙선'이 있고 송수권시문학상 젊은시인상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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