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한 작가 부친 유작시 받아
전남대도서관 게재 소설 확인
일제 수탈 저항의식 뚜렷 주목
일본 시 전문지 '시와 사상' 수록
나주학생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이자 저항문인 중 한 사람인 이석성(본명 이창신·1914~1948) 선생의 작품이 한 지역 대학 교수의 끈질긴 노력 끝에 발굴돼 일본에서 공개됐다.
특이 이번 발굴은 잊혀진 이석성 시인의 작품 세계를 규명함과 동시에 지역 문학사 연구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8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는 최근 일본의 시 전문지 '시와 사상'(3월호)에 이석성 선생의 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를 소개했다.
그가 이석성 시인의 시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8월 14일이다. 그는 당시 이석성 시인의 아들 이명한(89) 소설가(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으로부터 시를 받았다. 이씨는 "아버지가 쓰신 일본어 시가 나왔으니 일본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며 작품을 공개했다. 김 교수는 "이석성의 존재도 소설가와의 관계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시를 읽는 순간 뭔가 가슴에 뜨거운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 견딜 수 없어 흥분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는 이탈리아의 혁명가 말라테스타(1853~1932)가 세상을 떠난 뒤 1개월 후에 쓴 시다.
"태양은 폭군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동에서 서로 날이 새고 해가 진다/ 이런 분위기에 역사는 유전(流轉)하는 것인가// (중략) 지금 우리는 그걸 슬퍼하는 게 아니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을 줄이야…"
혁명가 말라테스타는 19세기 아나키즘 운동에 몰두했던 이탈리아 지식인으로 이 시는 이석성 선생의 식민지 저항시인의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와 이명한 소설가는 고 문병란 시인(1934~2015) 추도식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이석성 작가를 더 알기 위해 이명한 소설가의 자택에서 1929년 이석성의 학생운동과 관련한 재판기록을 입수했다. 또 문학박사이자 시인인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 관장을 만나 이석성 시인에 대한 추가 정보를 입수했다.
조사 결과 이석성 시인은 1930년대 한국 문학사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며,지역 출신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으로 대변되는 순수문학과는 결이 다른 작품세계를 추구했던 문인이었다. 그는 생전 소설가로도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교수는 이후 소설 '제방공사'가 '신동아'(1934년 10월~12월호)에 게재됐다는 것을 알고 원본을 구하기 위해 전남대 도서관을 방문했다.그는 도서관 전문서고에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게 하는 복자(伏字) 처리로 난도질당한 '제방공사'를 접할 수 있었다. 이석성은 이창신이 '제방공사' 때 썼던 필명으로 판명됐다.
김선기 관장은 "30년대 한국 근대문학은 예술 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이 지역 출신 용아 박용철과 영랑 김윤식으로 대표되는 순수 서정문학으로 알려져 왔다"며 "50여년 동안 묻혀 있던 이석성 시인이 발굴됨에 따라 30년대 근대 문학사를 포괄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고 밝혔다.
또 "이창신(이석성)은 1930년대 활동했던 호남지역 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주창했다"고 말했다.
장편 '제방공사'는 1930년대 영산강 물난리로 제방이 무너진 사건을 모티브로 일제가 수탈을 위해 지역민들을 제방공사에 동원하자 주인공이 시위를 주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 문예지 '시와 사상' 4월호와 5월호에 이석성 선생의 '제방공사'를 토대로 '조선 남부의 저항작가 이석성을 읽는다-발굴의 의미를 담아'를 잇따라 실을 예정이다.
한편 1929년 11월 나주농업보습학교 2학년(15세)이었던 이석성 시인은 나주학생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듬해 2월 독자적으로 만세시위를 추진하다 또 경찰에 붙잡혔고 재판을 받았다. 선생은 지난 2019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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