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방관 어른들에게 인식 촉구
북한말로 평화 통일 기원 담아내
어른이 되면 동심은 사라진다. 힘겨운 세상살이와 빡빡한 일상이 마음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라졌다는 표현보다는 잃어버렸다는 비유가 맞을 듯 싶다.
무등일보 신춘문예 출신 윤미경 동화작가가 장편동화 '쓸모가 없어졌다'와 동시집 '반짝반짝 별찌'(이상 국민서관刊)를 동시에 펴냈다.
'쓸모가 없어졌다'는 류승범 주연의 영화 '부당거래' 속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 대사는 비단 어른들의 세계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 친구가 되고 싶어서 아이들의 요청을 다 들어준 쓸모. 쓸모는 처음에는 심부름꾼이었고, 심부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자 왕따가 되었고, 왕따에서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결국 투명 인간이 됐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은이가 쓸모를 도와줄수록 도은이와 쓸모는 놀림감이 되었다. 쓸모는 오히려 도은이에게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그게 도은이를 좋아하던 쓸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도은이도 쓸모에게서 관심을 거둔다. 학교 폭력은 유일한 조력자였던 도은이마저 방관자로 만든 것이다. 쓸모가 담임 선생님에게 일기장으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선생님은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했다. 쓸모의 일기장에 의미 없는 '참 잘했어요' 도장만 찍어주는 태도는 동조자나 다름없다. 쓸모에게 현실 세계는 너무 외롭고 차갑기만 했다.
사물함을 매개체로 현실 세계와 판타지 세계를 오가며 쓸모는 자신의 존재와 이름을 찾아간다. 급기야 쓸모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이 작품은 죄책감 없이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며 폭력을 방관하는 어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작가는 단순히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라면, 당하는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면 그건 명백한 폭력이라고 말한다.
'반짝반짝 별찌'는 평화를 기원하는 북한말 동시집이다.
특히 북한에서 쓰는 단어로 써진 동시를 우리 아이들에게 읽혀 북한말을 알려주고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주기 위해 쓰여졌다. 한마디로 '북한말 동시집'이다. 작가는 동시를 자꾸 읽고 단어들의 뜻을 찾아가면서 북한말 혹은 우리말의 매력에 차츰 빠져들었다. 사실 북한말은 결국 '우리말'일 수 밖에 없다. '우리말'의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쩌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윤미경 작가는 "학교폭력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해맑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마음과 함께 70년을 넘어선 분단현실 속에서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며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친숙한 언어와 그림을 더해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2012년 황금펜 문학상과 201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돼 등단했다. 저서로는 시집 'Red', 동화집 '달팽이도 멀미해', 푸른문학상 수상집 '달려라 불량감자', 그림책 '못 말리는 카멜레온' 등이 있다. 2015 푸른문학상, 2016 한국아동문학회우수동화상을 수상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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