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편 산문 가족·사회·자연 의미 성찰
삶은 길과 여정의 연속이다. 살다 보면 꽃길도 만나지만 흙탕길과 갈림길과도 마주친다. 길 위에서 판단과 선택, 결정 그리고 이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중견 동화작가 이성자씨가 인생의 길을 주제로 한 동시동화집 '꽃길도 걷고 꼬부랑길도 걷고'(해솔刊)와 산문집 '자식이라는 나무'(청동거울刊)를 동시에 펴냈다.
동시동화집 '꽃길도 걷고…'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다양한 이름의 길을 쉬운 동시와 동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성자 작가는 길을 인생에 빗대어 자신이 걸어온 삶의 시간을 해맑고 순수한 동심의 시선으로 펼쳐냈다.
그는 살다 보면 반드시 편하고 아름다운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진흙길이나 자갈길처럼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작가는 수많은 길들을 불러낸다. 꽃길, 진흙길, 지름길, 오솔길, 에움길, 두멧길, 꼬부랑길 등이다. 우리가 흔히 들어 본 익숙한 길도 있고 처음 들어 보는 낯선 길도 있다.
책에는 한쪽에 길과 관련된 동시가, 한쪽에는 짧고 쉽게 풀어 쓴 동화와 길에 대한 설명글이 들어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이름의 길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했고 어른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졌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후문 비탈길로 달려왔어.// 주르르 둑!/ 엉덩방아 찧고/무릎은 얼얼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학교 후문 앞까지/ 나를 끌고 내려갔지.// 제 할 일 다한 듯/ 시침 뚝 떼고 있는/ 못 말리는 비탈길"('비탈길' 전문)
학교 가는 날 갑자기 비가 내려 우산 없이 속수무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다.
작가는 진달래 피어 있는 뒷산 꽃길부터 비 온 뒤 운동화에 흙탕물을 잔뜩 발라 놓는 얄미운 흙탕길,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망설이게 만드는 갈림길, 숲속 정다운 오솔길, 임금님이 다니셨다던 거둥길, 슬픈 역사의 에움길,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꼬부랑꼬부랑 가는 꼬부랑길 등 우리가 잊고 살았던 길들의 기억을 그려냈다.
각각의 작품에는 양상용 작가의 삽화가 곁들여져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산문집 '자식이라는 나무'는 삶과 일상, 세태에 관한 성찰을 담아그동안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한데 수록했다.
책에 실린 53편의 이야기는 가족과 사회, 자연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새로이 깨달아가는 성찰이자 따뜻한 사색이 담겨 있다. 책 부제인'자연이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시간'은 글에 담은 메시지를 상징한다.
고요한 수면 위에 작은 잎사귀 하나가 잔물결을 일으키듯이 작가의 나지막하고도 진솔한 목소리는 저마다의 삶을 반추하고 되새기게 할 정도로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이성자 작가는 "결국 자식이란 '평생을 정성들여 가꿔야 할 나무'이고, '거울에 핀, 희망꽃'처럼 사소한 성장일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게 된다"며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고통, 사회활동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삶의 공허 등 일상의 다기한 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마음 다스리기에 따라서 삶은 더욱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광에서 태어나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동아일보신춘문예와 어린이문화신인대상 문학부문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좋은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계몽아동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지은 책으로는 '너도 알 거야', '키다리가 되었다가 난쟁이가 되었다가' 등 다수가 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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