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이 빗나갔다. 소설이란 모름지기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테니, 올해 신춘문예는 미증유의 감염병 공포로 멈춰버린 우리 현실을 담아낸 투고작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정작 소수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고단하고 팍팍한 일상에서 겪는 아픔과 상처가 주종이긴 했으나 세상살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성찰이 부족한 이야기는 성에 차지 않았다. 문장이 안정되고 서사가 잘 짜인 작품이라면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나 살폈다.
후보에 오른 작품은 6편이었다. '맹지'는 탄탄한 문장으로 땅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었지만 새로운 감수성이라 보긴 어려웠고 '도수치료'는 사지가 꺾여 죽은 살인사건을 도수치료 방법에 병치함으로써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강박에 연결했으나 단편소설이 갖춰야 할 압축과 밀도가 약해 아쉬웠다. '야차'는 세세하고 긴 묘사가 오히려 서사적 전달력을 이완시키는 바람에 주제로 나아가는 궤도에 진입하기를 주저했고 '틈'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어 버린 이웃과의 막막한 관계를 그려내 현실감을 살렸으나 평범한 전개와 상투화된 결말이 안타까웠다.
마지막까지 주목했던 '해파리의 춤'은 오랜 수련을 짐작하게 하는 능숙한 문장에다 남에게 털어놓기 어려운 부부간 은밀한 고민을 해파리와 미역이라는 알레고리로 엮어낸 솜씨가 돋보였다. 쓰레기 더미에서 자란 해파리의 독침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작가의 의도가 인상적이었으나 부부의 심리적 장애를 이해시켜 줄 인과가 미약했고 윤리의식을 의식한 마무리도 눈에 걸렸다. 자신의 이야기에 집착하다 보면 자의식이 넘쳐 세상을 향한 보편적 인식을 끌어내지 못할 수 있다.
개인사에 머무르는 것보다 남을 향한 시선을 나누는 이야기가 울림의 폭이 크다고 할 때, '7구역'은 단연 두드러졌다. 재개발로 인해 황폐해진 주택지에서, 남는 자와 떠나는 자 사이의 틈새가 목을 죄듯 좁혀오고 있다는 상황 설정부터 흥미로웠다. 불우한 사람들 얘기면서도 지난 시절 곤궁한 가족사에서 오는 뻔한 가난 타령이 아니라는 점도 좋게 읽혔다. 쓰레기와 함께 버려진 반려동물 무리에서 연약한 유기견의 살점을 뜯어먹는 야생 고양이의 이빨이 인간의 탐욕을 연상하게 했고, 익숙하게 남아야 할 근거도 없고 낯설게 떠나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떠밀리듯 버려지고 마는 '7구역'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고심을 거듭하다가,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이웃이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작가의 따뜻한 목소리에 끌려 '7구역'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대면과 거리 두기를 강요받는 해괴한 현실, 세상이 더 망가지더라도 그렇다고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버릴 순 없지 않은가.
정강철
▲1994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신,열하일기' '블라인드 스쿨' 소설집 '수양산 그늘' 등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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