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억압 저항하는 작가 그려내
무등일보 신춘문예 출신 범현이 소설가의 첫 창작집 '여섯 번째는 파란'(문학들 刊)이 출간됐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예술을 잇몸으로 악물고 빈곤과 싸운다.
이 책에 실린 단편 대부분이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천형(天刑)을 타고난 작가의 이야기('목포의 일우')를 비롯해 그림과 떨어져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 포기할 수 없는 우울한 상황('여섯 번째는 파란', '안나는 없다'), 넓게는 그림판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암묵적이고 비극적인 상황('뫼비우스의 띠', '소리')을, 또는 독재 타도를 위해 걸개그림 작업과 포스터 작업을 하고 시내 전역에 포스터를 붙이고 돌아다니는 스무 살의 피 끓는 청춘('가죽가방') 등을 글로 그렸다.
이중 지난해 목포문학상 수상작인 '목포의 일우'는 남종산수화의 대가 남농(南農) 허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농은소치(小癡)와 미산(米山) 잇는 가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산으로부터 가난한 화가의 길을 가지 마라는 유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림을 그린다. 어렸을 때부터 사무쳤던 가난에 자신을 내던진다. 길고 긴 통증과 창작의 번민 속에서 그림의 신에게 다리 하나를 제물로 바쳐 마침내 신남화풍을 그려 내는 데 성공한다. 그 작품이 바로 '목포의 일우'다. "
표제작 '여섯 번째는 파란'은 아주 고통스럽고 역설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처지를 견뎌 내는 여성의 이야기다. 문중의 족장이 되면서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는 남편과 미술관 일을 그만두려는 딸을 둔 화자는 가계의 생계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미대 출신이지만 소질이 없어 그림 대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글마저도 막힐 때면 판화가이자 타투이스트인 친구 은종을 찾아간다. 딸아이를 낳는 날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은종은 생계를 위해 판화를 그만두고 타투를 선택했다.
두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순정이나 섬세함, 고고한 정신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범현이 작가는 이 작품집을 통해 "현대사회의 각종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미친 세상에 저항할 감각을 만들어 내는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미대출신인 범현이 소설가는 기획자로 활동하고있다. 오월미술관을 운영 중이며 예술문화연구회 대표로 민중미술 아카이브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 2016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2018년 100인의 작업실 탐방 에세이 '글이된 그림들'을 출간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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