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봄 2020
김혜진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3천500원
세상사가 아무리 암울하고 험악해도 지구는 돌고 봄은 온다.
입춘(立春)과 춘분(春分)을 지나 이제 완연한 봄이 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일상 속 봄기운은 완전히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이다.
'소설 보다 : 봄 2020'은 문학과 지성사가 지난 2년 간 꾸준히 출간한 '소설 보다' 시리즈의 최신판이다.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독자를 신속하고 긴밀하게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마련됐다.
지난해 겨울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인 김혜진의 '3구역, 1구역',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 등 세 편의 작품과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수록된 작품들은 사람이라는 공통 키워드로 일맥상통한 느낌이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재개발 지역을 둘러싼 이야기로 재개발 지역 세입자인 '나'와 길고양이를 챙기다 만난 '너'를 등장시켜 선과 악으로 특정할 수 없는 개인의 다양한 입장들을 드러낸다.
김혜진 작가는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거기엔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모든 사람 안에는 자신이 상상하기 힘든 모습들이 잠재돼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장류진 작가의 '펀펀 페스티벌'은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인물군상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주인공이 5년 전 합숙 면접에서 만난 한 인물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 주변 어디에서 볼법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런 인물. 과거 그를 대했던 주인공의 모습과 현 시점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의 모습을 통해 통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장류진 작가는 "잘못한 건 남 탓, 잘한 건 내 덕분. 못 나가는 건 니가, 잘 나가는 건 다 내거. 이런 걸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는 아닐 것 같다는 예감. '비단 승진 문제 뿐 아니라 조직생활, 나아가서는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 그런 식의 엉뚱한 원리로 굴러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한다.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는 작품의 구성부터 독특하다. '보나'라는 인물의 삶을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정치적 사건을 '일기예보'처럼 일상적으로 다룬다.
한정현 작가는 "폭력에 대한 근원을 하나의 사건으로 규정하는 순간 배제되는 무언가가 발생할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것이란 생각"이라며 "저는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고 사랑과 혁명. 그렇게 믿는다. 어쩌면 조금 간절히"라고 밝힌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뉴시스
- 대장간에 남아 있는 우리의 모습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한때 서울 을지로 7가는 대표 대장간 거리였다. 녹번동,수색, 구파발 등지에도 대장간이 많았다. 그랬던 대장간들이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구조 개편과 도시개발을 거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이제는 대장간이 모여 있는 곳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대장간 셋이 붙어 있는 인천 도원동이 국내에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라 할 수 있다.도원역 부근에 있는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대장간 중 맏형 격은 1938년생 최고령 대장장이 송종화 장인이 운영하는 인일철공소다.책 '대장간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장인 대장장이와 대장간의 모든 것을 담았다.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을 누빈다.역사 속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저자는 또 대장간이 우리말의 아주 오랜 곳간임에 틀림 없다고 말한다.이 책에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나라군에 건넨 선물 중 휴대용 불붙이는 도구 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당시 이순신 장군이 부시를 일컬어 적었던 화금(火金)은 불을 일으키는 쇠라는 말이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 부시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불과 쇠가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이 책은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우리 대장간과 대장장이의 세계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대장간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장간의 인문학적 향기를 다양한 관점에서 드러내고자 애썼다"고 말하는 저자는 대장간 현장과 거기서 일하는 대장장이들, 나아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연장들을 사용하는 우리 삶의 현장 속을 누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대장장이들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대장간이나 대장장이는 우리 문화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나라 대장간 다섯 곳, 일본의 다네가시마 대장간 한 곳의 현장 모습을 보여준다. 인천의 도심 한복판에 있는 네 곳 등인데, 이제는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 혼자서 일한다. 젊은 누구도 대장간 일을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대장장이들이 일을 그만두면 그 대장간들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아쉬워한다.뭐니 뭐니 해도 가장 고마운 건 이때껏 대장간 현장을 지켜내온 이 땅의 나이 드신 대장장이 장인들이다. 힘에 부칠 때마다 대장간 현장을 찾아 그분들의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고는 했다.대장장이와 도구, 그리고 쇠. 대장간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장장이가 있어야 쇠를 달구고 두들겨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원자재인 철물이 없어도 대장간은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나 원재료인 쇠 말고도 화로, 모루, 망치, 집게 같은 필수 도구가 있어야 한다. 대장간 일은 쇠를 불에 달구는 작업이 우선이다. 화로에는 풀무가 따라붙는다. 바람이 없으면 화로에 불길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대장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성냥이다. 충청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대장간을 승냥깐이라 한다. 이 승냥이라는 말이 성냥에서 나왔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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