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은 문학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 미적 가치와 작품성을 평가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비평은 작가의 어떤 잘잘못을 따지고 훈수를 두기보다 주로 작품의 의미와 미덕을 찾는 데 의미를 둬야 한다.
순천에서 활동 중인 비평가 장병호씨가 평론집 '척박한 시대와 문학의 힘'(국학자료원刊)을 펴냈다.
장씨는 책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국권이 침탈 당한 일제 강점기와 민족상잔의 한국전쟁기, 표현의 자유가 억눌렸던 군사독재 시절을 '척박한 시대'라 명명했다.
이 평론집에는 소설론과 수필론, 시론 등 28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소설론에는 최인호의 '타인의 방'과 김승옥의 '무진기행', '야행'을 비롯, 오유권의 소설과 일제 강점기의 소설, 한국 호랑이 설화 및 풍자소설의 전통 등에 관한 글을 담았다.
이중 최인호(1945-2013)는 우리나라 소설가들 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은 작가로 평가했다.
그는 특히 도시화·개인화·익명화 되어가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 속에서 인간의 삶이 새로운 양상으로 변질 왜곡되는 상황을 예리하게 포착, 놀랍도록 독특한 방식과 문체로 평상화했다고 규정했다.
순천 출신으로 한국문단의 기린아였던 김승옥(1941-) 작가는 자유분방한 시각과 감각적인 묘사, 재기발랄한 문체로 1950년대 모더니즘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았다고 봤다.
김승옥은 무엇보다 한글세대의 언어적 감수성을 보여준 1960년대 대표작가로 순우리말 을 통해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국문학의 지향점으로 인식된다고 결론내렸다.
이번 평론집의 큰 성과는 오유권 편이다.
오유권(1928-1999) 작가는 나주 출신으로 50년대 중반 문단활동을 시작, 90년대까지 40여 년 동안 창작을 통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생활상을 소설화했고 특히 전라도 방언 구사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던 작가로 꼽았다.
한국문학에서 농민들의 삶을 소설화한 작가로는 이효석과 김유정, 이무영, 박영준, 오영수 등이 있는데 오유권만큼 농촌현장에 몸담고 농촌 하층민의 질박한 삶을 일관되게 담아낸 작가는 전무후무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작품세계의 일관성에서 비춰 오유권은 한국 농민소설의 대표작가로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수필론으로는 1950년대의 조희관을 비롯, 이기봉과 김구봉, 백희동, 조영남, 김학래 등 광주·전남 출신 수필가들에 대한 작품론이 담겨 있다. 특히 법정 스님의 수필세계를 자연관과 무소유관, 행복관 등 주제별로 살펴본 세 편의 글이 돋보인다.
시론에서는 광주·전남에서 활동 중인 남석우 시인을 비롯한 김혜련과 송봉애, 최순애, 박정빈, 이명흠, 임원식 등 여덟 시인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장병호 비평가는 "책에서 다룬 작가의 작품들은 다들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어려운 상황에 허우적거리며 냉혹한 세상과 맞서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며 "결국 문학이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일진대 그 어떤 작가나 작품이든 척박한 시대환경이나 삶의 질곡과 싸우지 않고서는 독자와 만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대인의 소외문제에 관심을 갖고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소설의 소외의식'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평론 '소외문학론 서설'로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평론집 '소외의 문학 갈등의 문학'(2008), 수필집 '코스모스를 기다리며'와 '천사들의 꿈노래' 등을 펴냈다.
현재 중등교직을 마치고 순천에 살며 작품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최민석기자 cms20@srb.co.kr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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