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삼분한 고구려, 백제, 신라 글씨는 어떻게 다를까. 서예사적으로 세 나라 글씨의 특질을 뽑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서예를 총망라한 최초의 연구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까지 발굴된 금석과 목간 등 삼국의 문자 자료 대부분을 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국 서예의 특징을 각각 살피고 삼국 글씨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비교 분석했다. 또 삼국의 중국 서예의 수용과 변용, 고구려 서예와 신라 서예의 연관성, 백제 서예가 일본 서예에 미친 영향, 신라 서예가 가야와 일본 서예에 미친 영향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의 서예문화가 전파되는 과정도 살폈다.
저자는 먼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해 중국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고구려 글씨를 다룬다.
고구려 글씨는 광개토왕비와 충주 고구려비 같은 비석, 북한과 중국에 있는 고분, 금동불 광배(빛을 형상화한 불상 뒤쪽 장식물)와 금속 그릇에 남아 있다.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세련된 문화를 향유했다고 알려진 백제에 대해서는 글씨에서도 유려한 서풍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는 백제의 글씨는 개성적이다. 용도에 따라 서풍이 구분되는 고구려, 약 100년간 동일한 서풍을 유지한 신라와 다르게 백제는 글씨를 쓰는 사람마다 서체와 서풍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신라는 고구려 서예를 수용했지만 6세기에 이르러 독자적인 서풍을 완성했다.
저자는 삼국 글씨의 특징 뿐만 아니라 각 나라가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도 소개한다. 그는 서예사 측면에서 고구려는 신라, 백제는 일본, 신라는 가야와 일본에 영향을 줬음을 드러낸다.
삼국은 한자를 매개체로 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면서 각기 다른 역할로 고대 아시아 문자문화의 금자탑을 세웠다.
광개토왕비와 충주고구려비 등에서 나타난 비문에서도 큰 차이를 드러낸다.
광개토왕비 비문의 서체는 예서다. 예서 중에서도 파책이 약간 가미된 고예로 쓰여 서한 예서가 동한 예서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비의 크기에 걸맞은 웅강한 고예의 서풍에서 고구려의 진취적 기상이 느껴진다.
반면 국내 유일한 고구려비인 충주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를 축소한 것과 같은 자연석 사각 석주형이다. 처음에는 비의 전면과 좌우측면에서만 문자가 확인돼 삼면비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최근 후면 좌측 끝에서 판독된 글자로 인해 왕의 순수 관련 비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이 비는 광개토왕비나 집안고구려비 보다더 6세기 신라비의 글씨와 유사하다. 예서의 필의가 있는 해서인 서체가 같고 원필의 자연스러운 풍치도 비슷하다. 이 비를 세운 지역이 후에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6세기 신라 글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자는 "고구려 글씨는 용도에 따라 서체와 서풍이 결정되는 반면, 백제 글씨는 고구려와 신라 명문과 달리 중국 한문 양식을 따르고 있어 한문 수준이 높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삼국의 글씨는 각기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차이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 시와 그림으로 피어난 꽃의 절규와 함성 시는 시인의 얼굴이자 내면이다.시인은 시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고 표정에 담지 못한 언어를 끄집어낸다.박노식 시인의 시도 이와 다르지 않다.박노식 시인이 최근 신작시집을 낸 데 이어 올봄을 넘기지 않고 시화집을 내놓았다.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 刊)을 펴냈다.박노식 시인은 등단 후 9년 동안 5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첫 시화집을 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시를 쓴 셈이다. 그 원동력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세상과 싸우기 위해, 밥벌이를 위해 삼십여 년을 접어두어야 했던 만큼 '시'를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며 "남보다 늦은 나이에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 만큼 더 치열하게 시 창작에 몰두하였다"라고 답했다.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에는 모두 37편의 시가 실렸는데, 각 편마다 꽃말을 제목으로 하고 부제로 꽃 이름을 달았다. 각 시편마다 서양화가 김상연의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꽃시(詩)와 꽃말과 꽃그림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화집이라고 할 수 있다.가령 "자기애"라는 꽃말을 지닌 "수선화"를 시인은 이렇게 시로 적고 있다."마주 앉아서 그대의 말끝을 따라갈 때면 어느새 저녁이 오고 나의 눈빛은 강 하구에 이릅니다/가만히 보면 그대 얼굴이 우물 같아서 달이 뜨고 거기에 내 얼굴도 떠 있습니다/그대는 흰 꽃잎으로 나는 노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는 지금 서로의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자기애-수선화' 전문)"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꽃"은 또 이렇게 시로 풀어냈다."아득한 기억처럼 슬퍼지는 시간들이 있지요/ 폭발 직전의 꽃망울은 순수의 가지에 놓여서 눈을 감아요/ 지난 노래를 부르지 말아요/ 한 장 꽃잎이 강물에 떠내려간들 누가 울어주나요/ 눈물은 온몸에 있어요/ 온몸이 울어요/ 당신이 다시 돌아와 내 눈물의 노래가 되었어요('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미선나무꽃' 전문)독자들은 시화집을 통해 37개의 꽃과 꽃말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꽃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꽃에 투영한 결과이며 오랜 세월 인구에 회자되면서 꽃말로 굳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시인이 이번 시화집의 부제를 '꽃말을 시로 읊은 가슴 저민 자화상'으로 명명했다. 시인이 정작 쓰고 싶었던 것은 꽃이 아니라 꽃 너머, 꽃말이 아니라 꽃말 너머, 그러니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 셈이다.박노식 시인은 이번 시화집 출간에 맞춰 '꽃말시'를 화가 김상연이 그림으로 표현해 낸 특별한 시화전을 연다.시화전은 광주시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5월2~14일까지 박노식 시인의 첫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출판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전시회 첫날인 5월 2일 오후 6시 오프닝과 출판기념회를 함께할 예정이다.김상연 화가는 "기존의 시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 화가의 눈으로 시를 재해석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며 "시화집에 인쇄된 그림과 원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니 전시회에 오셔서 직접 감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박노식 시인은 "'꽃말시'는 처음부터 시화집을 목적으로 구상했었다. 시집 한 권 분량의 60여 편을 염두에 두었으나 시화집으로 묶기에는 다소 벅찰 것이라며 그가 말렸다. 그래서 37편에 머물렀으나 꽃만 남고 훗날 그는 구름이 되어버렸다"며 "더는 가슴 저미는 일이 없길 바라므로 나는 죽은 사람처럼 이 시화집을 열어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시인은 차마 더 이상 열어보지 못하겠다고 하니 시화집을 열어 꽃말시를 읽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다..박노식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 국문과를 나와 지난 2015년 '유심'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그동안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을 펴냈으며, 화순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현재 광주 동구 '시인 문병란의 집'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김상연 화가는 화순에서 태어나 전남대와 중국 미술대학원을 거쳐 현대미술을 특유의 기법으로 회화와 설치, 미디어, 판화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 주목을 받고 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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