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PP재질, PE재질…분류도 까다로워
섞어가는 음식물까지 선별, 극심한 스트레스
분리 배출이 기본이지만 안 쓰는 게 최선책
[생활쓰레기 팬데믹 ②광주 북구 재활용선별장 가보니]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종이와 플라스틱, 비닐 등 대표적인 재활용 제품들 중 사실상 재활용이 되지 않은 제품들이 더 많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외식 감소와 배달 음식 증가로 인해 쓰레기가 급증하면서 일회용품 재질도 천차만별이라 시민들이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기 위해서는 따로 공부를 해야 할 정도다.
재활용 쓰레기가 늘어나면서 선별장 업무도 급증하는 등 '어떻게 재활용 해야 하나'는 질문이 주요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제품들이 겉보기에는 재활용이 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선별장으로 가는 쓰레기 중에서도 버려지는 일이 많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따뜻한 음료의 종이컵은 내부에 PE(폴리에틸렌)이 코팅돼 있어서 재활용이 안되고, 일부 차가운 음료를 담는 플라스틱 컵은 PET와 PS(폴리스타이렌)이 섞여 만들어져 이 역시 재활용이 안된다. 사람들은 커피를 담은 컵을 재활용 가능하다고 분류하지만, 실제로는 재질까지 꼼꼼히 파악해 따로 분류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재활용 쓰레기가 실제로 재활용 되기 위해서는 몇 단계를 거쳐야 가능할까. 집에 있는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부터 아파트 재활용 수거장, 재활용 선별장, 재활용 업체까지 따라가면서 재활용 쓰레기의 재활용 과정을 살펴봤다.
재활용쓰레기의 처리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집에서 다 마신 플라스틱 생수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재활용 마크를 보니 '페트'라고 적혀 있다. 안심하고 분리수거하러 나가려고 했다가 밑에 작은 글씨로 '뚜껑:HDPE', '라벨:PP'라고 적힌 것을 확인했다.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뚜껑과 라벨을 제거한 뒤 손에 들고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재활용 분리수거장에는 HDPE와 PP를 버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종이, 플라스틱, 병류, 비닐류로만 구분돼 있어 어디에 뚜껑과 라벨을 버려야 할지 구분이 안갔다. 생수통과 뚜껑은 플라스틱의 일종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플라스틱 분류함에 넣었지만, 라벨은 비닐로 취급해야 할지 플라스틱에 넣어야 할지 헷갈렸다.
분리수거장에서 만난 최모(58)씨는 "나는 그냥 생수병 라벨만 떼서 비닐류에 넣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에 넣어"라고 말했다. 일단은 최씨의 말에 따라 생수병과 뚜껑을 플라스틱에 버리고 라벨만 비닐로 처리했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분류해놓은 재활용 선별장으로 옮겨진 다음, 재질 별로 처리하는 재활용 업체로 다시 나눠져 재활용된다.
광주 북구 재활용선별장은 높게 쌓아 올려진 재활용쓰레기 더미로 건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쓰레기 냄새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제대로 씻지 않은 갑에서 나는 썩은 냄새나 부패한 음식물 냄새 등이 선별장 일대를 가득 채웠다.
선별장에 들어서니 대형 트럭 뒤로 성형된 재활용쓰레기를 옮기고 있었다. 사람 키만한 재활용쓰레기 묶음들을 싣고 나가기 위해 다른 트럭도 대기중이었다. 지게차가 바쁘게 움직이며 트럭에 재활용 묶음을 옮겼지만, 트럭 수십대 분의 쓰레기들이 선별장 내부에 아직 남아있었다.
선별장 2층에 올라가면 그제서야 작업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활용쓰레기 수거차량이 기계를 통해 재활용쓰레기를 2층에 올리면, 작업자들은 컨테이너에서 자신이 담당한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해 분류한다. 벨트 위에는 모래, 장난감 슬라임 등 누가 봐도 재활용이 되지 않을 쓰레기들이 섞여 있었다.
수거장에서 버렸던 것과 비슷한 생수병·뚜껑·라벨도 컨테이너 벨트 위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생수병은 금세 재활용으로 분류됐지만 뚜껑과 라벨은 재활용으로 분류되기도, 일반쓰레기로 처리되기도 했다. 한창 작업 중이던 한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재활용 가능하지만 크기가 너무 작고 잘 집히지도 않아 여건상 재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뚜껑이나 라벨만 따로 모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일이 구분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배달 용기도 많이 보였다. 내용물을 헹궈 내놓은 용기는커녕 먹다 남은 음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다. 더운 날씨에 악취를 풍기는 배달 용기는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되거나 땅에 묻히게 된다.
이 선별장은 아파트보다는 주택가의 재활용 쓰레기들이 주로 들어온다. 아파트 주민들의 규정이나 경비원의 관리 때문에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되는 재활용 쓰레기에 비해 주택가는 음식물을 씻어내지 않거나 종이와 플라스틱, 유리 등을 섞어서 배출하는 경우가 많아 분류가 까다롭다. 게다가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분류하다 보니 업무 강도가 매우 높다. 선별장을 운영하는 최봉주 대표는 "생각했던 것 보다 고된 업무에 금방 지쳐 그만 두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근무 시간 내내 시달려야 하는 악취 속에서 플라스틱을 색깔 별, 종류 별로 분류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작업자들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유리병은 투병한 병과 갈색병, 청색병 등 3개 종류로 구분한다. 유리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색의 병이 포함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고 분류해야 한다. 유리는 같은 색상의 유리끼리 모아서 녹인 다음, 다시 새로운 유리 제품으로 태어난다.
플라스틱도 편의점 도시락과 배달용기에 주로 사용되는 PP재질과 샴푸나 화장품 용기에 많이 쓰이는 PE 등으로 나뉜다. 이러한 재질들은 용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재활용 과정에서도 따로 분리해야 한다. 이 재질들은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배수관이나 포장지 등으로 재활용된다.
스티로폼 박스는 스티커나 테이프를 제거한 뒤 분리배출해야 한다. 이후 파쇄·압축 과정을 거쳐 지붕·천장 보수 등에 사용되는 건축 자재로 활용된다.
한편, 지난 2019년 광주시 재활용 쓰레기 배출 대비 폐기 비율은 45,49%로, 광주 전역에서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 2만8천581t 중 1만3천2t이 소각·매립돼 폐기됐다. 임장현기자 locco@srb.co.kr
"재활용 음식물 용기는 꼭 헹궈 버려주세요"
선발장 20년 운영 최봉주 대표
광주 북구에서 20년 가까이 재활용선별장을 운영하는 최봉주 대표는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비교해 20% 이상 증가한 걸 보면 배달 음식처럼 비대면 추세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며 "늘어나는 재활용 쓰레기, 분류해야 할 종류도 늘어가면서 선별장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활용 쓰레기가 급증해 재활용 선별장도 호황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PE·PP재질은 대부분 중국 재활용업체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작년 코로나19로 중국이 생산을 멈췄을 때는 단가가 급락하기도 한다.
최 대표는 "중국에 수출하는 PP·PE의 단가는 올해 1월만 해도 kg당 200원이었는데, 지금은 340원정도로 7배 가까이 급등했다"며 "지금은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또 언제 단가가 떨어질 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여름이면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악취가 더욱 심해져서 작업자들의 어려움이 늘어난다"며 "원활한 재활용을 위해 시민들이 더 신경 써 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음식물 자국이 조금 남아있는 정도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내용물을 비워내지 않거나 음식이 남아있는 경우라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물에 한 번만 헹궈서 분리배출 해주시면 처리가 용이하다"고 전했다.
20년 동안 시민의식도 많이 변화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일반쓰레기를 재활용쓰레기 틈에 숨기거나, 페트병 속에도 이물질이 가득 담겨 재활용 과정 중에 터지는 일도 있었다.
최 대표는 "요즘은 생수병 90%는 라벨이 제거되서 들어오고 일반쓰레기도 많이 줄었다"며 "시민들의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압착식 종량제봉투 수거차량이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있어서 재활용쓰레기가 깨지고 부숴져 재활용이 어려운 상황이라 북구는 다음 달부터 재활용품 전용 수거 차량을 운영한다"며 "쓰레기가 급증하는 사회에 맞춰 쓰레기 처리를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밝혔다.
임장현기자 locco@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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