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전남 건축계 거봉의 손길···건축가 김한섭 설계 공간

입력 2021.08.26. 22:46 김혜진 기자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29>]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 내부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29>] 건축가 김한섭 설계 공간

우리나라 건축계의 정체성이나 위계가 생겨난 것은 기껏해야 100여년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때의 초기 근대건축가인 박길용이 있었다면, 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며 침체된 우리나라 건축계는 1960년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 김수근 때에서야 비로소 건축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전남에는 전남 건축계의 거봉이라는 제주 출신 김한섭이 있었다.

그가 한국 건축계에서 크게 주목 받은 적이 없는 이유는 김중업, 김수근의 건축 활동 이전부터 동시대의 건축을 전개했음에도 수도권위주의 사회구조와 중앙 지향적 경향 속에서 지방건축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필자는 수도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지역 건축계 수준을 올려놓으며 지방 건축문화 창달에 기여한 지방의 건축가들이, 한국 현대건축의 형성과 전개과정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길 바라며 건축가 김한섭의 건축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김한섭은 1952년 밀항해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의 수학을 거쳐 전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전남대학교에 몸담은 9년여 동안 그의 작품은 과도기적인 시기를 보냈고 그만큼 그는 실험적인 건축물을 선보였다.

이때 지어진 건축물은 광주사범대학(1957), 광주사대부속초등학교(1959), 용아빌딩(1957), YMCA회관(1958), 전남의대간호원기숙사(1960), 서광주세무서(1960), 전남대학교농대본관(1963)이다.

이때 그의 건축물은 르꼬르뷔지에(Le Cor busier)의 영향을 받아 수직과 수평, 곡면을 가진 콘크리트판을 결합한 건축을 추구했다. 이는 가는 선을 좋아했던 건축가 김한섭의 디자인 디테일 때문인 듯하다.

일자형의 단순한 구조의 건축물로 보이지만 세밀한 것 하나하나 신경 쓴 광주교육대 교육박물관 건물. 그 중에서도 현관 외곽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모험적인 구조다. 기둥을 중앙에 하나만 두고 슬래브를 보 없이 떠 받친 이 구조는 당시 지역의 시공과 건축설계 기술력으로는 대단한 실험이다.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29>] 건축가 김한섭 설계 공간

이것이 일본에서의 수업을 통해 면으로 발전했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한국식의 거친 시공이 아닌 일본식의 매끈하고 예쁘장한 디테일까지 애정이 담긴 장인의 건축을 하려고 한 것이 특색이다.

당시 광주지역에서는 벽돌조에 의한 목조지붕틀 구조가 일반적이었는데 이것은 당시 시멘트와 철근을 구하기 어려운 사회적 여건에 기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한 건물을 설계하며 조적조와 목조 지붕틀을 주 구조체로 하면서 바닥을 콘크리트 슬래브로 처리하며 벽돌거푸집기둥을 시도한다.

평면의 구성은 일(一)자형의 단순한 것이면서도 양쪽 끝의 계단실을 내밀기해 의장적안전을 구하고 있다. 발코니 난간 처리는 당시 주어진 재료로 처리해 변화를 주고 있다. 외관은 기둥을 돌출시키고 매층마다 차양을 내밂으로써 이들에 의한 선 구성을 하며 붉은벽돌과 색몰탈로 면 구성을 한다.

김한섭의 건축 작업에서 전환점이 되는 용아빌딩. 광주 최초의 철근콘크리트구조 5층 건물이다.

여기에 창문틀의 세밀한 분절을 통해 아름다운 면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마치 모더니즘 화가들의 면 구성을 보는 듯하다. 이 방식은 뒷면까지 그대로 적용되지만 전면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고 뒷면의 기능에 맞게 창문을 작게 하고 면을 강조함으로써 면의 구성을 한다.

이런 아름다움은 시공의 정밀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므로 대단히 까다로운 시공감리가 현장에 적용됐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벽돌을 똑바로 쌓기 위해 높이를 '트랫싯'으로 점검해 당시 도급업자가 많은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면의 외곽변화의 극점은 중앙현관부분에 둔다. 현관의 외곽은 극적 효과를 위해 당시로서는 상당히 모험적인 구조가 등장한다. 기둥을 중앙에 하나만 세우고 7.0m×5.5m 크기의 슬래브를 보 없이 떠받친 것이다.

전남대 농대 건물. 커튼월 입면의 콘크리트 조적구조와 옥상에 설치된 파동형 지붕구조가 눈에 띈다. 이는 국제주의 건축을 한국식으로 번안해 수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당시 광주의 시공 및 건축설계 기술력으로는 대단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재 이 건축물은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1층의 공간은 기획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2층의 교실은 복도를 없애고 목조지붕틀을 그대로 노출시켜 교육의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한섭 또한 건축가이기 전에 교육자였기에 그가 건축한 건축물이 후대에 교육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는 교육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자긍심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용아빌딩은 김한섭의 건축작업에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광주지역에서 최초의 철근콘크리트구조 5층 건물로 건물 완공 당시 지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르꼬르뷔지에의 도미노 이론에 충실히 따른 건축물로 벽체가 하중의 부담에서 해방됨으로써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구성이 가능한 건축작업을 시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필로티를 사용하지 못했지만 2층의 입면을 돌출시킴으로써 상부층이 지상에 떠 있는 매스감을 형성했으며, 파사드에는 전면창호를 도입해 자유로운 입면구성을 시도했다.

콘크리트 구조의 도입과 중앙부에 위치한 계단실 코아는 임대공간의 자유로운 공간 분할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계획됐다. 최상층에는 테라스를 지닌 주택을 얹음으로써 옥상정원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됐다.

특히 최상층 지붕에 사용된 볼트지붕은 단순한 박스형 매스에 변화를 줌으로써 매스의 구성미를 높인다. 흥미로운 것은 전면 창호다. 금속창호를 사용할 수 없었던 당시 현실에 커튼월이 목재창호로 구성된 것이다.

이는 건축생산시스템이 지원되지 않은 현실을 극복하면서 국제적인 건축경향과 자신의 건축적 의지를 관철하려고 한 그의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건축적 완성도나 그 이후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연속성 등을 고려할 때 용아빌딩은 확실하게 구분되는 특징적 모습을 지닌다.

전남대농대는 커튼월 입면의 콘크리트와 조적 구조에 의한 번안이 완성도 있게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옥상에 설치된 파동형 지붕구조는 르꼬르뷔지에의 옥상정원의 개념을 수용하기 위한 건축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용아빌딩에서 처음 시도된 르꼬르뷔지에의 건축이론이 전남대농대에 와서 국제주의 건축의 한국적 번안과 함께 수용되는 모습이 흥미롭다. 정관성 ㈜건축사사무소 자경재 대표

정관성 건축사는

아름다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머무르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연구하고 도시와 자연을 배경으로 스스로 풍경이 되는 집을 끊임 없이 고민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7년 광주시 건축상 은상을 수상한 'A Bustling House'와 2018년 광주시 건축상 은상을 수상한 'Put in a Comma', 광주 남구 봉선2동 주민센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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