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28>원효루

입력 2021.08.19. 17:31 김혜진 기자
'멍 때리기' 최적의 공간에서 쉼표 한박자
원효루에서 본 풍경. 지붕의 막새와 누마루의 나무난간, 기둥이 풍경을 담은 액자를 만든다.

광주에는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초록공간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녹지공간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무등산은 '광주의 숨터' 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시의 빌딩 숲 속에서 고개를 잠시 들면 볼 수 있고, 차로 20분 이내면 숲 내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무등산의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시건축 산책이란 타이틀 아래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소개하려고 한다. 나만의 '멍 때림' 장소이자 잠깐의 일탈로 얻을 수 있는 꿀같은 휴식 공간. 사실 필자만 아는 공간은 아니다. 이미 광주시민들은 한 번씩, 아니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등산객들에게는 잠시 쉬어가는 평상 같은 곳이다.

도시 길을 지나 초록초록한 드라이브 길을 10여분 정도 오르면 도착하는 광주 시내의 도시건축(?)이다.

무등산 전경이 일품인 원효루

원효사 누마루. 이곳에서 보는 무등산 정상은 정말로 시원하다. 산에서 아래로 누마루를 스치듯 부는 바람도 시원하지만, 그곳에서 산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비워진다.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그 느낌은 직접 느껴봐야 알 것이다.

평일에는 원효사 바로 앞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누마루 아래에서 오미자차 한 잔을 사들고 누마루에 오른다. 굳이 차를 한 잔 사지 않더라도 약수터에서 물 한 잔 떠서 앉아 마시며 땀을 식혀도 좋은 곳이다.

나무들이 터널을 만들어 마치 초록색 터널과 같은 무등산 길

무등산 주상절리대 암석과 같은, 크고 네모네모한 돌들로 쌓은 석축이 독특하다. 독특한 석축 위로 자리 잡은 원효루를 보고 있노라면 최고의 입지라는 생각이 든다. 스님들만의 공간이 아닌 무등산 방문객들의 쉼터로 아주 제대로 자리 잡은 것이다.

원효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신라시대에 중건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원효대사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절을 개축한 이후로 원효사가 됐다고 한다. 원효사 누각, 대웅전, 원효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필자는 이 공간을 최적의 '멍 때림' 공간으로 소개하고 싶다.

원효사 까페에서 바라본 풍경(왼쪽)과 원효사 누마루 아래 입구

빈 듯한 이 느낌을 필자는 '멍 때리기'라고 부른다. 일에 지쳐서 잠시 휴식을 갖고 싶을 때, 맛있는 달달한 커피 한잔하며 눈의 초점을 흐린 채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곳. 누마루는 필자에게 '멍 때림' 공간인 것이다.

'멍 때리기'의 효능에 대해 약간은 '약 장수가 약 파는 느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과학지 '사이언스'에 실린 실험에 따르면 뇌가 심심할 때 창의력이 높아진다. 단순히 휴식을 넘어서 정말 심심해야 하는 것이고, 창의력 뿐만 아니라 심심한 뇌는 우뇌가 진정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이는 심심함을 연구한 미국의 철학자 안드레아스 엘피도루가 주장한 내용으로, 실제로 심심할 때 뇌의 활동은 5%가 줄어드는 데, 이 자유로 얻은 5%가 새로운 변화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학교공간 혁신 설계를 할 때 수험생 특히 고등학생 아이들의 '멍 때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 공간으로 표현을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산을 갈 수 없다면 하늘을 볼 수 있는 편안한 벤치를 만들거나,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무 그늘 아래 해먹을 설치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직장인들은 잠시 '멍 때림'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모니터 바탕화면에 멋진 풍경 사진을 넣어 설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 또한 잠시 눈요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그렇게나마 누리고 있다. 더구나 광주 시민이라면 더없이 좋은 '멍 때림' 포인트가 있다. 창밖의 무등산이다. 짬이 생긴다면 노곤한 점심시간 이후 원효루에서의 시원한 오미자차 한 잔을 권해본다. 박수정 건축사사무소 동행 대표

박수정 건축사는

다양한 방향의 생태건축을 지향한다. 흙 건축을 심도 있게 연구해 현대건축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적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학교 공간 혁신 사업에 참여하면서 학교 중심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공간이 되도록 연구 중이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동행을 운영 중이며 전남교육청 공간혁신촉진자, 무안 황토건축문화재단 이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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