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⑳] 옛 전남도청

입력 2021.06.24. 19:30 김혜진 기자
29세 조선인 건축가의 꿈과 열정, 민주주의 상징되다
옛 전남도청사 전면. 단정하고 대칭적인 입면구성으로 관공서 건축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다.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고 옛 전남도청사 주변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조성됐다. 대한민국과 광주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 평화와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현대적인 문화전당을 배경으로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띈다. 어릴적부터 보아오던, 항상 그 자리에 있어 너무 당연한 건물이라 매번 그냥 지나쳤다면 이번엔 발길을 잠시 멈추고 찬찬히 살펴보자. 광주를 상징하는 이곳에 이 건물은 누가 설계하고, 언제 만들어졌을까?

광장의 얼굴같은 건축물로는 광주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고, 2002년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전남도청사와 역시 광주시 유형문화재(제6호)로 지정된 옛 전남도청 회의실이 있다.

옛 전남도청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30년이다. 옆에 있는 별관은 그 후 1932년에 지어졌다. 두 건축물 모두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어서 본래의 디테일과 재료가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옛 전남도청회의실. 입구 상부 커다란 유리창에서 20세기에 등장한 모더니즘 건축의 실험적 모습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모던함과 예스러움을 동시에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옛 전남도청사는 관공서로서 단정하고 대칭적인 입면 구성으로 권위가 느껴지면서도 정면 출입구 기둥머리와 아치 주변의 섬세한 장식 그리고 파라펫 상단의 장식에서 건축가의 섬세한 감성도 찾아볼 수 있다.

옛 전남도청 회의실은 정면의 커다란 유리면과 코너를 창으로 처리한 입면구성에서 20세기 초반 바우하우스 풍의 모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1930년에 이 건축물들을 설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옛 전남도청사 정면 장식. 출입구 위 네 개의 기둥은 코린트 양식으로 기둥머리를 장식하고 둥근 아치로 연결했다. 상부 입면의 장식과 독특한 파라펫 머리 장식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부분의 관공서와 은행 같은 건물들은 일본이나 유럽 출신의 건축가들이 설계를 했다.

당시 조선인 출신의 건축가를 꼽자면 나고야고등공업학교(현재 나고야 공업대학) 건축과를 1911년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건축기수직을 하다가 1920년 이훈우건축공무소를 개업한 이훈우나, 191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역시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수직을 하고 기사까지 이른 뒤 박길룡건축사무소를 개설한 박길룡 정도가 있다. 당시 조선인 신분으로 근대 건축교육을 받은 건축가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광주의 옛 전남도청사와 별관 회의실을 조선인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건축물 모두 1925년에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김순하 선생이 졸업과 함께 전라남도청 건축기수로 발령받아 설계를 했다. 졸업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신입 건축기수가 도청과 도청회의실을 설계한 것이다.

고 김순하 건축사. 건축사신문 제공

1928년 '조선풍 주택설계도안 현상모집'에 응모해서 2등 당선된 그의 이력을 보면, 단순한 기술직을 넘어서는 건축적 의식과 감각을 엿볼 수도 있겠다.

전라남도청 건축기수로서 전라남도청과 도청 회의실을 성공적으로 완공한 김순하 선생은 1933년 당시 경성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로 옮기게 되면서 서울에서 활동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1929년부터 조선총독부 건축과에 근무하던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이 폐결핵으로 더 이상 근무하지 못하고 총독부 건축기수직을 그만둔 해가 1933년이라는 점이다. 이상이 그만둔 자리에 김순하 선생이 발탁된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쨌든 경성의 총독부로 이직한 그는 이후 조선주택영단(대한주택공사의 전신)의 기사로 근무하다 광복을 맞이한다. 이때부터 민간분야 건축일선에서 활동하면서 정부 여러 부처의 기술자문역할을 했다. 1965년 대한건축사협회 발기인으로 창립회장에 추대돼 우리 건축계 초석을 다지게 된다. 1986년 사후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공로패를 받았고, 지금 대한건축사협회 건물 2층에 있는 다목적 홀은 그의 이름을 따서 '김순하홀'이다.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고 옛 전남도청사 주변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조성됐다. 현대적인 문화전당을 배경으로 모던하면서도 고풍스러운 건물이 눈에 띈다.

1930년 옛 전남도청이 완공됐을 때, 김순하 선생은 29세였다. 1901년생인 그는 갓 졸업한 신입 건축기수로서 이 건물들을 설계했던 것이다. 두 건물 중 현재까지 원본이 남아있는 도면이 있다. 29세 젊은 김순하 기사가 직접 그린 당시의 옛 전남도청 회의실 도면은 건축도면으로는 최초로 문화재로 등록됐다.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돼 광주시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014년에는 '지도로 보는 광주' 특별기획전에 전시돼 일반공개되기도 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옛 전남도청 건물과 부속건물들을 1980년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복원기본계획연구용역을 진행하며 다양한 자료와 구술 증언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비단 옛 전남도청 건물만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옛 전남도청 회의실을 포함한 광장 주변의 여러 건축물들의 관계를 고려해 도시의 상징적인 장소로서, 장소를 구성하는 여러 건물군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복원 방향이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의 복원뿐 아니라 도시의 장소 복원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고 기대가 된다.

광주의 중심 공간이라 오고 가며 자주 접한 곳이지만 지난 100년간 이 장소가 겪은 역사를 돌아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광주 상징 공간의 옛 건축물들이 어려운 일제강점기 시절 29세의 젊은 조선인 건축가의 손으로 설계된 건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광주시민들의 일상이 그렇듯, 나도 불현듯 앞을 다시 지나면서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건물들과 또 마주칠 것이다. 바쁜 일상이지만, 100년 가까이 이 자리를 지치고 있는 건물들에게 짧은 눈인사라도 보내주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문고리 AUD건축사사무소 대표

문고리 건축사는

지역 건축 현실과 이상적 건축계획의 간극을 이해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현실적 계획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도시, 건축, 리모델링, 인테리어 등 통합적인 공간 디자인을 지향한다. 현재 전주대 겸임교수이자 AUD 건축사사무소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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