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⑯] 양동 닭전머리

입력 2021.05.27. 16:10 김혜진 기자
삶의 '희노애락' 품은 동네다운 동네, 양동에서 만나다
대대적 단속으로 홍등가가 나간 자리에 점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닭전머리의 알록달록한 모습.

건축학과에 입학하고부터 취미가 하나 생겼다. 곧 없어질 것 같은 장소를 찾아다니는 일이다. '자체 휴강'을 하고 조선대에서 충장로까지 가는 길은 가능하면 같은 길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가끔씩 만나는 하나의 장면 장면이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어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다녔다. 집을 잘 꾸미는 어르신이 있을 듯한 주택에 담벼락을 넘어선 탐스러운 능소화나 감나무, 석류나무…. 그런 곳이 그냥 그렇게도 좋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쁜 설계 사무실 생활 중에는 그때와 같은 여유는 없어졌지만 어떤 곳이 재개발이 된다고 하면 어떻게든 틈을 내서 잠깐이라도 그곳을 방문한다. 그곳을 찾아 눈으로, 몸으로, 스케치로 공간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도시의 낙후된 공간은 사라지면 누군가의 기억에만 있을 뿐 그 모습은 영영 사라지기 때문이다.

건축을 하다보면 미학에 집착할 때가 있다. 설계를 할 때면 완벽하고 군더더기 없는 완결성 있는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골목골목이 있던 양림동과 산수동, 계림동, 우산동, 양동은 고층아파트로 모두 재개발됐거나 지금 재개발 되는 중이다. 아직 남아있는, 골목이 있는 동네는 월산동, 구동, 양동 일부 지역 뿐이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인 우산동재개발지역의 2009년 모습과 양동시장과 닭전머리 사이에 있는 골목의 노후한 주거지, 학동 팔거리 골목의 1980년 모습, 1980년대 광주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여인숙이 많아 전남에서 올라온 이들로 북적였던 충장로4~5가 이면도로의 현재 모습.

깨끗한 공간, 잘 꾸며진 공간, 정리된 공간을 보면 누구나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누추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더라도 도시에는 기억 속의 공간, 옛 일상의 공간, 삶의 공간도 있어야 한다. 도시는 우리 삶의 희로애락, 사는 기쁨과 사는 고통이 모두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비싼 주거만 있는 게 아니라 선택 가능한 적정 주거가 있고 하나쯤 못난이도 있는 동네. 아무리 좋은 것도, 경제적인 것도, 합리적인 것도 무조건적으로 적용돼서는 안된다. 광주다운 도시와 건축, 광주다움은 다양성의 존중과 선택 가능성에 기초한 것이 아닐까.

지금은 쓸모 없어졌지만 옛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공간. 골목골목이 있던 양림동과 산수동, 계림동, 우산동, 양동은 도시 재생과 동시에 시작된 재개발에 따라 고층아파트로 모두 재개발됐거나 지금 재개발되는 중이다. 아직 남아있는, 골목이 있는 동네는 월산동, 구동, 양동 일부 지역뿐이다.

그중에서도 양동은 새뜰마을 사업으로 이 동네 역사와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점에서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양동 커뮤니티센터가 지어지기 이전의 노후한 주거와 새로 지어진 양동 커뮤니티 센터 모습. 커뮤니티센터는 협소하지만 주민들의 바람을 담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양동시장은 호남 최대 시장이다. 명절날 엄마를 따라가면 가끔 닭 냄새, 홍어 냄새에 괴로웠지만 그래도 엄마 손을 잡고 다녔던 그 기억과 백설기 하나, 닭튀김의 고소함이 있는 곳이다.

그 옆의 닭전머리는 학생 때 막연한 두려움이 있던 공간이었다. 성매매 단속에 의해 홍등가는 없어지고 현재는 저렴한 임대료로 인해 점집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아파트 건설과 월산동 재개발로 철거가 이뤄지고 있기도 하다. 이곳의 점집들도 어딘가로 이동할 것이다. 이곳은 다른 용도로 채워지고 새로운 건축이 지어질 것이다.

양동은 시장, 홍등가, 점집 등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역사가 깊은 곳이다. 양동은 일제강점기 천정(泉町)이라 불렸는데 큰 샘이 있어 샘물이 있던 자리로 물이 풍족했다. 한 집에 7~8가구가 살던 그 시절, 양동과 월산동은 그 물로 목을 축이고 빨래도 하는 복작복작한 동네였다.

도시의 어지러움을 가려주는 하얀색과 홍등의 이미지를 지우는 파란색을 포인트로 만들어진 경로당 모습. 양동 경로당 옥상 모습. 2층 높이지만 무등산까지 전망이 가능한 공간이다. 또 한편으로는 운동공간과 휴게, 영화관람, 공연 등이 가능한 공간 등이 구성돼있어 주민들이 쉬었다갈 수 있도록 했다.

1920년까지만 해도 양동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둔치였다. 물이 차면 늪지고 물이 빠지면 백사장이었다. 이후 광주천에 제방이 축조되고 제방 뒤쪽 전남도시 제사 공장 등 여러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1936년 인구가 3천400명에 이르렀다.

닭전머리에 처음 술집은 영광집이라는 막걸리 집이었다. 나주식당은 처음에 막걸리집을 하다가 나중에 위쪽으로 올라가 색시집을 했다. 주 고객은 상무대 군인. 무등산 등산을 하고 술을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았다. 단체복을 맞춰 입은 색시집은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번영하다 90년 이후 경찰의 대대적 단속으로 점점 쇠퇴했다.

도시의 가장 어두운 시설과 가장 활발한 시장이 있던 이 지역 주민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총괄코디님, 활동가와 지역탐방을 하면 삼삼오오 어르신들의 스토리텔링이 끝없어 저녁 막걸리 파티까지 이어지곤 하는 동네다.

아직까지 '동네'라는 명칭이 익숙한 동네. 활기차고 적극적인 어르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공간은 경로당과 커뮤니티 센터, 공유작업장(부엌) 등이었다. 또 홍등가와 점집의 알록달록함을 지울 수 있는 소박한 건축물이 지어지길 기대했다. 어지러운 도시 풍경을 담는 백색의 공간, 홍등의 이미지를 대신해 줄 푸른빛이 쓰인 공간을 갖고 싶어 했다.

방화지구, 리모델링, 지적경계 불일치, 옆 건축물과의 연결구조, 그리고 공사비 부족, 좋지 않은 공사여건 등으로 여러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협소 대지에 작은 휴게데크공간, 옥상정원 등을 활용해 작지만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센터를 완성했다.

또 다른 이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인 경로당은 하얀색을 포인트로 완성됐다. 특히 옥상부분은 2층이지만 무등산까지 전망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한편에는 운동 공간, 한 쪽에는 휴게와 영화관람, 공연 등이 가능한 공간을 조성했다.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한 번도 그냥 보내주시지 않고 맛난 것 한 입이라도 챙겨주시는 어르신을 기억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또한 시간이 덧입혀지며 지역민에게 더 사랑받는, 사계절 방긋 웃어주는 동네의 하나의 존재가 되길 기대한다.최시화 ㈜건축사사무소 가온 대표

최시화 건축사는

건축은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즐거운 작업이며 더 좋은 건축을 할 수 있게 오늘도 나는 발전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건축가이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 속에서 굴하지 않는 캔디형 인간으로 조선대에서 도시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가온을 운영 중이며 광주 도시건축 정책위원회와 전남 경관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지역의 공공성과 도시성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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