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⑬] 상무지구 보행 전용 도로

입력 2021.05.06. 17:05 김혜진 기자
시청 앞 평화공원 모습

상실된 공간이 사람들 소리에 삶의 장소가 됐네


상무지구(尙武地區)는 1990년대 이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상무1동, 유촌동 일대에 조성된 대규모 계획도시이다. 호남 최대도시인 광주광역시의 새로운 행정·업무·문화 중심지로 광주광역시 2030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향후 광주의 최대 도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거 이 곳에는 육군 초급 간부를 육성하는 군사 교육기관인 상무대가 있었다. 상무대는 1994년 장성으로 이전했고 상무대가 떠난 자리는 당시 광주직할시에서 모두 매입해 업무, 상업, 주거가 결합된 자급자족이 가능한 신도시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상무지구다. 1994년 12월 처음 착공에 들어갔고 1997년 7월 상무1지구 완공을 시작으로 2003년 4월 최종 완공됐다.


전체 면적 중 업무·상업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도심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행정·업무 중심지답게 광주광역시청을 비롯한 관공서와 많은 공·민간기업, 방송·언론사들의 지역 본부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현재 광주에 단 두 곳밖에 없는 특급 호텔인 라마다 플라자와 홀리데이 인이 모여 있고 최근에는 레지던스형 호텔인 유탑부티크호텔도 오픈하는 등 명실상부한 광주의 주도심이라 볼 수 있다.

상무1지구가 막 완공된 1997년에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땅은 분양됐지만 건물은 지어지지 못한채 꽤 오랫동안 허허벌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개발된 땅에 오피스 빌딩과 오피스텔, 호텔, 주상복합들이 들어서면서 상주 인구가 늘어났고 그 쯤 개통된 제2순환도로와 빛고을대로 덕에 광주 전역에서 상무지구로 접근성이 매우 좋아지면서 치평동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20만명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상권 매출액도 구도심을 넘어섰다. 한때 유흥 말고는 볼게 없다는 오명이 붙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흥이 그저 일부에 불과할 만큼 규모가 커졌고 상무지구의 성장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실존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고,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장소 안에 있다는 걸 말한다. 장소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 우리가 서 있는 대지 그리고 우리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장소 위를 걷고, 장소 속을 통과해 걷는다.

우리는 장소 안에 살고, 장소 안에서 타자와 관계를 맺고 , 장소 안에서 죽는다.

'장소의 운명' 에드위드 s .케이시

LH 광주전남지역본부 사옥 측면의 보행자 전용 도로(왼쪽)와 보행자전용도로에 접해 있는 상무시민공원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장소는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터전이며 그것은 경제 발전의 반영, 국가의 정책의 실현, 시대의 정신이 투영된 모습이다. 상무지구의 태생- 발전 과정, 현재 모습은 구도심이 형성되는 과정과 다른 이유로 이 공간 자체가 갖는 현재성의 의미가 있고 또한 시대의 정신이 내포돼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건축의 상업성, 아파트 문화로 대표되며 집이 재화로서 기능하는 현재의 시대 정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거대한 크기의 국가단위 그것보다 조그만 화단에 핀 작은 꽃, 바닥에 비추는 좋은 햇살, 거리를 지나다 만나는 작은 벤치, 동네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는 등이 우리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요소이자 본질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에 접해 있는 아파트 담장에 '월담금지' 푯말이 붙어있는 모습과 길이 약 400m 보행자 전용도로에 접해 있는 아파트 담장이 양면에 위치해 있는 모습

그리운 것은 내가 어릴 때 살았던 동네에서 일어났던, 전술했던 모든 존재들과 장소 안에서의 마주침이다. 구도심에서는 그것이 있었고 신도심에는 그것이 없는가.

계획도시의 특징인 직교의 가로체계를 가진 상무지구는 광주시청사 입구의 평화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시청로 방향의 남북축과 5·18기념공원, 상무시민공원을 축으로 하는 동서축을 기본으로 계획됐다.

자연발생적인 굽은 골목들, 좁은 도로폭으로 상징되는 구도심과 비교해 신도심은 넓은 도로폭과 직선의 보행로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소공원에 접해 있는 두 카페의 모습

상무지구의 모든 도로계획 중에서 보행 전용도로는 동서축인 5·18기념공원과 상무시민공원을 연결하는 방향에 2개의 보행육교가 있고 각 보행로는 전체 계획에 부합되도록 남북측 방향의 격자형태로 계획됐다.

보행자 전용도로는 최소 8m의 폭과 중앙에 열주 식재가 반영됐고 일부는 열주 식재 주위에 벤치가 계획된 곳도 있다. 또한 전용도로는 각 지역에 설치된 소광장, 어린이놀이터, 보행육교 등으로 연결돼 상무지구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 있다.

공공건물의 주변부는 보행자 전용도로 역할을 충실히 기능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보행자 전용도로의 공간적 위치가 각 주요 블록의 내부에 설치된데다 상업지구의 건축계획상 대부분의 건축물 정면을 차량통행이 가능한 이면도로로 설정한 탓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행자 전용도로에 접해있는 대지 부분은 건축물의 배면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고 보행자 전용도로를 구성하는 건축물 배면에 노출된 각종 주방 설비장치, 쓰레기 적치물, 담장 등이 보행자 전용도로를 슬럼화하고 있다.

보행자 전용도로를 구성하는 건축물 배면에 노출된 각종 주방 설비장치, 쓰레기 적치물, 담장 등이 보행자 전용도로를 슬럼화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행공간을 되살리려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면도로는 주차장 입구로만 사용하고 보행전용 도로에 라운지 전면을 접하게 구성한 한 숙박업소(오른쪽 위)와 보행자 도로에 접해 통로 분위기를 한껏 밝힌 펫 카페, 기존 창고를 리모델링해 상무지구의 핫한 공간으로 거듭난 카페 서플라이.

아파트 단지와 접해있는 모든 보행 전용도로에는 '월담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담장이 있다.

아파트단지에 담장이 있고 없고를 계산해 보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월담을 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쪽문이 멀어서 돌아가기 귀찮은 아이들? '월담금지'라는 문구가 설치된 곳이 담이 없어져야 됨을 웅변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처럼 사람들이 요구하는 보행자 전용도로 본연의 역할이 상실되면서 초기에 계획했던 유토피아적인 보행공간의 모습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작게나마 보행공간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보행자 공간을 그대로 이용한 카페인 상지파크와 워킹씨애틀이다. 카페는 간선도로에 접해 있고 후면에 접해있는 소공원과 인접해 계획돼, 비교적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 데는 성공하고 있지만 소공원 반대편의 각종 상업시설의 인식 변화가 없어 아직은 절반의 성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리모델링한 w라운지 모텔은 이면도로는 주차장 입구로만 사용하고 보행전용 도로에 전면을 구성해 라운지를 1층에 배치했다. 훌륭한 사례로 꼽을만 하다. w라운지 모텔 1층 로비로 인해 건너편에 접해 있는 식당 부출입구와 대응이 돼 거리의 풍경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 신축된 유탑유블레스 트윈시티에는 펫 카페가 들어섰다. 보행자 도로에 접해 카페가 들어온 이후 보행자 통로의 분위기가 한껏 밝아졌고 밤 늦게까지 켜진 불빛으로 인근 노상 주차장의 안전도 아울러 확보하게 됐다.

이 카페의 입점으로 건너편 상가 안경점과 함께 보행자 입구의 초입을 구성하게 되면서 호텔 건물이 들어서기 전의 슬럼화된 공간이 사용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됐다. 다만 기존 통로 중간의 열주 식재가 철거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비록 보행자 전용공간은 아니지만 기존에 창고로 사용됐던 건물을 디자인써플라이가 카페로 설계시공해 상무지구에서 가장 핫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카페 써플라이(Cafe supply)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는 장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을 바꾼다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이전 삶의 형식에서 남아 있는 본질들은 변화가 없다고 본다. 장소 안에서의 마주침이 그것 중의 하나이다.

건축가로서의 역할은 사람이 거주하는 삶의 터전으로서 계획됐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들, 시간이 지남에 따른 변화된 요구들을 한데 통합해 내는 것이다. 나에게 남겨진 사명은 상무지구의 모든 보행 전용 도로로 남겨진 공간을 삶의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는 마주침의 장소로 변환시키는 것이 아닌가.

'월담'하는 친구들로 하여금 먼 훗날 아련히 기억되는 공간·장소로 그 길이 남아있길 바라면서. 이형주 건축사사무소 플레이스 대표

이형주 건축사

훌륭한 장소성을 가진 공간 설계를 사명으로 생각한다. 조선대를 졸업하고 정림건축과 공간건축에서 국내외 건축설계실무를 수련했다. KOICA 해외 봉사단으로 캄보디아 NPIC대학에서 건축설계강의를 수행하기도 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 플레이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남대 건축학부 겸임교수, 전라남도 공공건축가로도 활동 중이다. 남광주 구 철도관사 리모델링, 치평동 공영주차장을 설계했으며 대인시장 아케이드와 현재 송정역세권센터 ·광장조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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