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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행의 세상읽기

인문지행의 세상읽기-이 가을, 홍루몽의 ‘장화음’을 읽으며

입력 2019.11.28. 13:43 @양기생 gingullove@srb.co.kr
장춘석 교수
건륭 54년(1787)년 본 ≪홍루몽≫

된서리 한번 내리자 국화가 시들었다. 올 가을 오래 동안 내 마음을 자주색으로 물들여주었던 집 마당 국화 모둠이 이제 생명을 다하고 있다. 다른 가을꽃들도 모두 사라졌다. 중국 고전소설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이 쓴 홍루몽에는 장편 서정시 ‘장화음’이 있다. 여주인공 임대옥이 떨어진 꽃들을 모아서 꽃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서 울면서 읊는 이 작품은 꽃의 죽음을 비애로 표현한다. 그중 일부를 소개한다.

일년 삼백 육십일인데

바람·서리의 칼날이 꽃을 찌르는 때.

생기 있는 아름다움 얼마나 가겠는가

하루아침에 표박하니 찾기 어렵네.

피는 꽃 보기 쉽지만 떨어지면 찾기 어려워

계단 앞에 꽃 묻는 날 근심으로 죽게 하는구나.

홀로 꽃삽 들고 남몰래 눈물 뿌리니

눈물이 빈 가지 적시며 피 자국 보이누나.

두견새처럼 울었지만 꽃은 말 없어, 황혼이 되어서야

삽 메고 돌아와 겹겹이 문을 닫네.

(.....)

원하건대 오늘 내 두 날개 달고,

꽃 좇아 날아가 하늘가에 이르렀으면.

하늘가에 이르러도, 향기 나는 좋은 곳 있을소냐

차라리 향낭(향기 나는 주머니)에다 고운 뼈 담아,

깨끗한 한 웅큼 흙으로 절세가인 묻으리라.

본디 정결하게 왔던 너는 역시 정결하게 가야 하니,

저 도랑에 빠져 더럽혀짐보다 나으리라.

오늘은 죽은 너를 내 묻어 준다마는

내 목숨 지는 날은 알 수 없다.

내 오늘 꽃 묻는다 사람들은 비웃어도

후에 나 죽으면 누가 묻어 줄까.

남은 꽃 한잎 두잎 떨어지듯

홍안도 늙어 죽어간다.

하루아침 봄 가고 홍안이 시들면

지는 꽃, 죽는 인생 둘 다 알 길 없으리.

긴 일년 중 왜 하필이면 꽃필 때 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가. 가냘픈 꽃 피었다가 금새 진다. 게다가 떨어진 꽃잎은 바람에 날려가 흔적조차 찾지 못한다. 그래 슬픔에 사무쳐 두견새처럼 운다. 두견새는 촉나라 황제 두우의 혼이라고 한다. 두우가 죽은 후 새가 되어 울고, 그 피눈물이 떨어져 두견화, 즉 진달래꽃이 되었다고 한다. 두견새처럼 울었지만 꽃은 말이 없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 따라 하늘에 가고 싶다. 하나 그런다한들 하늘에는 향기 나는 꽃 무덤 만들 곳이 없다. 그럴 바엔 내 차라리 꽃잎을 좋은 관, 즉 비단주머니에 넣어서 묻어 주리라, 결코 깨끗한 네가 죽은 후 더럽혀지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후에 나 죽으면 누가 장례 치러줄 것인가. 너처럼 나 역시 시들어 사라지겠지.

이렇듯 작가 조설근은 떨어진 꽃 형상과 임대옥의 운명을 교차시켜 가면서 참으로 서럽게 서술한다. 나는 지금까지 동서양의 어떤 문학도 꽃잎을 가지고 이렇듯 처연하게 노래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 고도로 예민한 이러한 감성이 있었기에 조설근은 세계적 명작을 남겼지만 또한 그 때문에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자 무덤 앞에서 며칠을 통곡하다가 병이 났던 것이다. 자식이라는 꽃잎을 따라 하늘로 갔다.

중국에 “정자 하나도 모르면서 감히 풍류를 말하는가” 하는 말이 있다. 정이란 감성·감정·느낌·분위기 등을 포괄한다. 진정한 풍류란 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안다는 것이다. 타인, 자연, 예술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을 감정이입이라고 한다. 감정이입은 서양어의 번역이고, 동양에서는 정경융합, 즉 감정과 사물이 융합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동양에서는 특히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했다. 홍루몽의 ‘장화음’은 작중인물 임대옥이 꽃과 하나가 되어 읊은 것이다. 감정이입은 사람의 감정을 사물에 이입시킨다는 뜻이니 사람이 위주이지만, 동양은 사람과 자연이 합쳐진다고 해서 동시성을 강조한다. 어쨌든 감정이입이 잘 되어야 사람간의 소통, 즉 공감도 잘된다.

내 선배 한 분 여식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어찌나 사람을 들볶는지 6개월 만에 그만 두었다. 병이 들 정도로 힘들어서 살이 무척 빠졌다고 한다. 잔인한 것이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의 공감 능력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에, 약자는 모질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영 쉽지 않다. 그래서 병든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각박한 세상에 ‘장화음’ 같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시를 읽고 있으면 가슴 저 깊은 곳에 묻혀 있었던 예쁜 감정이 내 몸에 차올라온다. 그러면 감성의 물줄기가 정신의 세계로 흘러 들어가 메마른 마음의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어 사막 같았던 내면에 아름다운 영혼의 꽃들이 풍요롭게 핀다. 오늘 내가 사는 시골의 텅 빈 가을 공간에 수많은 낙엽이 떨어져 바람에 떠돌다 땅에 내려앉았다. 내 시적 재능이 있으면 ‘장엽음’을 지으련만 그러지 못하고 자그마한 수필 하나를 쓰는 것으로 대신한다.

조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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