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역사 '나주배'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입력 2020.12.06. 18:45 이윤주 기자
삼한시대부터 재배 시작 기록
고유한 농업기술·지식체계로
23% 점유…국내 배 산업 선도
영산강·방풍목·저온저장 등
전래농법 후대 전승 절실
민·관·학 뭉쳐 유산 지정 앞장

우리나라에서 배 하면 '나주배'다. 삼한시대부터 재배를 시작해 조선시대 왕실 진상품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는 나주배는 천혜의 환경과 고유한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배 산업을 선도해왔다. 봄이면 영산강변에 펼쳐지는 '배꽃대궐'은 나주만이 지닌 풍광이다. 영산강 물줄기와 함께 오랜 세월 지켜온 '나주배'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명물

나주배는 월등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나주배 역사는 삼한시대로 거슬로 올라가지만 최초 기록은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나주목 토공물 목록이며 이후 1871년 발간된 '호남읍지'에는 진상품으로 기록돼있다. 근대 나주배의 시작은 1906년 일본서 도입된 만삼길 종이 식재된 것으로 1913년 나주 금천면 이동규 농가에서 과수배 재배를 시작한 후 1929년 조선박람회에서 동상을 수상하며 나주의 명물로 떠올랐다.

단맛과 향, 아삭아삭한 식감이 뛰어난 나주배는 천혜의 자연 조건이 빚어낸 산물이다. 연평균 기온과 생육기인 4~10월의 기온, 일평균기온 섭씨 10도 이상의 일수, 연강수량 등의 기후와 양토·사양토 등으로 구성된 토질이 배 생육에 최적이다.

아름답고 특별한 농업 경관도 소중한 유산이다. 매년 4월이면 영산강을 모태로 드넓은 평야에 펼쳐지는 배꽃과 마을 사이사이에 조성된 배꽃길은 장관을 연출한다.

나주배 맛은 세계적으로 손꼽힌다. 해방 후 통조림으로 가공돼 수출길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1967년에는 동남아에 배 원물이 처음 수출된 후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로 수출시장을 넓혀왔다. 1996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클잭슨이 나주배를 특별주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축적된 재배기술 배 산업 선도

1910년대 과수농으로 본격화된 나주배는 고유한 농업기술과 지식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른 봄 서리를 대비해 배나무 아래에 왕겨와 짚을 태워 연기를 피워 올린 피해방지기법은 오랜 세월 구전돼 온 전통농업기술이다. 또 과수원의 경사를 고려해 탱자나무로 방품림을 조성해 태풍과 바람을 피한 것도 나주배의 품질을 높이는 환경이 됐다. 또 풀, 전정목, 축분, 인분을 썩혀서 퇴비를 만들어 사용한 것은 물론 쑥과 은행잎, 죽순 등을 발표시켜 만든 영양제를 사용하는 등 천연퇴비를 활용한 배밭 토양관리는 친환경 선진 농법으로 손색이 없다.

과수원마다 둠벙을 파서 물을 저장하고, 배나무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당도 높은 나주배로 만들어주는 암거배수방식 등을 통해 자연 순환형 생태농업을 지속해왔다.

1970년 이전부터 반지하 저장고를 사용하고 대패밥을 충전한 포장 수출 등 나주배의 맛과 품질을 오랜기간 유지하기 위한 저장 관리 방식은 수확후 나주배의 품질과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선진농법이었다. 지줏대로 평덕을 설치해 가지를 유인하는 평덕 관리기술과 배봉지 씌우기 등이 전국 최초로 도입되는 등 오랫동안 축적된 나주배 재배기술은 전국 배 산업을 선도했다.

1970년 원예시험장 나주지장(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설립에 이어 1990년 전국 유일 배 박물관이 들어섰고 2010년에는 나주배 지리적표시제도 등록과 함께 나주배산업 특구로 지정됐다. 또 현재 나주에서는 2천200여농가가 2천㏊ 면적에서 전국 배 생산량의 23%인 4만7천여t을 생산하며 최대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시급

나주배의 역사는 지금도 지역 곳곳에 자생하고 있는 400~500년된 토종 배나무들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고령화와 소득감소로 폐업하는 농가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활성화와 보존을 위한 방안이 시급한 실정이다. 봄이면 배꽃과 복숭아꽃이 만발해 '배꽃대궐'이라는 불리는 나주 금천면 일대에 최근 배나무를 뽑아낸 황토밭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방치된 고목들도 적잖게 늘어나고 있다.

안타까운 변화에 나주 배농가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유산이 사라지기 전에 이를 보존하고 유지, 전승해야 한다는 고민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가업으로 이어온 배농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노령화된 과수목을 재생시키고 보존하는 방안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다.

나주배농가들의 고민에 나주시와 지역전체가 부응에 나섰다.

지난해 농업유산지정신청을 위한 연구조사 요청이 올해 나주배박물관을 통해 진행됐고 이를 바탕으로 올 6월 농업유산 지정 신청을 했다. 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호남원예고, 나주배원예농협, 나주배사람들, 남도학연구소 등 5개 기관이 '나주배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주배'를 위해 민·관·학이 똘똘 뭉친 것이다.

◆세계농업유산 향한 첫걸음

나주시는 7일 '영산강 나주배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갖는다.

이 날 보고회는 지난 6월 농림축산식품부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신청과 10월 1차 농업유산자문위원회 발표에 이어 2차 현장평가를 앞두고 지난 1년 6개월에 걸친 준비상황을 최종 점검하는 자리다.

이날 최종보고회에서는 ▲국가중요농업유산 종합계획 ▲나주배의 역사성 및 가치 정립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 사례 분석 및 추진 전략 ▲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 기대효과 및 향후 사업계획 등의 주제가 다룰 예정이다.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면 3년간 약 10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게 되며, 나주시는 이 예산으로 나주배 전통농업을 보전·전승하고 지역민들이 주도하는 배꽃길 조성 등 사업을 추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나주시 관계자는 "역사성이 월등하고 경관이 뛰어난데다 주민참여도까지 높아 농업유산의 요건을 두루 갖췄다"며 "조만간 2차 농업유산자문위원회 현장평가에서 영산강 나주배 농업시스템이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고 나아가 세계농업유산(GIAHS)으로까지 등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마음으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이란

지난 2013년 '농림어업인 삶의 질 향상과 농산어촌개발에 관란 특별법'(국가중요농업유산의 보전과 활용)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에서 100년 이상 농업·농촌지역 환경과 사회, 풍습 등을 대상으로 유·무형 농업자원을 지정해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 전국적으로 15개가 지정됐으며 전남은 완도 구들장논, 구례 산수유농업, 담양 대나무밭, 조성 전통차농업시스템,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등 5곳으로 가장 많다.

이윤주기자 lyj200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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