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마디 굳은살 배긴 장인의 손, 福 부른다

입력 2024.02.21. 10:10 이관우 기자
백아산 기슭에서 복 엮는 사람들
가내수공업 전통방식 명맥 이어
중국산에 밀려 찬밥 신세 됐지만
500년 전통 잇는 맘으로 한땀한땀
화순 복조리마을 마을회관에서 80대 어르신이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상>화순 복조리마을 '복조리'

마디마디 굳은살이 깊게 배인 손이 분주히 움직인다. 피부에 남은 세월의 흔적은 수백 수천 번 연습하고 갈고닦은 수련의 흔적일까. 댓살을 한 줄씩 씨줄 날줄로 꿰는 능숙한 손놀림에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10여 분이 흘렀나, 눈앞에 댓살로 엮은 국자 모형의 작품이 탄생한다. 복을 가져다준다는 ‘복조리’다. 백아산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에는 ‘복을 엮는 사람들’이 산다. 복조리에 ‘행복’을 담아 널리 전파하는 화순 복조리마을 주민들이다. 현재 22가구가 거주하는 이 마을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전통 방식의 가내수공업으로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마을의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인해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실정이다. 여기에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활개를 치면서 우리 고유의 복조리가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찬밥 신세가 됐다. 주민들은 마을이 지닌 500년 전통문화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화순 복조리마을 마을회관에 복조리가 걸려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중국산 공세에 잊혀가는 세시풍속

복조리는 잊혀가는 우리나라 전통 세시풍속이다.

섣달그믐날 자정부터 정월 초하룻날 아침 사이에 집에 걸어 놓고 복을 빌었다.

조리는 원래 쌀을 이는 도구인데, 그해의 행복을 쌀알처럼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믿음에서 생겨난 풍속이 복조리다. 가정에서는 흔히 복조리 한 쌍에 돈이나 실, 성냥 등을 넣어 방 귀퉁이나 대청에 걸어두고, 1년 내내 복을 받고 재물이 불어나길 바랐다.

조리장수가 섣달그믐날 밤에 골목을 돌아다니며 "복조리 사려"를 외치면, 이윽고 주부들이 몰려와 복조리를 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복조리 장사는 물론 복조리를 내걸던 풍습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도정 기술마저 발달을 거듭해 조리질이 필요 없어지자, 주방에서도 더는 사용하지 않는 도구로 전락했다.

복조리마을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간 10만여 개의 복조리를 만드는 국내 최대 생산지 중 한 곳이었다.

담양 등 인접 도시를 비롯해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해 매년 11월부터 정월 대보름 기간에는 복조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을 정도였다. 복조리 만들기는 주민들의 생업이었다.

복조리마을이 전국에서 '복조리 1번가'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좋은 재료 덕분이다. 복조리는 산에서 자라는 대나무인 산죽(山竹)이 재료다. 복조리를 만드는 산죽을 '조릿대'라 부른다. 조릿대는 생명력이 강해 대나무가 살기에는 다소 춥거나 어두운 숲속, 높산에서도 자란다. 가늘고 유연성이 좋아 가내수공업이 수월하고 내구성 또한 좋다.

백아산에는 조릿대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이곳에서 자라는 조릿대는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 주민들은 조릿대 중에서도 그해에 새로 돋은 직경 0.7~0.8㎝의 가지, 1년생만을 사용한다. 부드럽고 푸른빛을 띠는 게 특징이며, 농한기에 주로 채취한다.

주민들이 복조리를 머리에 이고 이동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한땀 한땀 장인 정신 깃들어

최근 주민들이 모처럼 마을회관에 모였다. 설을 앞두고 복조리 주문이 들어와서다. 반가운 소식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세시풍속, 중국산 복조리의 저가 공세에 10년이 넘도록 전통 방식의 복조리를 찾는 이가 없던 터였다.

이번에 들어온 주문량은 500개 내외. 한창일 때에 비해 현저히 줄었지만, 주문 소식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은 6명. 40년 이상 복조리를 만든 숙련자들이다. 이들은 작업이 시작되자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을회관에 웃음꽃이 피었다.

80대 어르신들은 "우리 부모 세대는 복조리 만들기가 생업이었다. 복조리로 자식들 학교 보내고 키웠다. 물량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서 온 가족이 동원될 때는 등교를 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하나 만드는 데 5분 걸렸는데 지금은 눈이 침침해졌나 10분이 넘게 걸린다"고 수다를 떨었다.

복조리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려워 보였다. 재료(조릿대) 준비 과정을 보면, 마을에서 10리쯤 떨어진 백아산에 올라 조릿대를 베어와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80대 이상 고령자들에게 산 타는 일이 버겁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민 중 60~70대 남성이 산에서 조릿대를 채취해 온다. 가져온 조릿대를 삶은 뒤 2~3일가량 햇볕에 말려 껍질을 벗기면 그제야 재료 준비를 마친다.

화순 복조리마을 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복조리를 만들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마을회관에서의 가내수공업은 지금부터다. 조릿대를 네 가닥으로 쪼개 댓살을 만든다. 정확하게 사등분 하기 위해 힘 조절이 중요하다. 한 손에 칼을 쥔 어르신이 능숙하게 조릿대를 쪼갠다.

이렇게 만들어진 댓살을 한 줄씩 씨줄과 날줄로 꿰면 복조리가 탄생한다.

조영옥(60) 송단1리 이장은 "복조리마을 주민들은 집안 대대로 복조리를 만들었다. 대부분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6~7세부터 제작법을 익혔던 것 같다. 당시 마을로 시집온 새댁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면서 "당시 복조리는 단순히 댓살로 만든 공예품이란 의미를 넘어 '복을 나누는 일'이었다. 모두가 복조리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전했다.

송 이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오랜 기간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면서 "댓살을 만져보면 알겠지만, 대나무 특성상 매우 단단하다. 그리고 쪼개진 단면은 손을 베일 만큼 날카롭다. 40~50년간 복조리를 만들어온 장인이라 할 수 있는 주민들 손이 상처투성이인 이유다. 예전에는 손에 피가 줄줄 흘러도 아픈지도 몰랐다. 잘못 만들면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화순 복조리마을 주민 집 지붕 위에 복조리가 걸려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전통문화유산 전승 보전이 중요"

주민들은 과거와 달리 복조리로 큰 이익을 챙길 수 없다. 전통문화 유산인 복조리를 전승·보전하고 싶은 바람이 전부다.

조 이장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집마다 안방 문 앞 등에 복조리를 걸어놓고 만복이 집안에 깃들기를 기원했다. 복조리 수요가 엄청났다"면서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중국산 저가 복조리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여기에 쌀에 있는 돌이나 이물질을 걸러내는 조리를 대체할 주방도구가 다수 등장하면서 찾는 사람이 현저히 줄었다"고 했다. 이어 "이대로 가다간 복조리를 만드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사라져 결국 명맥이 끊길까 걱정이다"고 털어놨다.

화순군은 2011년 12월 복조리 제작 기술 전승을 위해 복조리마을을 제56호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매년 외부인을 초청해 복조리 만들기 체험 행사를 열고 있다. 군 관계자는 "복조리마을에서 만든 복조리는 화순을 대표하는 상품"이라면서 "고령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작법 등을 전승·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관우기자 redkc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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