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광주 대첩 승자는" ··· 이낙연과 이재명 - 세번째 이야기

@유지호 입력 2021.09.23. 03:54

광주는 노무현의 정치적 고향이었다. 정치인에서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바람'이 시작된 곳도, 선거에서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곳도 광주였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초반, 광주에 대한 그의 생각과 평가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03년 9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광주·전남 언론사 오찬간담회에서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 넘게 합동 인터뷰를 한 뒤 점심을 함께 하며 진솔한 대화가 오갔던 자리로 기억된다.

당시엔 이 발언이 몰고올 파장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질문은 본보 조영석 편집국장이 꺼냈다. ▲ 조 국장 : "대통령께서 호남에 대해 서운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 노 대통령 : "호남 사람들은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후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광주 시내 한 복판에서 시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호남출신이 아닌 정치인 가운데 나보다 더 호남을 이해하고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대보라'고 배포있게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있어 대통령을 바꿔달라면 바꿔주겠다."

'대세론' vs '대안론' 승자는

16대 대선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었다. '포스트 3김'을 노리던 수 많은 주자들이 뛰어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2000년 8월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에게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겼다. 이렇다할 경력이 없던 노무현에겐 대권수업의 요긴한 기회였고, 그는 와신상담하면서 대권 꿈을 다듬었다. 하지만 그의 경선 통과 가능성을 점친 사람은 적었다. 지지율 2%대 꼴찌 후보였기 때문이다. 15대 대선 때 500만 표를 얻은 뒤 5년을 준비해온 이인제의 벽은 높았다.

호남은 민주당의 심장부다. 대선·총선 등 주요 선거 때마다 수도권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했다. 이인제는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고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다. 노무현은 대안론으로 맞받았다. 그는 이인제의 신한국당 경선 불복 전력과 본선 경쟁력을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공략하면서 영남후보론을 앞세웠다. 이회창 대세론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여당 후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3월 16일 열렸던 광주 경선은 대선구도를 흔든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시작이었다.

광주의 선택은 연쇄효과를 냈다. 광주를 진원지로 한 '노풍'은 민주당 내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결국에는 이회창 대세론도 넘어섰다. 여기엔 앞서 노 전 대통령이 이야기 한 '전략적 투표'가 있다. '차선' 혹은 '차악'을 선택해 최악은 피하겠다는 지혜다. 당시엔 지역감정과 호남차별이 극심했다. 호남은 지역주의의 최대 피해자. 하지만 광주는 DJ 직계도, 호남 출신 차세대 주자도, 당의 주류이자 여론조사 1위 후보도 아닌 부산 출신의 승부사 노무현을 택했다. '누가 표의 확장성이 있느냐' '누가 이회창 후보를 더 확실히 꺾을 수 있느냐'를 저울질해 표를 몰아줬다.

'노풍' 진원지 광주의 선택은

지난해 4월부터 이낙연과 이재명을 주제로 칼럼을 써왔다. 현재 이 두 명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1·2위 주자다. 과반 이상의 득표와 2위 이하 후보들과 격차를 크게 벌린 이재명 측은 내심 본경선 과반 득표로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반면 충청·강원·대구경북권 경선에서 이재명에 크게 뒤처진 이낙연은 광주 경선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쓰려고 한다. 25~26일 열리는 호남 경선은 최대 승부처. 양쪽 캠프가 총력전에 돌입한 배경이다.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 연휴 민심은 정국 흐름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코로나19 탓에 고향행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추석이다. 예년만큼 이동이 자유롭지 않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민심 풍향계'는 이번에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광주의 선택은 경선의 흐름을 바꿔왔다. 양쪽 캠프가 추석 연휴 전후로 이 지역에서 살다시피하며 연일 날선 공방을 벌이는 이유다. 호남 민심은 안갯속이다. 언론사마다 여론조사 결과가 갈릴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 이낙연과 이재명은 노무현과 인연이 깊다. 이낙연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썼다. 이재명은 노무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20여 년 전, '노풍'의 바탕엔 메시지가 있었다. 명분과 원칙, 시대정신이 담긴 그의 언어는 삶의 궤적이 녹아 들어 울림이 컸다. 90년 3당 합당 땐,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 중)"고 했다. 지역감정 타파와 동서화합은 당시 정치권의 화두.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항상 어려운 싸움을 했다. 그런 그를 알아보고 지지한 곳이 광주였다. 요즘 말로 극강의 케미를 보여줬던 노무현과 광주. 강력한 야권의 대선 주자에 맞설 '제2의 노무현'으로 호남은 누굴 택할 까. 국민들의 관심이 다시 호남으로 향하고 있다. 전략적 투표는 광주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났다.유지호 디지털편집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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