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의 시정만담]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야 알 수 있다

@김영태 입력 2020.12.09. 18:30

'세한연후지송백지불조(歲寒然後知松栢之不凋)', 혹은 '세한연후지송백지절(歲寒然後知松柏之節)'라고 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송·松)와 측백나무(백·栢)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풀이된다. 줄임말은 세한지송백(歲寒知松柏), 세한송백(歲寒松柏)이다.

논어(論語)〈자한(子罕)〉편에 나오는 문구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도 인용됐다.

문구의 각 단어는 은유적이면서 비유적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은유하는 '세한(歲寒)'은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란한 세상에서 홀로 뜻을 굽힘없이 지조를 지키려는 이의 곤궁한 처지를 비유한다. 그런가 하면 '송백(松柏)'은 한 겨울 매서운 눈바람과 서릿발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두 나무의 생태적 특성에서 절조의 상징으로 의인화된다.

시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

필자는 오래전 '삿된 권력의 가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그 글에서 필자는 "권력이란 마약과도 같다. 한번 움켜쥐면 그 세(勢)를 키워 휘두를 수 있는 범위를 더욱 넓혀가고자 하는 욕망과 비례한다"고 언급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옛 경구(警句)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력을 쥐었던 이들은 무한할 것으로 착각하고 이를 멋대로 휘두르다 결국 망조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 인해 줄줄이 영어의 신세로 전락한 것도 알려진 바다.

그래서 '다모클레스의 검(劍·칼)'은 끝없는 권력욕을 경계한다. 다모클레스는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 디오니시우스의 신하였다. 그는 늘상 디오니시우스 왕의 권력과 부(富)를 부러워 했다. 이를 눈치챈 왕은 그에게 자신의 왕좌에 앉아 보라고 한 뒤 천정을 바라보라고 했다. 거기에 한 올의 말총에 위태롭게 매달린 날선 검이 있었다. 왕은 다모클레스에게 "겉보기는 화려하지만 '권좌'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검 밑에서 늘 긴장해야 하는 자리다"고 말해 주었다.

가면을 쓴 삿된 권력에 맞서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들었던 적이 있다. 1명이 두명이 되고 10명, 100명, 1천명, 1만명, 10만명, 100만명… 누적 1천만명이 훨씬 넘는 시민들이 촛불과 함께 광장으로 모여 들었다. 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이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을 논의하고 구체화하는 토론을 이어갔다.

작가 최인훈이 설파했듯이 사람들은 광장에서 만나 사회적·역사적·정치적 관심사를 공유하고 깊은 울림으로 뜻을 모았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드러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광장은 그렇게 시민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몰염치하고 몰지각하게 무시되거나 심지어 유린의 양상까지 드러내면서 깨달은 거대한 촛불의 물결이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 광장에서 거세게 타 올랐던 여운은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온갖 부조리와 모순과 불의를 제압하겠다는 결의에 바탕해 민주주의의 화수분으로 삼았던 그곳에서의 함성 역시 잦아든지 오래다. 사람들이 모여 되찾고자 했던 정의와 양심, 상식은 어느 결에 빛바랜 옛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 광장이 다시 떠 올랐다. 광주의 금남로 광장. 부산의 서면 로터리 등등. 서울의 청계광장과 광화문 광장 등등. 분노를 바닥에 깔고 발언과 요구, 성토라는 외침에 행진이 곁들여진 시민의 광장이었다. 온갖 풍자와 패러디, 가면극, 굿판 등이 어우러지며 감았던 눈을 뜨고 드러난 사실을 밝혀내고자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제어한다

강고한 권력의 해체 및 재편성의 길은 지나간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그랬던 것 처럼 억세디 억센 반동으로 저항해온다. 그도 그럴것이 한번 형성된 기득권을 움켜쥔 자들이 꽉 쥐고 내놓으려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4년전 겨울 삭풍을 마다않고 광장으로 모여든 무한 시민의 힘이 다시 필요해졌다. 다모클레스의 검이 전하는 '겉보기에 화려한 권좌에 눈이 멀지 말라'는 날선 교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폐부를 찔러오는 금언(金言)이 아닐 수 없다.

뿌리부터 바꿔야할 개혁의 깃발을 더욱 힘차게 휘날려야 한다. 애초의 희망과 기대는 겨울 메마른 삭풍 속으로 사라져 간듯 하지만 부조리와 모순, 불의를 반드시 척결하겠다는 힘의 크기를 결코 줄여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시민의 통제도 받지않고, 그 행위에 어떤 책임도 지지않는 권력은 망나니의 칼을 쥔 독재 권력에 다름없다.

'날씨가 추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않음'을 알려면 시민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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