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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가족과 탄 엘리베이터, 노마스크 '오륙남'이 타려 한다면

@유지호 입력 2020.09.09. 17:26 수정 2020.09.09. 19:04

8월의 마지막 주말인 29일 무등산에서 장자의 '나비'를 떠올렸다. 오전 11시쯤 증심교 앞. 불과 두 세 발 앞 쪽에서 걸진 목소리가 왁자지껄하다. 간혹 웃음도 터져 나온다. 배낭에 'OOO 산악회' 표식을 단 중년의 남성과 여성들 무리다. "뭐 어쩐다고?" 놀라 돌아보니 휴대전화 통화다. 바람재로 올라가는 계곡 곳곳엔 돗자리가 깔렸다. 나이 지긋하신 백발 부부에서부터 친구·연인·가족들로 보인는 이들이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갔다. 붉은 색의 '출입금지' 현수막에도 아랑곳 없이.

토끼등에서 바람재로 가는 길. 비좁은 테이블 하나에 10여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밥을 먹는다. 준비해온 밥과 반찬을 나누면서 반주로 막걸리도 한잔씩 곁들인다. 폭 4∼5m의 산행길엔 횡으로 무리지어 걷는다. 대화를 주고 받느라 맞은 편에서 오던 사람과 부딪칠뻔 한 남성이 얼굴을 붉힌다. 언급된 분들 모두 노마스크였다.

타인 외면하는 날선 눈빛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니는 내용. 잠에서 깬 장자는 분간이 안됐다.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그가 나비이고, 나비가 그이기도 한, 즉 피아(彼我)의 구별을 잊은 물아(物我) 일체의 경지를 의미하는 호접몽(胡蝶夢)이다. 3∼4시간여 마주한 풍경은 1년 전과 닮았지만, 상황은 상반됐다.

불과 이틀 전, 광주에선 연일 수 십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거리두기 3단계에 준하는 행정명령이 발동됐다. 일부 마스크를 쓴 등산객들은 먼저 피하고 먼저 돌아서 갔다. 간혹 마스크와 얼굴을 가린 수건 위로 비치는 눈 빛은 날이 바짝 서 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불안하고 날카로운 그 것이다. 목숨걸고 산행에 나선 현실이 꿈인지, 아니면 등산하는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쉬이 분간이 안됐다.

며칠 전 읽은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글이 떠올랐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4명은 각 모서리로 가서 벽을 보고 섰습니다. 7층까지 숨을 참았습니다. . 이웃이라니요. 이 시·공간에선 서로가 서로의 병균이었습니다.' 공감가는 현실이 웃펐다. 마스크 탓에 벌어진 잇단 주먹다툼 뉴스엔 가슴이 먹먹해진다.

코로나19 환자 2만여 명의 시대. 진화한 바이러스는 영악하고 교활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건 공동체를 무장해제 시킨 점이다. 이웃에 대한 의심과 분노·혐오는 갈등·분열의 씨앗이 됐다. 힘을 합쳐 싸워도 모자랄 판에 서로 경계하고 분열하게 만들었다. 방역 중점관리지역 지정을 놓고 벌인 광주시와 북구의 갈등이 그랬다.

'위험의 불평등'. 새로운 위험은 국가·계급·젠더·세대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진다. 빈곤·노령층 등 특정 취약 계층에 더욱 그렇다. 발병 책임과 후속 대책 등을 놓고도 갈가리 찢겼다. 집단 또는 연쇄 감염으로 이어진 교회·전통시장·방문판매·유흥주점 등 대상을 바꿔가며 서로를 원망하며 비난했다. 공동체는 이렇게 무너졌다.

불신의 시대 공동체 복원은 난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와 접촉하며 살아간다. 바이러스를 피해 접촉의 방식을 언택트로 바꿨을 뿐이다. 분명한 건 포스트(post)·위드(with) 코로나의 길은 혼자선 안된다. 인간과 자연은 물론, 개인과 공동체의 새로운 공존없인 더 나아갈 수 없다. 가족·동료·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한다. 공유·연대가 중요한 이유다.

시험대 선 뉴노멀의 공동체

철학자 김재인은 '뉴노멀의 철학'에서 "사회적 신뢰는 영토의 문제다. 그 안에서 마음편히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들뢰즈·가타리는 감염병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거의 모든 것이 얽혀 있는 현상으로 봤다.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이기 때문. 이어 "불평등과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분열과 갈등은 커지고 영토는 흔들린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야 하며 공동의 안전망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새로운 공존을 위한 전제가 있다.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믿음은 복원의 첫 단추다. 노마스크는 없어야 한다. 마스크는 타인에 대한 배려다. 동선을 숨기거나 속이는 등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도 사라져야 한다. 분열·갈등의 언어 대신 이웃간 따스한 마스크 한 장의 나눔이 필요한 때다. 지자체도 마찬가지. 정확한 동선 공개와 신속한 대응은 물론 공동체 복원을 위한 시스템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1980년 5월 보여주었던 광주 공동체의 힘을 다시 한 번 발휘해 달라."(지난 2일 대시민 호소문 중 일부). 5월 광주의 냉혹했던 시절, 나눔과 연대는 '공동체의 힘'이었다. 코로나 시대, 과연 공동체는 존재하는가. 오늘도 바이러스는 아파트·사무실 현관 문 앞까지 찾아와 삶을 옥죈다.

유지호 디지털미디어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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