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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재난 뉘앙스 인용법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입력 2020.08.28. 16:29 수정 2020.08.30. 15:02

말들이 거처를 상실한 것처럼 도처에서 범람하고 있다. 기후재난과 팬데믹 이후에 겪게 될 또 하나의 전쟁은 다양한 말들을 기록하는 일에서 일어날 것이다. 재난을 이야기하는 발화의 양태'를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초국경으로 이동하는 팬데믹에 관한 발언들을 인용하는 것은 한층 사려깊은 태도를 요한다. 그것은 전염균의 발생 원인과 전파 경로, 방역에 관한 책임과 관련되는 일이다. 팬데믹의 유행을 둘러싸고 떠도는 말들은 팬데믹 이후 감염병 기록에서 무엇이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준다.

감염병을 지역, 인종, 민족, 종교 등 특정한 표지와 함께 사용할 경우 갈등과 분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굳이 말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지 않아도 익숙할 몇 가지 사례들을 다시 옮겨본다. '중국 바이러스', '외부 바이러스 테러', '코로나 공포정치'. 정체없이 출현한 저 말들을 어느 곳에 넣어 문장을 완성해야 할지 난감하다. 정확한 것은 저 말들이 유랑하기 시작한 '날짜'다.

과학기술학, 정치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사상가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는 학생들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이 편지들에서 라투르는 '잘 말하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 '말해진 것'을 먼저 인용부호 안에 묶어볼 것을 제안한다. 발화체 즉 '말해진 것'과, 말해진 것에 부여되는 중요도의 차이를 낳는 '양태'(말하는 방식)를 구분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면 '말장난'은 아닌 게 확실해 보인다.

-지구 온난화가 인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는 것과 '지구 온난화는 인류가 원인이 되어 있어났다'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말장난을 하는 게 아닙니다. 첫 번째 발화체는 '세계에' 속해 있지만 두 번째 발화체는 '세계에 대한' 불확실한 담론에 속해 있습니다. 과학철학 전체가 이 뉘앙스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브뤼노 라투르·과학인문학 편지).

문장에서 따옴표는 말과 생각을 세계에서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가령, 지구 온난화의 원인을 서술할 때 따옴표를 쓸 때와 문장 안에 그냥 풀어쓰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과학철학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을 구분하는 '뉘앙스'에 의존해 있다는 것이 브뤼노 라투르의 중심 논지이다.

재난의 사태를 말하는 방식에 주의해서 말들을 인용하지 않으면 사실, 거짓, 진실의 차이를 확실하게 분별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브뤼노 라투르의 편지들을 읽다보니 융합의 시대에 분별없이 뒤섞는 것만이 대안은 아닐 듯싶다.

예기치 못한 재난들이 발생할 때마다 어디에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 소문, 유언비어, 가짜뉴스들이 출현한다. 그러한 현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말들을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사람들의 순진함이 더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듯해 보이는 분석을 소설 속 등장인물의 수다에서 듣는다.

-악당이 사실의 조작을 잘하기도 하지만, 사실 자체의 모호한 성격때문에도 그래요.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사실이란, 사실은, 사실이 아니고, 그 사실에 대한 어떤 사람의 해석일 때가 많아요. 사실과 해석은 전혀 다르죠.(서정인·소설집 '철쭉제')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실에 대한 '해석'일 때가 더 많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실 자체가 지닌 모호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자체를 개인적인 해석이나 견해를 덧붙여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다. 악의를 지닌 악당들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사실을 '조작'함으로써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실을 찾아내기보다는 사실에 가까워지려는 끊임없는 노력'은 단지 한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를 하기 전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공자는 '정명(正名)'을 하겠노라고 말했다(논어).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순하지 못하므로 이름을 바로잡아 사회의 질서를 세우고자 한 뜻에서였다.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명답이다.

고작 두 눈으로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오래 전 어느날 있었던 일들, 그리고 바로 전에 일어난 일들을 되감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매순간 다른 시간을 감각하면서 다른 역사의 마디를 통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사실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잊지 않으면서 그 한자락을 인용하려 애쓸 뿐. 인터넷 신문을 보다가, 일단 따옴표를 써서 검색한 날짜와 함께 인용해 두어야 할 말들을 찾아서 재난어휘목록에 추가해 넣어둔다. '5·18당시 헬기사격은 사실 아냐', '헬기사격 있었다', '신기루' '증거 넘쳐'(2020. 8. 24.) 한순미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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