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높임말로 인권보호를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입력 2022.12.25. 15:31

■ 신경구의 포용도시 

지난 9월 광주국제교류센터에서 직원들과 함께 윷놀이, 팔씨름 등으로 추석 놀이 한마당을 할때였다.

짖궂은 직원들이 가장 나이 어린 직원과 가장 나이 많은 나에게 다리 씨름을 붙이자, 그 직원이 큰 목소리로, "야, 신경구 이리 나와"라고 도전장을 냈다. 즉시 모든 직원들이 폭소를 터뜨렸고, 직원들은 지금까지도 그 때 상황을 되새기면서 즐긴다고 한다.

"한국어의 높임말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는 미국 유명대학의 한국인 언어학교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 학생에게서 "김ㅇㅇ 교수 잘 지냈어?"라고 반말을 듣는 순간, 이 교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모욕감을 느꼈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일이 있다.

위의 두 사례는 우리말에서 높임말이 우리 생각과 생활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행사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언어학에서도 20세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언어상대성 이론이 주류 이론으로 자리잡아 왔다. 1970년대의 연속극에서 부인은 높임말을 남편은 낮춤말을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금은 남편이 부인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는 연속극을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군인이었던 내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에게 높임말을 하면 "이상한 군인아저씨"라는 반응을 받았다.

요즘은 더 어른인 내가 고등학생들에게 높임말을 써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까지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높임말을 하면 "말씀 낮추세요"라고들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말을 거의 들을 수가 없다.

빠르게 평등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이렇게 빠르게 말씨기 바뀌는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은 높임말을 모른다는 선입관을 갖고 외국인들을 대하는 경우와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직장인 경우이다.

외국인들은 이렇게 불평한다. "잘 모르는 젊은사람이 갑자기 반말을 한다", "공장에서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XX, 저 XX'라고 불릴 뿐이다", "아이 아빠인 나를 '임마, 이 XX, 저 XX'라 부른다".

최근에 권위적인 직종 출신인 행정부 수반의 반말과 욕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거는 뭐야?", "떡볶이도 좀 사라 그래", "이 XX들 승인안해주면 ... 쪽팔려서 어떻하냐?"

'언어가 정신을 지배한다'는 언어상대성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말씨가 문제가 된 것은 매우 당연하다. 욕설과 반말은 권위주의와 상하 관계를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정신을 뿌리채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편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존칭없이 교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등, 평등한 언어가 더욱 평등한 언어로 바뀌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높임말이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교사가 다수 학생들에게 말할 때에는 높임말을 사용한다. 부부 사이에 높임말이 일반화 되기 시작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직장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같은 반 학생들과 상급생들에게서 높임말을 듣기 시작할 때의 뿌듯함을 잊지 못 하고 있다.

상대방의 나이 차이를 따져서 높임말과 반말을 구별해서 쓰기 보다는 "모두에게 높임말을 하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도 매우 컸다.

내가 책임지는 광주국제교류센터에서는 지난 23년 동안 서로 높임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23년 동안 언성을 높여서 싸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집에서 아내와도 서로 높임말과 '하소'를 번갈아 사용하지만, 싸울 때에는 깎듯이 높임말을 한다. 덕분에 격렬한 집안 싸움을 해 본 일이 없다.

높임말은 우리 사회의 귀한 자산이다. 상대방에게 낮춤말을 할 핑계를 찾기 보다는 높임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말 사용은 아주 가까운 친족이거나 친구로 한정하는 것이 편하다. 상대가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나이와 상관 없이 높임말을 사용해야 한다.

높임말은 언어폭력을 예방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포용도시의 중요한 수단이다.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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