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주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부쳐<하>11월이 오면

@황광우 작가 입력 2022.11.02. 18:08

"조선 학생이여 궐기하라. 투쟁으로써 광주를 지지하라. 반항과 유혈이 있는 곳에 결정적 승리가 있다. 궐기하라. 이후의 역사는 우리들의 것이 아니냐."

이 피 끓는 격문의 작성자는 장석천 선생이다. 1929년 12월 장석천 선생이 작성한 이 격문이 서울 전역에 배포됐고, 격문의 호소대로 서울의 전 학생이 시위에 가담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서 시발했고, 서울과 평양, 심지어 함경북도의 경흥까지 퍼진 그야말로 전국적인 독립투쟁이었다. 일본인 중학생과 조선인 여학생 간에 벌어진 댕기머리 사건은 이 거국적 투쟁의 사소한 일화에 지나지 않는다. 성희롱 때문에 저 위대한 독립투쟁이 시작됐다고 간주하는 것은 일본 관헌의 입장을 대변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항일투쟁의 성격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천박한 역사인식이다. 1929년 11월 3일 대시위가 있기까지, 1926년 결성된 학생들의 비밀결사 성진회가 있었고, 1928년 광주고보 학생들의 동맹 휴학 투쟁이 있었으며, 1929년 장재성 선생이 주도하여 만든 독서회가 있지 않았던가?

장석천(1903~1935)선생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제2의 3·1운동이었다. 1919년 3·1운동의 좌절 이래 조선의 청년 학생들이 몸부림치며 모색한 새로운 독립투쟁, 그 10년의 축적물이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표출됐던 것이다. 11월 3일 전개된 광주 대시위의 주역이 장재성 선생이었다면, 광주 대시위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주역은 장석천 선생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여 장재성 한 개인의 힘으로 대시위를 이끌었겠으며, 장석천 혼자의 힘으로 전국적 투쟁을 조직할 수 있었겠는가? 청년 학생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수많은 청년 학생들의 비밀 결사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해마다 11월이 오면 관계기관들은 의례적인 행사를 할 뿐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으로 퍼뜨린 장석천 선생의 표지판 하나 세울 줄 모른다. 장석천 선생은 체포된 후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시체가 되어 옥문을 나섰다.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그의 고택이 광주일고 교문 맞은 편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장재성 선생

선배들의 발자취에 대해 이렇게 무심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광주를 의향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11월 3일 대시위의 주역 장재성 선생에 대해서 무심하기는 매 한 가지다. 장재성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죄로 4년의 옥살이를 했고, 일본에 유학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체포돼 또 3년의 옥살이를 했다. 도합 7년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장재성 선생, 그는 1948년 12월 1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으로 또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1950년 7월 5일 이승만 정부는 광주형무소에 수감 중인 선생을 끌어내 양산동 산 99-1번지 장고봉에서 총살했다. 총살을 하고 시신에 휘발유를 뿌려 태웠다고 한다.

우리 '장재성기념사업회' 운영위원들은 지난 10월 7일, 광주형무소 수감자들을 집단으로 총살한 학살지를 찾았다. 모두 여섯 곳이었다. 광산구의 암탉골, 남구의 문둥이골, 진월동의 몰몽재, 양산동의 장고봉, 동림동의 불공이재, 장등동의 원태골 여섯 군데의 학살터를 찾았다. 음산했다. 이곳에서 3천 명이 넘은 수감자와 보도연맹원들이 흰 천으로 눈을 가린 채 총살됐다. 뼈가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암탉골에서 갈대 몇 잎을 꺾었다. 문둥이골에서는 벼 이삭 몇 줄을 꺾었고, 몰몽재에서는 호박잎 몇 장을 땄다. 영령들이 떠나지 못하고 갈대가 되어, 벼 이삭이 되어, 호박잎이 되어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해방 정국에서 미군정과 경찰에 붙들려 수감된 분들은, 모두가, 일제 강점기엔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고, 해방 후엔 외세로부터 자주적이고 통일된 나라를 희망한 이들이었다. 제주에서도 여수에서도, 진주에서도 해남에서도, 심지어 공주에서도 국가폭력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건립됐다. 의향 광주에서는 언제나 위령탑이 건립될까?

황광우 작가 ㈔인문연구원 동고송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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