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가르칠 권리를 위해 행동할 시간

@노영화 일동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3.08.15. 14:34

선생님.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날씨를 보니 교육위기로 몸살을 앓는 교사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 또다시 마음이 아픕니다.

여름방학 직전,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 이후, 찬 바닥에서 밤늦게까지 선생님 뉴스를 계속해서 검색하며 읽다 잠이 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다시 3월 말에 제가 겪은 교권침해사건이 떠올랐습니다. 한동안 '그 학부모가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까?'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딸려 보내지는 않을까?', '아동학대로 나를 신고하면 어쩌나?' 극심한 불안과 긴장 속에서 1학기를 보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병원에서 진료도 받고 약도 지어 먹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버텼습니다. 다행히 제 주위에는 저를 걱정해 주는 동료들이 있었고, 그 학부모를 함께 상대했던 관리자도 있었고, 무기력하여 퇴근 후 누워만 있었던 저 대신 제 아이들을 돌봐준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제게 큰 상처로 남았어요. 그 일은 앞으로 제가 학생들과 만나며 필연적으로 마주할 선택의 순간에도 영향을 끼치겠지요. 제가 얼마나 더 움츠러들고 비겁한 선택으로 제 한 몸의 안전을 도모할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가만두었다간 교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성장, 용기를 좀먹는 어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분명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헌신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들은 교사를 '왕의 DNA'를 가진 자기 자녀를 떠받들어야 하는 무수리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상왕의 위치에서 교사를 내려다보지요. 자녀를 위한 삐뚤어진 사랑에서 시작된 몰상식하고 비합리적인 요구가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교사의 전문성과 자존감을 뭉개버립니다. 심지어 교사에게 '기분상해죄'를 적용해 정당한 생활지도에도 아동학대범으로 몰아 소송에 시달리게 하며 모멸감을 주지요. 또한 이들은 학교의 구조와 자신들이 이용할 법에 대해 너무 잘 알아요. 교육청과 학교장이 교사 편이 아니라는 것,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교사가 기소가 되지 않아도 그들에게 무고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교사들은 대부분 혼자 조용히 싸운다는 것 까지도요.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의 잔인한 사랑표현은 자기 자녀와 한 반의 다른 스무 명 남짓 학생들의 다정한 선생님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엄마, 아빠, 형제, 자매, 아들, 딸이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의 이전에 행복을 꿈꾸는 평범한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해 만신창이로 만듭니다. 제가 너덜거리는 가슴을 안고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앉아 가르칠 권리를 외쳤던 것은 선생님의 일이 남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배워서 남 주는 선생이라는 직업이 참 좋지만 두 번째로 3월의 그 일이 생긴다면 저도 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어서요. 제가 사랑하는 '교사' 정체성이 어둠으로 향하지않게, 또 다른 동료 교사의 영혼이 파괴되는 일이 없게, 교실에서 저를 기다리는 맑은 눈망울의 학생들에게 '내일 만나자'하기 위해 저는 이제 침묵을 깨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의 죽음에서 드러나듯 교육당국은 법에 보장된 학부모의 교육소비자적 권리라며 교사들에게 응대의 책임을 다 하라고 강요하며 교사를 사지에 내몰았어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의 자아실현과 민주국가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공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교사들이 일부 악성 민원인들에게 극심한 감정노동을 하고 있을 때 교육청은 무엇을 했나요? 학교장은 또 무엇을 했나요?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법적 역할과 책임은 방기한 채 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겼어요. 학교장은 아동 학대 신고 의무를 빌미로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교육청은 발 빠르게 직위해제를 하고 교사 홀로 무죄를 증명할 때까지 외롭게 싸우게 했어요. 공급자인 교사의 권리나 보호 장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학부모의 수요자적 권리와 교사의 공급자적 권리 사이의 긴장과 불평등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합니다. 이 불평등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교실의 다른 학생들이 입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교사의 정서적 불안과 무기력함에 함께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학기 중 갑자기 '선생님께 뭔가 사정이 있대'라는 말과 함께 담임이 바뀌는 일도 생깁니다. 담임 교체 이유에 담긴 기가 막힌 사연들을 알지도 못한 채 학생과 학부모는 학기 초의 혼란을 다시 감내하며 적응해야 합니다. 휴직을 선택한 교사를 얼마나 원망할까요?

이걸 생각하니 정신이 퍼뜩 듭니다. 힘을 내야겠습니다. 저는 여름 방학동안 집회에도 나갔고, 지루한 설문에도 끝까지 답도 달았습니다. 어려운 말이 잔뜩 있어 의미 파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국회 법안에 실명으로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2학기가 되어 학교에 나가면 교원을 보호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 관리자가 악성 민원인과 함께 저나 다른 교사를 가해하는데 가담할 경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맞서 싸울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으로 8개나 발의된 교권 강화 법안이 어떻게 완성되어 교사들의 생존권을 얼마나 보장할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법이 시원찮으면 동료들과 다시 주말마다 아스팔트 위로 나설 겁니다. 다시는 동료 선생님들이 악성 민원으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택을 하

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교육할 권리가 보장되는 세상이 오면 환하게 웃는 선생님의 영정 앞에 예쁜 카네이션 꽃다발을 놓아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선생님,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히 세 번째 방학을 맞으신 듯 푹 쉬시기 바랍니다. 그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일동초등학교 교사 노영화 올림

슬퍼요
4
후속기사 원해요
2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