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아이들에겐 가상 놀이터 보다 실제 놀이터가 더 중요합니다

@김동혁 용두중 교사 입력 2023.07.18. 10:35

아이들에겐 주입된 가상현실보다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놀이터가 필요합니다.봄이가 산책을 나가자고 합니다. 저번 저녁 산책에서 봄이가 왕 모기에게 귀를 물려 귓바퀴가 팅팅 부은 적이 있는데 어찌나 간지럽고 아파했는지 눈에 선하게 기억나고 맴찢이어서 봄이 청을 들어주기가 망설여집니다. 그래도 저리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 나가야겠습니다. 산책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놀이시설이나 번쩍번쩍한 카페를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파트 단지 길과 주변 인도와 작은 문방구와 편의점 가는 길들을 사복 사복 걷는 정도입니다.

재생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 하나 들어서 주섬주섬 선크림, 모기 기피제, 우산, 화장지, 건티슈, 물병, 사탕 몇 개 챙겨 넣습니다. 가족 모두 모자를 쓰고 어깨에 가방 메고, 고사리 같은 봄이 손 탁 잡으니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든든합니다. 봄이는 이미 보물 탐험대 모험 상황극에 들어갔습니다. 아빠가 든 가방은 탐험을 위한 각종 장비로 가득 찬 모험 배낭이 됩니다.

첫 번째 산책 코스는 104와 105동 아파트 사잇길 입니다. 14층짜리 건물 사잇길이다 보니 기압 차이가 생겨 시원한 바람이 자주 부는 편입니다. 아들 봄이와 저는 이 길을 바람의 계곡이라고 명명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며 광활한 대지를 날아오르는 것처럼 봄이와 저는 그 사잇길에서 바람을 타며 날아오릅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풀 내음과 빗 내음을 느끼며 바람의 마법을 사용하는 역할 놀이를 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비 이야기, 바람 이야기에 담긴 과학 원리들을 설명합니다.

두 번째 산책 코스는 사잇길 너머 아파트 단지와 대로변 보도블록을 나누는 나무 울타리와 가로수 공간입니다. 떨어진 잎사귀와 나뭇가지, 작은 돌멩이를 이용하여 각종 동물과 곤충들을 만들어 봅니다. 영화 앤트맨의 슈퍼히어로가 작게 변해 개미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처럼 봄이와 저는 돌멩이, 나뭇가지, 잎사귀를 이용해 만든 창작 곤충들을 통해 미니미니 한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실제로 개미와 지렁이, 이름 모를 날벌레들도 찾아오고, 화단 속 나무들도 그럴 듯해서 신나는 모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신나는 모험의 과정에서 햇살과 바람과 흙이 나무와 풀이 되고, 나무와 풀이 곤충의 먹이가 되고, 곤충이 새의 먹이가 되고, 새가 고양이의 먹이가 되고 다시 고양이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먹이 사슬을 통한 생명 선순환의 원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모험을 신나게 즐기면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 당연지사. 봄이와 저는 집 앞 편의점으로 갑니다. 편의점은 동화 속 해적왕의 보물섬이 되고, 음료수는 마법의 샘물이 됩니다. 봄이와 함께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일상의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소통하며 놀이를 할 때 밀도 높은 배움과 성장을 이룹니다. 평범한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역할놀이에서 활용하며 타인과 자유롭고 평등하게 의사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뛰어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웁니다. 해당 놀이가 이루어지는 장소에 담긴 과학의 원리, 사회의 원리, 예술의 원리를 체득합니다. 이를 보면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생활하는 평범한 공간들에서 또래 친구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신나게 놀이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하게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광주광역시 교육청이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거세게 밀어붙이는 공립 유치원 미래형 놀이 환경 조성 사업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학교 현장 교사들의 의견수렴도 없이, 어떤 시범운영이나 검증 절차 없이 광주의 모든 공립 유치원에 38억을 들여 인공지능 체험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전자칠판, 터치 테이블 등 디지털 기기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만 3~7세 아이들은 일상의 평범한 공간에서 친구, 교사, 지역 주민 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놀이를 하며 그 물성을 느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감각기관과 신체활동 능력을 발달시킵니다.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 창의력을 키웁니다. 그런 아이들을 일상의 삶의 터전에서 격리시키고, 친구 및 교사들과 격리 시키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기계 가상 공간으로 빠뜨리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소통과 성장의 기회를 위축시키고 디지털 중독, 자아정체성 혼란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지금이라도 해당 정책을 전면 철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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