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늙어서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소망을 깎지 마라, 제발

@노영화 일동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3.04.04. 14:15

정년을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을 하는 교사가 해마다 늘고 있다. 2015년 공무원연금법 개정으로 퇴직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진 것과 교권 추락으로 인한 것, 업무 수행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

교사들이 받는 공무원연금은 군인연금, 국회의원연금처럼 특수한 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연금이다. 공무원연금은 과거에 교사들의 박봉과 열악한 근로 조건을 보완하여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제시한 일종의 당근이었다. 교사가 근무하는 동안 매달 월급에서 9% 기여율-국민 연금은 4.5%-을 적용하여 퇴직금으로 적립하고, 같은 금액을 국가가 적립하여 교사의 퇴직 후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 정책은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로 고용 여건이 악화되고 실업률이 늘어나면서 일반 회사원보다 적은 급여, 국민연금 대비 두 배 높은 기여율 부담과 2.5배 긴 납입 연한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채 정년 보장만 부각되어 교사가 상대적으로 엄청난 특혜를 가진 직업으로 부상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IMF 이후 사회적인 형평성과 기금 고갈 등을 이유로 두 차례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되었다. 군인연금이나 국회의원연금은 그대로 두고 공무원연금만 고통분담의 대상으로 삼은 억울함은 차치하더라도, 교사와 공무원들은 일반 회사원 급여의 90%만을 받고 나머지는 연금으로 돌려준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성실하게 일했으며, 5%가 넘는 물가 상승률에 비해 1.7%에 불과한 턱없이 낮은 임금 인상률은 사회적 고통 분담 차원에서 견디고 있었다. 2015년 연금 개혁 이후 연금 개시 연령 또한 퇴직 즉시가 아닌 퇴직 후 2년 뒤이지만 그래도 참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그 결과, 개악 당시 우려했던 소득양극화가 지금 현실화되었고 이 소득양극화의 최대 피해는 청년 세대들이 입고 있다. 같은 급수로 공무원을 시작해 같은 기간인 36년을 근무했다고 가정했을 때 97년에 공직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퇴직 후 월 280만원을 받지만, 2016년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36년 뒤 받는 연금은 177만원에 불과한 것이다. 젊다고 많은 일을 시키면서 연금은 젊을수록 줄어드는 불합리한 결과를 누가 공평하다고 받아들이고 일할 것인가.

이렇게 모은 연금을 온전히 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0년을 재직해야만 적립한 연금을 100% 지급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마저도 퇴직 후 2년 뒤 65세가 되어야 월 단위로 지급받을 수 있다. 퇴직금으로 한몫 챙기는 것은 고사하고 일반 회사원들의 퇴직금에 비해 겨우 39%에 해당하는 퇴직 수당을 2년 동안 살뜰히 쪼개서 써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수급자는 현재 정부가 매달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에서 본인과 배우자 모두 제외되고, 연간 소득이 2천만원 넘는다는 이유로 퇴직 후 지역 가입자로서 건강보험료를 매달 20만원 이상 납부해야 하므로 실 수령 금액은 더 쪼그라든다. 게다가 본인 사망 후 배우자 상속율, 증여 가능 범위는 타 연금에 비해 훨씬 낮고 좁다.

이래도 세간에 알려진 '특권 세력'이니 '혈세 낭비의 주범'이라는 프레임이 옳은가? 이미 2015년에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교사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사회 통합을 위해 크게 양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정부는 교권 추락, 물가 인상률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인상률, 각종 정부 정책 예측 실패로 교사나 공무원들의 명예퇴직이 급증하면서 공무원연금 기금이 적자를 면하지 못하자 또다시 과거와 같은 프레임을 씌워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개혁이란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아예 통합하는 것이다.

교사와 공무원의 사용자인 정부가 나서서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회구성원들에게 공무원연금을 '혈세 낭비의 주범'으로 매도하여 교사나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의 공분만 일으키고 그 분노를 원동력 삼아 연금 개혁을 추진하려는 시도는 교사와 공무원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차별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교사들도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데 겸직 금지를 지키며 30년 넘게 교단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한 대가가 빈곤과 차별이라면 교사 본연의 직무에만 충실할 교사가 몇이나 될까? 미래의 노인으로서, 현재 더 내고 덜 받는 연금이나마 비빌 언덕으로 삼아 노후를 꾸리려는 개인으로서, 일생을 성실하게 교육을 위해 헌신하리라 마음먹은 교사로서 이런 폭력적인 방식의 연금개혁은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요즘 교사들은 정말 괴롭다. 정당한 생활지도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침묵밖에 할 수 없고, 코로나19 이후 급증하는 학교폭력예방과 중재에 이제는 AI를 넘어서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사회적 기대에 시달려야 하는 교육현장에서 애써 버티며 소진이 일상인 삶을 살고 있다. 제발, 늙어서라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교사들의 소망을 더 이상 깎지 마라. 정부는 지금도 충분히 저렴하게 쓰고 있다. 노영화 일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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